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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 박태식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충격에 다리가 휘청거린 나는 비어있던 긴 의자에 간신히 몸을 앉혔다.


교회 안은 꽃밭보다 화려했다. 둥근 벽 곳곳 의미를 알 수 없는 벽화들이 가득한 데다 하늘만큼 높은 천장과 축구장만 한 규모, 광택 나는 대리석바닥은 마치 성스러운 궁전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실내는 등 없이도 밝은 편이었다. 열댓 개쯤 되는 크고 동그란 창가 안으로 햇살이 들이친 탓이었다. 분명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창이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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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자 강단과 2미터쯤 거리를 두고 양쪽으로 긴 의자가 줄지어 놓여있는 게 보였다. 어림잡아도 천여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빈틈없이 의자에 앉아 하나같이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이럴 수가…… 이게, 가능하다고?’




외관상 분명 작고 아담한 교회였다. 많아야 3~4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이런 외딴 벌판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니.’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 최소한 낯선 세상에 혼자 버려졌다는 공포는 사라졌으니까. 게다가 스크린에 비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평범해 보였다. 부활한 주양현과 겉과 속이 다른 교회를 제외하고는.


때마침 목을 축이고 손수건으로 입을 닦은 주양현이 마이크를 들었다. 고개를 빼들고 사방을 살피던 내가 잔뜩 몸을 움츠린 찰나였다.




“저는 분명 죽었지만 3일 만에 다시 살아났고 여호와 하나님은 저를 통해 예수 재림의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인간은 절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여러분은 구원받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모여 계십니다! 그리고 제게는 구원의 권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바로 재림 예수! 제가 누구라고요?”

“재림 예수!”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재림 예수! 구원의 권능을 가진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아멘!”




짝짝짝짝 짝짝짝짝!




“여러분! 성경은 필요 없습니다! 현세의 복과 내세의 영생을 원하신다면 제 말에 집중하시고 저를 따라오십시오! 구원의 손길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멘! 아멘!”




짝짝짝짝 짝짝짝짝!




두 팔을 번쩍 치켜올린 주양현을 향해 여기저기서 탄성과 아멘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천여 명의 박수갈채가 5분가량 이어졌다.




“성도 여러분!”




주양현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방금 전 호기로운 얼굴로 열변을 토하던 목회자의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여러분 모두가 영문도 모른 채 이 낯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집이 그리우시겠습니까! 그렇죠?”

“네!”




집이 그립다는 청중들의 대답이 흡족했는지 주양현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그래서 제가 오늘 특별히! 몇 분을 댁으로 먼저 보내드리고자 합니다. 그저 이 강단에서 여러분의 죄를 씻어내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멘! 아멘!”

“자! 그럼 어떤 성도님께서 가장 먼저 귀가하시겠습니까?”

“…….”




일순간 고요한 정적이 청중을 휘감았다. 방금 전까지 아멘을 외치던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 서로 눈치만 보는 중이었다. 죄를 씻어내야 한다는 말에 망설이는 모양새였다.


서서히 주양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자비 없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저는 이미 여러분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몰라 두려우시지요?”

“…….”

“그럼 어떤 성도님을 먼저 댁으로 보내드릴지, 제가 결정해 드리지요.”




그때였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네 명의 사도가 투명한 사각 케이스를 들고 강단 위로 올라왔다. 케이스 상단 중앙에는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있었고 안으로는 메모지만 한 하얀 종이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사각 투명 케이스 가까이 주양현이 다가서자 흩어져 있던 사도들이 그 뒤로 모여들었다. 총 12명의 사도들로 하나같이 덩치가 큰 몸집에 열과 각을 맞춘 모습이 마치 군대를 연상시키는 듯했다. 다만 이마까지 덮어씌운 망토 모자에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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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여러분 손등에 새겨진 고유번호가 쓰여 있습니다. 제비뽑기를 통해 선정되신 성도님은 오늘 댁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제가 번호를 호명하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교회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동시에 누구도 일어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도에게 마이크를 건넨 주양현이 투명 사각 통 안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잠시 후, 그의 손에 하얀 종이가 들려 나왔다.




“아, 이분이시군요. 축하드립니다! 686번!”




주양현이 번호를 호명했다. 그러나 의자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

.


곧 12명의 사도들이 일제히 청중 사이로 흩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도가 높이 손을 들었다.




“찾았습니다!”




큰 소리로 외친 사도가 다른 사도와 함께 누군가의 양팔을 잡고 강단 위로 올라왔다.




“놔! 이거 놓으라고!”




거칠게 저항하던 한 남자가 주양현 앞에 무릎을 꿇렸다. 대형스크린 속, 무릎 꿇린 남자의 머리 위로 주양현이 잠깐 손을 얹는 게 보였다.




“여기, 회개와 구원이 절실한 한 성도님께서 나오셨군요.”

