'모른다' 는 말
모른다, 이 말, 하기 참 쉽지 않다. 인식하기도 어렵고, 스스로 인정하기도 어렵다. 접촉 빈도가 높을수록 인간은 많이 안다고 착각한다. 뇌가, 그렇게 일하는 것이다.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운전 중에 차가 고장나면 일단 보닛을 열어보는 행동은 이러한 뇌가 작동한 결과다. 오래 탔다는 것과 잘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도, 인간은 그러하다.
가장 가까운, 그래서 가장 먼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다 공감하리라. 내 아이, 내가 제일 잘 알아. 우린 그렇게 말하고 산다. 실제로 그렇다고 믿으면서.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번개가 친다. 아이가 어떤 사고를 당하거나, 문제가 생기거나, 큰 일이 벌어지면,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 내가 내 아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구석이 있었구나!' 그나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나은 것이다. 어떤 부모는 아니, 내 생각이 맞아, 라고 우기면서 자신의 믿음을 토대로 문제를 풀려다 오히려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 아이,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 맞다. 접촉 빈도도 가장 많고 함께 생활하는 시간도 길다. 관계 능력이나 관찰력은 개인차가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아이를 보고, 만지고 대화하는 가장 중요한 상대방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아이덴티티를 안다, 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여기엔 정교하고 섬세하고 과학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개의 부모들은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산다.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 주고 방을 청소해 주고 학원을 보내고 성적을 관리하며.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아이를 알 수 있는 시도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서비스의 영역이다. 내 아이를 위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관리하는 매니지먼트다. 매니지먼트란, 나의 영혼을 갈아넣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알바생 5명을 상대로 하는 매니지먼트는 알바생의 아이덴티티를 깊이 있게 파악하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가까이 있으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 아이의 과거, 현재, 미래, 인간관계, 기질, 기호, 성향, 감정 상태, 발달 정도 등에 대해 과연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문해 보라. 이러한 문제는 수박 겉핧기로는 감당할 수 없다. 자, 가정해 보자. 우리가 어떤 타인을 파악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까? 그 사람에 대한 평전을 읽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 사람이 활동한 지역을 답사하는 등의 수고를 1년 간 반복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대해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대체 뭘 근거로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나?
나의 경우는
나는 이러한 '거리', 나의 '무지'에 대해 일찌감치 인식하고 아이를 대했다. 거리와 무지를 인정하면 노력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나는 내 아이를 알기 위해 뭘 했을까?
1. 끊임없는 소통
2. 경험의 공유
3. 인간관계 조력
4. 자유와 존엄성, 자존감 형성
5. 자기 인지 필요성 강조
여러 활동이 있었으나, 요약하자면 위와 같은 것들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공짜가 없다. 대학에 가는 것은 어렵지만 자기 전공에서 유능함을 획득하는 일은 더 어렵다. 유능함을 얻는 것도 어려운데 그 유능함을 현실 세계에서 발휘하고 인정받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 아이에 관해서도 이와 같다. 내 아이와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내 아이를 제대로 아는 것은 그보다 몇 배는 어려운 일이다. 내 아이를 잘 아는 것도 어려운데, 이 아이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그러나 좋은 부모는 이러한 일을 차근차근 해낸다. 물론 그런 부모를 둔 아이는 복이 있는 아이이리라.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여기서 이 긴 주제를 다 다루기엔 지면이 너무 작다. 그러나 첫 번째 걸음은 언제나 인식으로 시작되는 것임을 말하겠다. 인식, 인정! 내 아이에게는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시작이다. 이것을 인정해야만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떠나고, 낯선 환경에서 공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보는 것.... 이 모든 것은 전부 내 아이를 알기 위한 여정이다.
밥 주고, 학원에 보내고, 성적을 관리하는 것은 아이를 아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내 아이는 뭘 좋아하고, 몇 개의 학원을 다니고 있으며, 현재 성적은 어느 정도인지 빠삭하게 아는 것은 내 아이의 미래를 전망하는 통찰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대개의 부모가 이 점을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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