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0 결핍
마음을 쓰지 말라던, 오랜 친구의 말에 난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그 말을 한지 삼 년이 넘게 흐른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마음을 쓰고 있다.
고장 난 체중계의 숫자들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그게 조절이 안 됐다.
마음을 쓰는 일은 그리도 썼다. 씁쓸한 현실에 이래저래 치이고 나면, 그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현실에서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잊고 잠을 청하려 하면, 항상 꿈에서 마음을 쓰는 일들이 나타났다.
간 밤에 비가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건, 전 날에 비가 온 후의 아침과 비슷했다. 비가 온 줄도 모르고 그저 무심코 지나간 그 자리에 고인 웅덩이를 만드는 일 같은 거다. 내가 그 일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비는 이미 내린 후라는 사실처럼 잊는다는 건, 어쩌면 무심하고 당연하게 일어나는 거였다.
그 무심하고 당연한 건데, 그걸 못했다.
미련 때문이었을까, 이루지 못한 어떤 선망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비가 온 후의 향을 좋아하지만, 비가 오는 순간은 여태까지 마음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싫었다.
비가 오면, 그 물이 신발 안까지 들어와 양말이 젖는 상상을 하면 불쾌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비가 온다면 비에 젖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나는 그게 참 싫었다. 다행인 건 내가 밖으로 나설 땐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싫어하는 일들은 여전히 일어났다. 누군가 고여있는 물을 튀긴다던가, 내가 실수로 밟는다던가, 처마 끝에 물방울이 낙수하여 내 얼굴에 떨어진다거나 ... 하는 것들.
거리를 거닐다 축축한 음지의 웅덩이를 봤다. 웅덩이는 밉게도 나를 품고 있었다. 난 내 외모를 사랑하지 않았었다. 어릴 적에는 특히나 그랬다. 내가 보다 더 호감이 가고 정감 가는 외모였다면 나의 삶은 조금 더 윤택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매번 노크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모에 대한 미움은 타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거울을 보고 나에 대해서 인식하기 전부터 나는 내 외모를 그다지 좋아하지 못했다. 거울을 보기 전부터 나를 보는 이들에게 평가 받았다. 쌍둥이 형과 비교를 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 안에서 나는 나로 사랑받고 싶었는데, 사랑하지 못했다.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항상 결핍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마음은 무엇으로부터 발현될까. 그건 바로 또 다시 사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런 얄팍한 다짐들은 항상 내게 불친절한 시선을 보냈다. ‘네가 -?’ 하는 그런 시선들 …
나는 결핍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다. 그렇게 마음을 쓰는 일들이 늘어나면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당신도 내게 마음을 써주길 괜한 마음으로 바랐다.
이런 마음에도 돌아오는 건 차갑게 고인 웅덩이 같은 침묵이겠다만, 언젠가 그 웅덩이는 마를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다시 슬플 걸 알면서도 마음을 써 문장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