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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Jul 11. 2021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짐이
필요할까

결혼 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무인도에 간다면 가져갈 물건은?” 몇 가지 이야기했지만 그중 기억나는 것은 노트북이었다. 전기가 없어서 노트북을 쓰지도 못하겠지만 당시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중요한 건 노트북과 그 속에 있는 자료였다.


출산 후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내가 본 것들은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고, 생각한 것은 글로 정리했다. 성인이 된 이후 컴퓨터는 언제나 중요했다. 다만 팔이 두 개여서 아이를 안고 기내용 캐리어 15kg과 기저귀와 분유와 비상용품 그리고 유모차를 옮기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특히나 공항 검색대에서 가방 속 노트북을 넣었다 뺏다 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출산 후 일이 년 정도는 악착같이 노트북에 외장 하드에 전자책 리더기까지 바리바리 챙겨 다녔지만, 몇 번 다녀보니 힘도 많이 들고 막상 가지고 와 보면 사용할 일도 적고 해서 이번에는 과감히 모든 걸 포기했다.


대신 한국에서 가지고 와야 할 아이 물건과 엄마의 소중한 반찬을 잔뜩 쟁여 넣기 위해서 큰 캐리어에 도착 당일 아이와 내가 입을 실내복만 대충 던져 넣었다. 내 평생 그렇게 간편한 여행 준비는 처음이었다. 어찌나 편하던지. 공항에서 무게를 확인해 보니 15kg도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볍게 친정에 왔는데 코로나로 출국을 할 수 없게 되고, 1년 넘게 내 물건들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영영 다시 만져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가 됐다.


처음 몇 달은 버텼다. 당장 사용하진 못 하지만 뻔히 멀쩡하게 있는 물건을 또 사는 것이 내키질 않았다. 그런데 이내 불편해졌고, 불편함은 우울함으로 바뀌었다. 컴퓨터가 가장 시급했다.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고, 아이가 잠든 후 아무 생각 없이 맥주 한 캔 마시며 빤히 바라봐야 하는 넷플릭스도 볼 수 없었다. 답답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는지 남편이 먼저, 그리고 후에 내가 노트북을 마련했다. 그 뒤론 사는 것에 맛이 들여 쇼핑몰 VIP가 될 때까지 샀다. 그동안 사용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물건들에 보상이라도 받듯 정신없이 사들였다. 마침 아이가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해서 당위성도 생겼다. 사들이고 카드 고지서를 받고, 명세서에 적힌 금액을 보고 충격받았던 전달의 기억을 망각하고 또다시 사고. 어느새 방은 물건들이 사는 집이 되었고, 그쯤 남편은 중국 우리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집에 도착했을 때, 일 년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물건들은 빛을 잃은 상태였다. 짐 정리를 위해 남편은 물건 목록을 보내 주거나 사진과 영상을 통해 물건이 필요한 것인지 묻고 또 물었다. 대부분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거나 아이가 커서 더 이상 쓸모없게 되어 처분해야 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 포장을 뜯지도 않았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생필품, 건강 챙기라고 양가 어른들께서 챙겨주신 고가의 영양제와 한약 등. 나중에는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 물건의 가격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물건에 깃든 기억 때문이었다. 손자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마련해주신 물건, 동생이 언니 타국에서 건강하라며 챙겨준 물건들, 갖고 싶어서 열심히 돈 모아 산 내 물건, 아이가 입었을 때 너무너무 깜찍했던 우비. 곰팡이가 슬거나 악취가 나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물건들이 버려질 때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남편에게 정리를 맡겼다.


영화 <100일 동안 100가지로 100퍼센트 행복 찾기>에서는 물건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던 두 친구가 물건 없이 살 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평균적으로 1만 개의 물건으로 생활하는 우리가 훨씬 더 적은 물건으로 생활했던 이전 세대보다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물건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전히 매일 무언가를 사는 입장에서 물건이 행복을 준다고 말하고 싶다.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두 번 사용되고 버려지거나 잊혀 쌓이는 물건은 불편함과 괴로움을 남긴다. 우리 세대와 아이들을 위해서도 분명 멈춰야 하는 일이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짐 정리를 마치며 나직하게 이야기한다.

 “이제 우리 진짜 미니멀로 살자. 더 이상 버리는 건 못하겠다.”

핸드폰 화면 속 허탈한 남편의 눈을 보며, 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곁에 있는 물건 10가지는 무엇인가요?
어른 키 반만한 캐리어에 25kg의 무게에 해당하는 물건만 담을 수 있다면 무엇을 넣게 될까요?
여행길에 꼭 가지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요?

물건을 버려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건, 언젠가는 버리게 됩니다. 사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짐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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