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봉은사에서

S#9 사랑은 정신이다

by 천윤준호

무릇 삶이 힘든 시기가 오면 위로받을 곳을 찾았다.

막 엄청 힘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보물을 찾는 사냥꾼처럼 무언가를 쫒고 있음에서 나오는 그런 고통이었다.


향을 피워 마음속의 문장을 떠올렸다.


’ 마음에 평온을 찾게 해 주세요.‘


’ 제 정신에 사랑이 깃들게 해 주세요. 감정이 아닌, 정신에 말입니다.‘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고 김진영 선생의 말처럼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정신이었다. 바람에 찰랑이던 풍경이 보인다. 화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물의 신을 본 따 만든 풍경.


영상을 찍으려 하면 한 없이 도망쳤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라 했지만, 아직 나는 서두르는 어린아이였다.


이미 현생을 다해, 마음에 담아둔 사람들을 기리는 연등을 본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이들을 기억해 주는 이들은 살아 있는 존재들이다.

’ 살아 있었다-.‘라고 기억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들의 가슴속에는 살아있다.

말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이 멈추어 있는 기억보다 움직이는 기억이 더 많다. 실제로 마음속에는 그들이 살아있다.


나도 살아있고 싶었다.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그렇게 영원을 꿈꾸며 살아 있고 싶었다. 내 마음에 살아 있는 이들을 생각해 본다.

웃고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 아이가 자주 했던 말도 떠오른다. 언제까지 살아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애의 움직임을 더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봉은사 입구 쪽에 있는 각양각색의 문들이 열리면 다른 세계가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사는 거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클리셰 적으로 등장하는 그런 설정이긴 하다만, 그런 순간들이 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는 했다.


만일 내가 그런 곳에 떨어진다면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지만, 지금의 순간들을 반드시 기억해서 그 세계의 역사에 남겨야겠다는 쓸데없는 책임감을 가질 테다.


불경을 외우는 스님의 음성이 경전 밖으로 울려 퍼진다. 모두 각자의 소망을 마음속으로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언젠가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 진공 상태에서의 침묵은 가장 큰 외침이다.‘


자주 사랑을 찾는 나는 종교인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도 했었다.


특정 종교를 신봉하거나 미워하지는 않는다.

내게 믿음이라는 건 허상에 가까웠다. 오로지 나에게 국한되는 사실이다.

내가 믿었던 영원과 불사는 현존하는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릴 적, 하염없이 바랐던 어머니와 아버지, 쌍둥이 형의 영원은 아직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청춘은 불사가 아니었다.


자주 찾으면 언젠가는 나도 어떤 음성이 턱- 하고 주어질까.

그럼 나는 그 음성을 따라가면 되는 걸까.


내가 오로지 믿을 수 있는 음성은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는 거다.


”준호야. “


나는 그 말 하나로 오늘을 살아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