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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마음 깊이 죄를 품는 순간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도련님, 어머니를 찾지 마십시오.”




나지막하고 단호한 음성이었다. 내 입안에 쓴맛이 돌기 시작했다.




“찾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생사도 모르거니와 이제와 어머니를 찾으시는 건 도련님께 도리어 해가 됩니다.”

“그렇게 에둘러 말하지 말고 알아듣게 얘기하게.”

“설령 살아계신다 한들 어머니께서 이제껏 나타나지 않으신 연유가 있으시겠지요.”

“거짓말. 자네는 내 앞에 주양현이 나타난 사실뿐 아니라 어머니 생사까지 다 알고 있어.”




내 말은 확신에 가까웠다. 과거 어머니가 산속에서 사라질 당시 제를 올린 어머니는 순이를 먼저 집으로 보내셨다. 하여 순이 또한 어머니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했었다.


그때 나는 순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보잘것없는 이년의 능력을 높이 사주시어 감사합니다. 허나 맹세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사정이 급해 예까지 왔건만, 어머니가 없으니 이제 자네도 나와 무관하다 이건가?”

“죽어가는 절 거두어주신 은인인데, 그럴 리가요.”

“그 말에 거짓이 없다면 예까지 온 시간이 헛되지 않게 날 좀 도와주게.”

“…….”




질끈 눈을 감는 순이에 나는 무작정 기다릴 양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순이 만이 갑갑한 내 숨통을 트일 유일한 비책이니.


그런데 내가 남은 매실차를 채 비우기도 전, 눈을 뜬 순이가 입을 열었다.




“정녕, 악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순간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이미 갈림길 앞에서 순이 말을 믿지 않기로 한 나였다. 물론 그녀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어머니를 찾아 확인하기 전까지 맹신은 금물이었다.




“어머니가 계신 곳만이라도 알려준다면 내 더 이상 성가시게 굴지 않겠네.”

“만약, 세상에 없으시다면요?”

“…….”




나도 모르게 심장이 움찔했다. 막연했던 어머니 생사에 마치 종지부를 찍는 듯한 순이의 잔인한 한마디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자네가 날 도와야지.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자네도 앞을 내다보지 않는가. 그러니 자네가 내 피할 길을 열어주었으면 하네.”




조금은 뻔뻔한 요구였다. 내가 순이에게 물려준 거라곤 빈 곡간에 40년이 넘은 낡은 집뿐이었으니.


죽어가는 목숨을 살리긴 했으나 어머니 시중에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온 순이였다. 먹이고 재워주는 값 이상으로 그녀는 제 몫을 다했다. 그런데 뻔뻔하게도 나는 여전히 순이에게 갑질을 하고 있었다.




드르륵 탁!




그때였다. 인력이 아니면 움직일 리 없는 미닫이문이 저절로 닫히며 바깥세상을 차단시켰다.


놀랄 새도 없이 매캐한 공기가 금세 코를 자극했다. 향을 피웠던 흔적이 벽에 밴 탓이었다.




“큼!”




당황하지 않은 척, 나는 괜한 헛기침을 했다. 어느새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 순이가 보였다. 물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문이 닫히니 생각보다 방 안이 어두웠다. 그제야 나는 가부좌를 틀고 양 무릎에 손을 얹은 순이를 살폈다. 그녀의 왼쪽 손등을 덮은 검붉은 화상흉터를 본 거였다. 상처가 아문 것으로 보아 꽤 시일이 지난 듯했다.


순이가 눈을 떴다.




“과거, 저를 한번 웃게 해 주셨으니 도와드리지요.”




눈을 뜬 순이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말투에도 잔뜩 힘이 실린 게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거만함이었다. 손끝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도 그러했다. 마치 날카로운 맹수의 눈빛이 나를 꿰뚫어 보는 양, 묘하게 압도되는 긴장감이었다.




“절대 헷갈려서는 안 됩니다. 분별력을 잃지 마십시오.”

“…….”

“설령 어머니를 찾으신다 해도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눈을 크게 뜨셔야 합니다.”

“자네, 그게 다 무슨 말인가? 그럼 어머니가 정말 살아 계시다는 겐가?”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 드디어 답을 찾았다는 희열이었다.


순이가 한결같은 얼굴로 다시 입을 뗐다.




“자리의 두 주인이 나타났으니 도련님의 죄를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남은 생을 평생 속죄하며 사셔야 합니다. 마음 깊이 죄를 품는 순간, 그것이 도련님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나는 얼굴을 움찔거렸다. 역정을 내든 추궁을 하든 뭐라도 반응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침없는 순이 얼굴에서 그 옛날, 외할머니가 보인 탓이었다.


나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기운이었다.




“제 말을 명심하십시오. 그것만이 도련님께서 살 길입니다.”

“자, 자네……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겨우 말문이 트이자 나는 역정을 냈다. 막혀오는 숨에 간신히 손을 뻗어 미닫이문을 열자 탁 트인 풍경 멀리 청악산이 보였다.




“제 눈에 보이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나더러 온 세상 비난을 등에 지고 남은 생을 음지에서 쓸쓸히 보내다 죽으라는 건가?”

“누구보다 도련님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왜 그리하셔야 하는지…….”

“닥치게!”




벌떡 일어난 내가 순이를 내려다봤다.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모양새가 거슬리는 게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사라지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 지난 일로 날 쥐고 흔드는 꼴이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었다.




“난 억울하게 주어진 내 운명을 그저 극복하고 싶었을 뿐이네. 이제껏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를 그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는 말일세. 설령, 그게 자네라도 말이야.”

