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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호산나교회

[미스터리 추리소설] 우리 집에 왜 왔니?

by 해달

고향을 다녀온 뒤 며칠이 지나서였다.


출판사 관계자들과 선약이 있다는 핑계로 집을 나선 나는 차에 올라타 곧장 시동을 걸었다. 굳이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검색할 필요는 없었다.


중곡동 호산나교회.


그곳이 나의 종착지였으니.


이미 저장된 목적지에 내비 속 음성에 따라 나는 핸들을 꺾었다.


주양현에게서 반드시 어머니를 구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기이한 일이었다. 분명 신호대기 후 직진하며 구룡터널로 진입한 후였다. 도로에는 다수의 차량이 즐비해 있었고 대부분 터널로 진입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터널을 빠져나온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낯선 도로 위를 운전 중인 나를 발견한 거였다.




“대체, 여기야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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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방금 빠져나온 터널도 사라지고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도로교통표지판조차 모든 게 전무했다.


이차선도로 양옆으로는 끝없는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다. 나무도 건물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나는 곧장 유턴을 했다.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비 속 음성은 연신 “직진입니다”를 반복 중이었고 나는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혹시나 싶어 핸드폰 통화버튼을 눌러보기도 했지만 먹통이었다. 차량을 세우려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그것도 소용없었다. 종종 듣던 라디오조차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들리는 지지직 소리만 난무했다.




“젠장!”




점점 목이 말라왔다. 화풀이를 한답시고 괜한 핸들만 내리쳤다. 갑자기 세상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 복잡한 감정을 양산했다.


차창을 내리니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한 하늘은 여전히 익숙한 9월의 환경이었다. 분명 터널을 진입하기 전까지 느꼈던 그것과 다름없었다.




“서울 땅은 맞는 것 같은데, 왜 개미새끼 하나 안 보이냐고…… 대체 왜, 왜!”




내비 속 목적지는 여전히 중곡동 호산나교회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량은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중이었다.


표지판 하나 없이 운전자라고는 나뿐인……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 위를.




***




얼마나 달렸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 속 음성과 함께 차량이 멈췄다.




“…….”




꾹 다문 입술과 함께 내 심장이 요동쳤다. 생전 처음 보는 세상이었다. 게다가 여기까지 오는 내내 나는 단 하나의 이정표도 보지 못했다.


꿀꺽.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마른침을 삼킨 후 차문을 열었다. 낯선 세상 위에 발을 디딘 거였다.




“여, 여긴…….”




잠시 후,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무지를 가로지른 도로 끝에는 마치 온 세상을 뒤덮은 듯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주황…… 색상도 크기도 모양도 가지각색인 화려한 꽃밭이 한순간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나 같이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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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상쾌한 바람에 꽃들이 흔들거리자 바람에 실린 꽃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다. 신기했다. 평소 그 어떤 꽃에도 무감각했던 내가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향기에 흠뻑 취한 거였다.




“휴…… 지옥에라도 떨어진 줄 알고 깜짝 놀랐네.”




그제야 내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맴돌았다.


도로를 달리는 내내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낯선 세상 속, 제어할 수 없는 질주가 나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일순간, 내 안에 평화가 안착했다.


변함없이 화창한 하늘, 나를 비추는 따사로운 햇살, 하늘과 맞닿은 꽃밭의 물결까지…… 그야말로 이곳이 천국이었다.




“가만, 아까도 저런 게 있었나?”




꽃들의 향연에 취해 뒤늦게 정신을 차린 후였다. 꽃밭 가운데 뭔가가 보였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건물이었다.




“호산나, 교회?”




건물입구에 큼지막하게 쓰인 간판을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비게이션은 고장 난 게 아니었음을……. 다만 중곡동이 아닌 천국동 호산나교회로 향했을 뿐이었다.




“이런 곳에 교회가 있다고? 벌판 한가운데?”




나는 찬찬히 교회를 훑었다. 뭔가 외관부터 달라 보였다.


돌인지 원석인지 모를 반짝거리는 하얀 외벽이 둥근 벽을 형성하고 있었고 고깔 모양의 빨간 지붕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지붕 위에는 하늘과 닿을 법한 대형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었다.


외벽 중앙에는 내 키의 두 배만 한 커다란 사각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황금색의 양문형 손잡이가 없었더라면 출입문이 있는지도 몰랐을 법한 입체감이었다. 교회를 한눈에 담아보자면 마치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그림이었다.




“낡은 지하건물에 처박혀있는 그놈 교회와는 차원이 다르네.”




내가 뚫어져라 교회를 살피는 사이, 어느새 꽃밭 가운데 교회로 가는 길이 열렸지만 나는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다.


처음 내가 집을 나선 건 중곡동 호산나 교회를 가기 위해서였으니. 아니, 정확히는 오승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구룡터널을 빠져나온 직후 나는 낯선 세상에 놓여있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황폐한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진 도로 위였다.


그런 가운데 어느새 나는 목적지에 와있었다. 중곡동은 아니었으나 눈앞에 보이는 건 분명 호산나교회였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해.”




나는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니 모든 게 다시 보였다.


잡풀하나 없는 허허벌판 끝에 이런 꽃밭이 존재한다는 것. 동물은커녕, 인간이 존재했던 흔적조차 없어 보이는 이곳에 버젓이 교회가 세워진 것까지…….


그러나 정작 문제는 나였다. 되돌아가자니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걸어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 목적은 교회가 아니라 오승욱을 만나기 위함이었어. 그렇다면…….”




순간 날 선 나의 눈빛이 빨간 지붕의 교회로 향했다.


딱히 새어 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찬송가도, 열정적인 목사의 음성도 들려오지 않았다. 교회에 창문이 없다는 사실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두 세상의 호산나…… 어쩌면 저기에 답이 있을지도 몰라.”




망설이던 내 안에 용기가 싹튼 순간이었다. 무언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터벅터벅



잠시 후, 트렁크에서 작은 연장 하나를 집어든 내가 꽃길에 들어섰다. 발걸음은 비장했다. 외관이야 성스러운 교회라지만 안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곧 다섯 개의 낮은 계단을 오른 내가 황금빛 손잡이를 젖히자 스르르 문이 열렸다. 연장을 움켜쥔 왼손을 등 뒤로 숨긴 직후였다.




*




“여러분! 저는 1967년 5월생으로 올해 나이 쉰일곱입니다! 그런데 저를 보세요! 제가 쉰일곱으로 보이시나요?”

“아니요!”

“그렇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27살에 멈춰있습니다. 과연, 그 이유가 뭘까요?”




멀리 강단 옆, 오른쪽에 비치된 대형스크린 안으로 주양현이 보였다. 단상 앞에 선 그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었다.


목사가운을 걸치고 강단 벽에 걸린 대형 십자가 앞에 선 그는 영락없는 목회자의 모습이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두 눈에 한껏 올라간 입매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여러분! 30년 전, 저는 누군가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죠. 왜일까요?”

“…….”

“성도 여러분! 부활한 저를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예수그리스도!”

“하하하하! 맞습니다! 저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려 목숨을 잃으셨지만 다시 부활하셨죠.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저를 모르실 테니 이것으로 증명하겠습니다.”




주양현이 카메라를 향해 주민등록증을 들이댔다. 그러자 스크린 가득 그의 사진과 생년월일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주양현…… 네놈이 진짜 살아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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