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듯 겨울인듯
가을인 듯 겨울인 듯, 샌디에이고의 지금은 최고의 시간.
이곳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잠시 집 밖을 거닐 때에도 그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은 새롭기만 하다.
우리 동네의 월세는 눈물 나게 비싼 데다가 가장 높은 월세를 찍을 때 이곳에 온 터라,
감당하기 버거운 월세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칙칙하고 별로라 늘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리싱오피스에 갔더니 크리스마스 장식이 참 예쁘다. 사진으로 보니 더더욱 예쁘네.
시간이 지나면, 칙칙하고 어두웠던 우리 집 내부는 다 잊고, 예쁜 사진처럼 좋은 기억만 가득하겠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도 않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더 알차게 보내지도 않고.
그저 흐리멍덩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만 보고 있다.
세월이 오래오래 지나서 다시 이 사진을 보게 된다면, 저 눈부신 공간에 내가 존재하였음이 믿어질까..
봄에는 비도 많이 오고 흐리고 그러더니, 떠날 날이 다가오니 어쩜 이렇게 햇살도 눈부신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봄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며칠 안되는-최고로 화창하고 맑고(아,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 얼마나 되던가) 아름다운 날이 날이면 날마다 계속되고 있다.
친구들과 팔로마 마운틴에도 다시 올랐다. 팔로마 마운틴은 한국의 가을 느낌일 거라고, 엄청 예쁜 곳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이끌었는데.. 어라.. 몇 달 전에 혼자 찾았을 때랑 거의 비슷하다. 머문 시간이 짧아 못내 아쉽고 너무 먼 곳을 이끌어 미안한 마음이 가득.
은행과 카드를 하나하나 닫고, 여기서 쓰던 물건도 하나 둘 처분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선택'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갈 길'이 항상 같지는 않고,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길'과 '내게 진정으로 좋은 길' 역시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다.
특별히 막 무언가를 억지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이 곳에서의 생활이 정리되어가고 있다.
삶이 일상이 늘 그대로이지 않고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신.비.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