“이거 왜 이래?! 나 이래 봬도 교회 장로야!”

“오! 그렇습니까? 그러고 보니, 거액을 헌금하고 장로라는 직급을 사셨군요.”

“…….”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매섭게 주양현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제 기억이 돌아오셨을 겁니다.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


“……박, 태식이올시다.”

“박태식. 저와 동년배이시군요.”




순간 나는 스크린 속 남자를 찬찬히 살폈다.


아담한 키에 원형탈모가 있는 제법 살집이 넉넉한 장년의 남자였다. 카메라가 주양현을 노려보는 남자의 얼굴을 확대했다. 그러자 통통한 볼 살에 좔좔 흐르는 개기름이 조명에 반짝거렸다.




“자, 선생님께서는 어떤 죄를 고백하시겠습니까? 댁에 돌아가실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흥! 네가 예수라고? 웃기시네. 세상에 신이 어디 있고 천국이 어디 있어?! 적당히 구원팔이나 해서 한몫 챙기려는 니들 수작, 내가 모를 줄 알고?!”




독기 어린 남자의 눈빛에 주양현이 웃었다.




“그래서 장로라는 직급도 돈으로 사신 거로군요.”

“너 같은 목사도 신 나부랭이 행세를 하는데, 나라고 못할 거 있냐?!”

“선생님께서는 아직, 이 자리가 실감 나지 않는 모양이시군요.”

“뭐 이 자식아?!”




두 눈을 부릅뜬 박태식이 달려들 듯 무릎을 일으키자 곁에 있던 모든 사도들이 다가와 남자의 양 어깨를 누르며 순식간에 박태식을 둘러쌌다. 강단에서도 스크린 속에서도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으아아악!”




잠시 후, 박태식의 짧은 비명과 함께 그를 둘러쌌던 사도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스크린 속 다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듯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사도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죄를 고백하시겠습니까?”




박태식 곁으로 다가온 주양현이 마이크를 들이댔다.




“…….”

“죄의 양이 너무 방대한가 보군요. 그럼, 어린 시절부터 떠올려보시죠.”




겁에 질린 남자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곧 새파래진 입술이 움찔거렸다.




“구……국민학교 때 반 친구를 괴……괴롭혔습니다.”

“친구를 괴롭혔다……. 어떤 친구였죠?”

“……지역에서 소문난 무, 무당의 아들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연장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저 동명이인일 거라 생각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 박태식.




“그 친구를 왜 괴롭혔습니까?”

“……처음에는 작두를 타는 그놈 모친 흉내를 내며 놀리기만 했었는데, 나중에 사생아라는 것을 알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남자의 말에 순식간에 청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한 가운데 주양현이 손바닥을 들어 보이자 이내 잠잠해졌다.




“놀리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게 다입니까?”

“……따돌림을 시키고 동네에서 마주치면 돌을 던지거나 골목으로 끌고 가 폭행했습니다.”

“그리고요?”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담뱃불로 지지거나 절도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언제까지 그 친구를 괴롭혔습니까?”

“고, 고등학교 때까지 그랬습니다.”




체념한 듯 고개를 떨어뜨린 박태식이 지난날을 실토하자 조금씩 웅성거리던 사람들에게서 경악과 탄식, 그리고 간간이 욕설이 터져 나왔다.




“훗날 그 친구에게 용서는 구하셨습니까?”

“……아니요. 모……못했습니다.”

“솔직하셔야 진정한 회개입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하신 거죠?”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박태식이 끝내 눈물을 보였다. 물론 눈물의 의미는 알 길이 없었다.


저런 꼴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난날이 용서되는 건 아니었다. 저놈이 까맣게 잊고 산 세월 동안 나는 고스란히 상처를 감당해야 했으니까.


그때였다. 남자에게서 눈을 뗀 주양현이 강단 앞에 선 채 청중을 바라보자 놀란 나의 몸이 절로 잔뜩 웅크려졌다. 행여 카메라에 얼굴이 잡힐까 싶어서였다.




“성도 여러분! 박 선생님께서 방금 죄를 고백하셨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선생님은 댁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청중들의 영혼 없는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박태식을 비난하면서도 막상 그가 집으로 간다 하니 내심 부러운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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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보셨다시피 집으로 돌아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해서 기회를 더 드리겠습니다. 오늘 바로 댁에 돌아가고자 하시는 분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십시오!”




주양현이 외치자 사방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하나 둘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껏 멋을 낸 20대 청년, 수수한 차림의 50대 아주머니, 막대사탕을 물고 있는 초등학생, 중절모를 쓴 점잖은 노인까지…… 강단 앞으로 나와 차례로 줄을 선 사람들은 각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카메라가 그들의 얼굴을 화면에 비췄다. 박수갈채가 쏟아진 가운데 주양현이 돌아선 순간이었다.




“어……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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