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두 살에 운 좋게 입사했다. 내가 입사한 곳은 자칭타칭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다. 물론 지금은 세월의 변화에 따라 그 명성이 예전 같지 않으나 여전히 내가 근무하는 곳은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있다.
그 회사에 이제 만 18년째 다니고 있으니,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 중엔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것들도 적잖이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의 복잡다단한 일이 있었다. 정치에 휘말리고, 이념과 생각이 서로 싸우고, 여러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거나 쫓겨났다. 내가 다니는 회사, 그런 곳이다.
자, 우리들 각자는 어떤 일을 한다. 직장이란 델 가거나 자신이 일하는 장소가 있다. 거기엔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동료들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큰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같은 회사에 다녀도 모르는 이가 더 많다. 2-30년 동안 한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도 말 한 번 섞지 않는 관계가 더 많다.
그러니,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해 본 사람, 같이 일해 본 사람, 대면해 본 사람쯤 되면 적잖은 인연으로 여겨진다.
지금껏 18년 일하면서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언젠가 입사 3-4년차쯤 됐을 때, 한 선배가 내게 한 말을 기억한다.
"우리 공장에서 정상인 사람 본 적 있니?"
"별로 없는 것 같네요."
나는 답했다. 그랬더니 선배가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난 한 명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선배는 좋은 사람이었다. 나름 정의로운 행동을 하려 하고, 선후배 챙기고, 자기 일에 유능한 사람. 그 선배는 내 아버지 장례식장에 온 날 내게 말했다.
"나, 회사 그만뒀다."
그게 끝이었다. 잘되면 연락할게, 하고 말했던 선배는 잘 안됐는지 10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다. 최근 우연히 들은 소식으론 호주로 이민 가서 한 방송국에 들어갔다는데... .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이 진리는 아닐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나는 이 세상엔 대인이라 할 만한 자, 좋은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꼈다. 멀리서 보면 다 괜찮은 구석 한두 개는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겠으나, 그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괴상하고 별나고 음험하고 괴팍한 면을 만나게 된다. 둘이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내 탓으로 돌리고 자기는 빠져나간다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등 사람은 모두 진실하지 못하고 음흉하고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공장에서 정상인 사람 본 적 있니?"
오래전에 선배가 한 질문을 떠올려 본다면,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할까? 정상인 사람이란 뭘까? 또 비정상인 사람은 뭘까?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타인을 배려, 존중하고 겸손한 사람. 통찰력이 있고 유능하지만 잘난척 하지 않고 약자를 도우며 책임지려 하는 사람. 높은 목표를 세워두고 노력하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 물론 이런 사람은 드물다. 이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대인이라 칭해도 좋으리라. 우리 주변엔 대인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소인이나 비인, 즉 보통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 대부분인 것이 정상이 아닌가? 자리를 탐하는 사람, 아무렇지 않게 거짓 소문을 만들어내고 한 사람을 왕따 시키는 부류, 이념에 사로잡혀 타인을 괴롭히거나 지배하려는 사람, 우월감에 찌들어 협력할 줄 모르는 사람, 남 이야기 듣지 않고 자기가 다 결정하려고 하면서도 채임은 안 지는 사람, 성실하긴 하나 공동체에 무관심한 이, 이기적이고 탐욕에 찌든 이... .
내가 볼 때,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다.
왜? 사람이 어떤 수준, 고상하고 이상적이며 숭고한 단계에 오르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양심을 지키는 것, 선을 추구하는 것, 타인을 존중하고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며 실패를 통해 배우면서 통찰력을 소유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생존하고, 적당히 누리고, 적당히 나를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움을 따라 산 결과, 인간은 자신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지 못한다. 인간은 더 유능하고, 협력적이며, 도덕적이고 책임성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게 프로그램된 존재다. 다만 그러한 가능성, 잠재력이 그저 하나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채로 버려질 뿐.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려 한다. 내가 생각할 때 좋은 교육이란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라, 고 말하는 것이다. 어려운 길을 가라. 너의 잠재성과 능력을 모두 이루고 발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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