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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Jul 11. 2021


내가 살게 될 집은 어떤 곳일까

주제 사라마구「눈먼 자들의 도시」에는 “진짜 집은 그가 잠자는 곳”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또 어딘가에서는 "엄마가 있는 곳이 우리 집"이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부모님이 계신 친정에서 그것도 아이와 함께 1년 넘게 먹고, 자고 있는데 ‘우리 집에는 언제 가나’하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끼니마다 밥도 해주시고 반찬도 해주시고 아이 간식까지 만들어 주시며 지극 정성으로 대해주시는데도 어쩐지 편하지가 않다. 아주 복에 겨운 못된 자식인데 나처럼 코로나 사태로 친정이나 시댁에 머물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분가하는 교민들을 보면 한편으로 나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서 안도가 된다.  


텔레비전에서 모 연예인이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데 시어머님께서는 모든 요리를 가위로 하셔서 주방에 가면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고민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살림에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본인의 룰이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결혼해서 아이 키우며 나름대로 살림 좀 했다고 그새 내 스타일이 생겨서는 엄마의 살림 방식에 대해 왈가불가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엄마가 마음을 다치셔서 집안 분위기는 냉랭해졌고, 더 잘해보려는 의도였다 한들 그 누구도 기분 좋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야 때로는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으로 배웠다.  


엄마는 큰 며느리로 특히나 큰손으로 어른들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작은 손으로 유명하다. 집에 사과나 당근이 필요하면 사과 세 알, 당근 한 개를 사고, 엄마는 1박스를 주문하신다. 중국에서는 식자재를 그램으로 판매하고, 개별 포장하는 곳이 많아 마음껏 적게 샀다. 더욱이 타국에서 딱히 갈 곳이 없어 거의 매일 마트나 시장을 다녔기 때문에 조금씩 사도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살림 방식은 엄마를 답답하게 했고, 나 역시 그러했다. 이래서 집안에 곳간 주인은 한 명이어야 한다.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밥을 먹고, 만들어 주시는 잠자리에서 30년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살림 방식이 다른 것도 신기하다. 머리가 커지면, 어른이 되면 독립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고, 옳다. 


부모님과 동생은 말한다. 왜 그렇게 날을 세우고 힘들어하냐고, 우리 집이니까 편하게 지내라고 말이다. 분명 내가 목숨만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우리 집인데, 힘들다. 보관된 생필품들이 어디 있는지 매번 묻고 찾는 게 보물찾기 수준이고, 인주는 집에 있는 것인지 사야 하는지 또 물어 확인해야 하는 것이 눈치 보이고 미안하다. 빨래는 좀 모아두었다가 이 틀에 한 번 하면서 집안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루가 힘들었던 날은 잠자리에 누워서 상황을 곱씹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참지 못했고, 부드럽게 듣기 좋은 단어와 억양으로 말하지 못했다. 분명 더 좋은 전달 방식이 있었음에도 실행하지 못해서 가족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후회가 밀려온다.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서른도 아닌 마흔의 자식을 보살펴 주시는 것에 감사한다. 두려움 없이 누울 수 있는 곳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혹 누군가 ‘우리 집’에 관해 묻는다면 ‘내가 모든 것을 선택하고 판단하여 통제할 수 있는 곳’. ‘고무장갑을 두고 싶은 곳에 둘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덧붙여 나에게는 친정집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안식처이자 도피처. 언제나 나를 받아 주는 가족들이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뉴스를 챙겨보지 않아도 '집'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옵니다. '집 값'도 분명 집에 관한 일이니까요.
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집에는 사람이 살아야 집이되는데. 언제쯤이면 집보다 사람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어떤 집에서 살게 될까요?

혼자일까요, 함께일까요.

함께라면 누구와 밥을 먹고, 눈을 맞추고, 포근한 이불을 덮게 될까요.

돌아오고 싶은, 맘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집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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