“…….”

“지난 일을 알고 있다 하여 행여 경거망동할 생각은 하지 말게나. 아무리 자네라도 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니.”




거친 나의 입담에도 꿈쩍 않던 순이였다. 별안간 그녀가 일어났다.




“도련님 명줄은 제 손에 없으니 염려 놓으십시오.”

“그럼, 내 명줄은 누구 손에 있는가?”

“그야, 진리를 품은 존재겠지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에 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듣고 싶은 해답이 아니었다.




“틀렸어. 내 명줄은 주양현이 잡고 있네. 내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저승길을 마다한 그놈은 악귀가 된 게 분명해.”

“그럴지도 모르지요.”

“지금 자네 그 말은, 내 앞에 나타난 놈이 진짜 주양현이라는 건가?”

“…….”

“말해 보게. 그놈이 사람인지, 아니면 망자인지.”




순이가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아 감나무가 있던 텃밭을 바라봤다.




“도련님께서 보시기 나름입니다. 성찰의 눈으로 보면 인간이요 육의 눈으로 보면 악귀이니, 도련님 마음의 눈 그대로 그분을 비추실 것입니다.”




말끝에 순이가 바깥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만 가보라는 무언의 재촉이었다.


곧 툇마루를 내려와 신발을 신은 내 뒤로 순이가 따라 나왔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나와의 연을 배웅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능력으로 점사를 하면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을 텐데, 자네는 왜 혼령을 거부하는 건가?”




슈퍼에서 구입한 쌀을 툇마루 앞에 놓아주고 문밖으로 돌아서던 찰나였다. 문득 궁금한 마음에 내가 물었다.




“저를 찾아오는 것들은 하나같이 악령들 뿐이라서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을까 겁이 납니다.”

“겁이 난다…… 그게 이유라고?”

“죄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비구니가 되려고 하는 겐가?”

“그곳에 진리가 있다면 머무를 것입니다. 허나 그게 아니라면, 다시 떠나야겠지요.”

“그깟 진리가 뭐라고 생을 바치는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은 참된 이치대로 제자리를 찾아갈 테니까요. 강건하십시오.”




문밖까지 따라 나온 순이가 멀어지는 나를 지켜봤다. 나는 홀가분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목에 걸린 잔가시처럼 거슬렸다.


다시 순이를 만날 일은 없을 듯했다. 막연하지만 조만간 어머니를 만나게 될 것임을 알았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다만 순이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나는 결국 묻지 못했다. 목과 손등은 어쩌다 그리된 건지 사정도 묻지 못했다. 내 사정이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진리는 개뿔! 그저 한번 사는 인생, 후회 없게 살다 흙으로 돌아가면 그만인 것을…….”




***




마을을 빠져나가려는데 어렴풋이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팽이나무 그늘 밑 평상에 앉아계신 할머니였다. 그냥 지나칠까도 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꾼 나는 차에서 내려 할머니께 다가갔다.




“어르신!”

“……누군교?”

“저 모르시겠어요? 기와지붕 감나무집 아들 우준이입니다.”

“우준이……? 아이고! 느가 우준이가?!”




기억이 떠오르셨는지 박복순 할머니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어머니가 실종될 당시 정신없던 와중에 아내와 딸 유림이를 알뜰살뜰 살펴주신 고마운 이웃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하모. 아는 잘 있나?”

“예.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참말로 다행이네. 한데, 예까지 우짠 일이고?”

“아, 볼 일이 있어 잠깐 내려왔습니다.”

“와, 모친 때무니가?”

“아니요. 벌써 27년이나 지났는걸요.”

“그래? 거 참말로 이상하네.”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는 박복순 할머니에 바짝 내 신경이 곤두섰다.




“왜, 그러시죠?”

“한 슥 달 쯤 됐나……? 즈기 소 키우는 언상댁, 알제?”

“예. 기억납니다.”

“그 할매가 말이다, 즈기 청악산서 느 애미를 봤다 아이가.”

“네?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한데 말이다, 그기 참말로…….”




노화가 온 흐릿한 초점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할머니였다. 빨리 대답을 듣고 싶었으나 인내심이 필요했다.




“제 어머니와 관련된 건 어떤 소식이든 상관없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언상댁 할매가 말이다. 그 므냐, 뜩집 아들…….”

“……주양현이요?”

“그래! 양힌이! 그 양힌이가 느 애미를 데꼬 산에 들가는 걸 봤다 아이가.”

“네? 그게 정말입니까?”

“하모! 참말로 이상치 않나? 한참 즌에 양힌이는 숨꼬 느 애미는 감쪽같이 사라짓는데 이제사 산을 돌아다닌다카니, 마 사람덜이 죄다 귀신이라 카더라꼬.”

“…….”




나는 침착하려 애써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럼에도 제어할 수 없는 심박수가 기어이 식은땀을 생성했다.




“지금 은상아주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를 뵐 수 있을까요?”

“마 가봐야 소용 읍따.”

“예?”

“구십이 다 된 할매라 그카고 한 달도 안 돼 갔다 아이가.”

“네? 돌아가셨습니까?”

“으디 그뿌니가?! 할매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카니, 느도 마 그른가뿌다 하믄 된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나는 서둘러 차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치매노인의 헛소리라 치부하며 한 귀로 흘렸을 터였다. 그러나 주양현이 나타난 이상, 그것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주양현…… 네가 감히 내 어머니를!”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나는 몇 번이고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쳤다. 그리고 잠시 후, 빠르게 마을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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