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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정죄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스크린 속,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보였다.


녹색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쪽진 머리에 옥비녀를 꽂은 노인이었다. 걸음이 무척 느린 탓에 노인은 결국 맨 뒤에 줄을 섰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뚝였기 때문이었다.


순간 벌떡 일어선 내가 뚫어져라 화면 속 노인을 바라봤다.


녹색한복에 쪽진 머리, 절뚝이는 걸음, 매화꽃장식 옥비녀…….


노인은 분명 27년 전 홀연히 사라진 내 어머니였다.




“아니, 어머니가 어떻게 이런 곳에…….”




어머니와 주양현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극한 혼란 속 우려와 기대가 뒤섞인 미묘한 감정이 차올랐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간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도 알아냈다. 이런 곳에 계셨으니 내가 찾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하필 사이비교주 주양현과 함께 만났다는 사실이 몹시 거슬렸다.




“어머니가 강단 위로 올라가시면 분명 주양현이 얼굴을 알아볼 텐데…… 어쩌지?”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돌아선 주양현이 꿇어앉은 박태식 앞에 섰다.




“선생님께서는 죄를 고백하셨으니 약속대로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하나 귀가에 앞서, 고백하신 죄를 씻어내야 하겠지요?”

“……예?”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든 박태식이 주양현을 바라봤다.




“두려워 마십시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주양현이 손짓하자 12명의 사도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 줄을 선 사람들 손에 뭔가가 쥐어졌다. 사도들이 분배한 무엇이었다.




“성도 여러분! 제 정죄의 권능을 여기 줄 선 분들에게 잠시 나눠드릴 것입니다. 죄를 품은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박 선생님의 죄를 응징하시기 바랍니다.”




단상 뒤로 물러선 주양현이 손짓했다. 그러자 박태식을 둘러싼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힘껏 무언가를 던졌다.




퍽! 퍽!


탁탁탁탁!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바탕 소란스러웠던 소음이 지나가고 곧 사람들이 흩어졌다.




“아, 아니 이럴 수가…….”




스크린 속 박태식이 보이자 청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했다. 쓰러져있는 그는 피투성이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또한 그 주변으로는 피 묻은 돌멩이가 잔뜩 흩어져 있었다.


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처참하게 응징당하는 박태식을 수없이 상상했던 나였다. 그런데 막상 저 꼴을 보니 조금도 후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무겁고 불편했다.


박태식이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그놈을 응징한 인물이 다름 아닌 주양현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 앞에 나타난 오승욱이 주양현이 확실하다면 나 또한 박태식 꼴이 날 게 분명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한시라도 빨리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집회가 끝나는 대로 어머니를 데리고 이곳을 나가야 해.’




결연한 나의 손끝이 연장을 힘껏 움켜쥐었을 때였다.


사도들이 일으켜 앉힌 박태식의 피 묻은 얼굴을 주양현이 손수건으로 닦아내자 희미하게 의식이 남은 박태식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자, 이제 선생님 죄를 완전히 씻어내기 위한 마지막 절차가 남았습니다.”

“…….”

“선생님이 괴롭혔다던 그 친구분, 이름이 무엇입니까?”


.

.


“이, 이우준이올시다.”

“그 친구분께 사죄하고 용서받길 원하십니까?”

“……예.”




힘겹게 대답한 박태식이 자포자기한 듯 눈을 감았다. 그의 이마를 타고 다시 피가 흘러내렸다.




“이우준. 제 친구와 이름이 똑같군요. 혹시 그 친구 분께서 지금 이곳에 와 계십니까?”

“…….”




일순간 적막이 맴도는 가운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느닷없이 내 이름이 불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손발이 저려왔다. 물론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저 멀리 있는 박태식이 알 리 없었다. 세월이 묻은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터였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꾸만 내 심장을 압박했다.


스크린 속, 희미하게 눈을 뜬 박태식이 찬찬히 청중을 둘러보는 게 보였다. 상처를 지혈하지 않은 탓에 그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놈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다시 몸을 웅크렸다. 강단에서, 그것도 가장 멀리 떨어진 거리였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이우준이란 친구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

.


“……저……기.”




힘겹게 팔을 올린 박태식이 손가락을 뻗은 순간이었다.



쿵! 철컥!



순식간이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박태식의 대답과 동시에 튀어 나간 나는 문을 열고 전력질주를 했다. 대리석 바닥에 연장을 내던진 직후였다.




“헉헉…… 안 돼!”




꽃길이 닫히는 중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길이 닫히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나를 죽을힘을 다해 뛰게 했다.




“헉헉…… 제발! 헉헉…….”




간신히 차에 올라탄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시동을 걸었다. 아직까지 교회 밖으로 나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시동이 걸렸다.




***




“후우…….”




교회가 보이지 않을 만큼 꽃밭을 벗어난 후에야 나는 안도의 숨을 뱉어냈다.


입고 있던 하얀 셔츠가 흠뻑 땀에 젖어있었다. 도로 위에는 여전히 나 혼자뿐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쫓기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막혔던 숨통이 쉬어졌다.




“이제야 주양현이 실체를 드러냈네. 그래, 그거지!”


.

.


“네 놈 속이 그렇게 시커멓지 않고서야 별안간 내 앞에 나타날 리 없지.”


.

.


“오승욱이란 가명까지 써가며 순진한 얼굴로 복음을 전하는 목사라더니 이건 뭐, 망나니처럼 날뛰는 사이비였네. 하!”


.

.


“그러니 감나무에 매달린 원귀들이 보일 수밖에……. 하, 하하하하하!”




탁 트인 도로 위, 한껏 속력을 높인 나는 실컷 혼잣말을 쏟아냈다. 드디어 주양현의 실체를 알아냈다는 성취감이었다. 더불어 처참히 죽어가고 있던 박태식의 최후도 볼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종교도 없던 놈이 별안간 선한 목자로 부활할 리 없지. 나쁜 새끼!”




오승욱이란 이름으로 나와 가족을 농락한 주양현에 나는 여과 없이 욕설을 뱉어냈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니 꽉 막혔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마냥 속이 시원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만났어야 했다. 한데 그 망할 놈의 박태식으로 인해 어머니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도망치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마주치기만 하면 내 앞을 가로막더니 끝까지…….”


.

.


“뭐? 나한테 용서를 구하겠다고? 단지 집에 가고 싶어서? 하! 지옥에나 떨어져라! 퉤!”




차창 밖으로 침을 뱉고 고개를 돌리자 룸미러에 비친 내가 보였다. 잔뜩 독기가 실린 눈빛이 흡사 교주 주양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길 나갈 수는 있는 거야?”




실컷 욕설을 뱉고 난 후에야 나는 현실을 자각했다. 한 고비를 넘기니 또 하나의 산이 기다리는 셈이었다.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도무지 끝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기름이 먼저 바닥날 판이었다.




“여기에 갇히는 날엔 주양현이고 뭐고 다 무용지물인데…….”




불안한 마음에 핸들을 쥔 두 손 가득 힘이 들어갔다. 연료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속력을 낮추기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저만치 신호등이 보였다. 분명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교통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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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또 뭐야? 개미새끼 하나 없는 도로에 누가 저길 건넌다고…….”




막연한 경계 속, 신호등 근처에 차량이 다다르자 순간 빨간불이 켜졌다. 동시에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나는 차량을 멈춰 세웠다. 물론 길을 건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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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안이 바짝 말라왔다. 녹색불이 바뀌면 직진을 해야 할지, 아니면 유턴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19,18,17…… 4,3,2,1



곧 신호음이 울리며 신호가 바뀌고 녹색불이 들어왔다. 나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


횡단보도 너머 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주양현이 있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




마치 아이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 내 차는 이제 막 구룡터널을 빠져나온 길이었다. 도로 위에 밀집한 차량들과 사방을 둘러싼 구룡산 푸른 나무들이 늘 지나다녔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돌아왔어. 돌아왔다고!”




환호성을 지른 것도 잠시, 나는 다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16분.



집에서 출발한 지 정확히 16분 후였다.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시간이 흐르지 않은 거였다.


곧 갓길에 차를 세웠다. 침착해야 했고 정리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황무지, 꽃밭, 교회 그리고 사람들…….”




분명한 건 내가 다녀온 그곳이 시공간을 초월한 다른 차원의 세상이라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수많은 사람들과 사이비교주 주양현, 내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뭔가 단정할만한 확신이 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 두 눈으로 목격한, 그곳은 환상이 아닌 실체였다.




“아참! 내 휴대폰!”




순간 스친 생각에 다급히 폰을 집어든 내가 영상을 재생했다.


꽃밭 속 교회, 그리고 사이비 교주 주양현까지…… 모든 것을 폰에 담은 나였다. 숨어 찍느라 각도가 무너지고 흔들렸지만 녹화만 되어있다면 중요한 증거가 될 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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