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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Sep 24. 2022

항공권 오버부킹으로 프랑스여행,  비즈니스석 탑승

내 인생의 복권 당첨

      

지인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축하 인사 다음으로 듣게  말은 “신혼여행 어디로 가? 신혼여행 가서 좋겠다”였다. 나 역시 식장을 알아본 시간보다 여행사 홈페이지를 더 많이 들락거렸으니 신혼여행의 기대감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남편의 여행지 1지망은 뉴질랜드였고, 2지망은 노르웨이였다. 뉴질랜드는 <반지의 제왕> 촬영지를 둘러 보고 대자연을 맘껏 즐겨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고, 노르웨이는 현지 고등어를 먹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고등어와는 별개로 북유럽은 가 보고 싶어 알아보니 예산 초과였고 출발 일정도 맞지 않아 목록에서 제외했다.     

나는 사람과 건물이 보고 싶었다. 정신없이 다니며 어제는 ‘저’ 성당 오늘은 ‘이’ 성당에 가고 싶었다. 다행히 휴양지는 '나중에도 아이와 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의견이 일치되어서 뉴질랜드와 유럽이 각축을 벌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양보가 안 됐는데 생각해보니 남편보다는 내가 여행을 많이 다녔고, 가보지 않은 곳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뉴질랜드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다니고 싶어 날짜와 일정이 맞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계약금을 낸 이후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뉴질랜드는 모객이 되지 않아  출발이 어려우니, 동유럽으로 여행지를 바꾸는 건 어떻겠냐는 전화였다.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속으로는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동유럽으로 신혼여행지를 확정 지었다.     


결혼식 하루 전날 여행사에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확인 사항 전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대뜸 귀국 일정 변경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고 머뭇거리니 항공사 사정이 있으니 일정을 변경해 주시면 체코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비행기표, 파리 호텔비, 파리에서 한국으로 오는 국적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주겠다는 제시를 한다. 듣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 무엇보다 12시간 비행을 비즈니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 꿈같았다. 배우자와 상의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이미 내 마음은 파리에 가 있었다. 우리는 결혼식을 위해 업무 일정을 미루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와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틀 정도의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전화기 너머의 남편 목소리 역시 들떠있었다.     


여행사의 전화를 받은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 다음 날을 결혼식 날짜로 잡는 게 평생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한 번에 퉁 치게 되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생일날 이런 전화를 받고 보니 선물이다 싶었다. 다시 여행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파리 일정에 동의한다고 말하며 몇 번을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는지 모른다. “오늘이 제 생일인데 선물을 주시네요” 하며 상대방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말까지 주절거리며 핸드폰을 들고 보이지 않는 상대방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까지 했다.     


공항에서 인솔자님과 처음 대면하던 날 인솔자님께서 옆 말로 살짝 “귀국행이 프랑스에서 오시는 거죠?”하고 물으셨다. 느낌상 ‘아! 이건 다른 여행객들에게는 비밀이구나’ 싶어 일절 대화의 주제로 삼지 않았다. 며칠간 여행을 한 후 일행들과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밥을 다 먹었을 무렵 한 분이 말을 꺼내셨다.


 “다들 귀국 일정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왔다. 우리와 같이 프랑스로 가시는 분이 두 분 계셨고, 열 분 정도는 마지막 여행지인 체코에서 예약된 호텔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고 외국 항공사 비행기 비즈니스석으로 귀국하신다고 했다. 프랑스와 체코가 아닌 곳으로 가시는 분들도 계셨고, 제의는 받았지만, 일정이 되지 않아 바로 귀국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리고 몇몇 분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분들도 계셨다. 다들 궁금해하던 이야기를 마치고 나자 또 다른 분이 물으셨다.  

   

“다들 처음 정하셨던 여행지가 어디셨나요?"     


그러자 이번에도 여기저기서 대답이 나왔다. 부부 동반 모임으로 오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부부, 부자, 모자, 자매처럼 두 명이 여행을 온 경우가 많았는데 많은 분들이 우리처럼 여행사의 제안에 따라 여행지를 변경한 경우였다.

추론해 보자면 모임 여행으로 동유럽을 결정한 다수를 위해 소수의 인원을 끌어모아 단체여행 출발 확정을 성공시킨 사례 같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뭔가 좀 찜찜하기도 했지만, 비즈니스석 이야기를 다시 화두에 올리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내가 전화기에 대고 인사를 했다고 하니 앞자리에 앉아계시던 분이 말씀하신다.  


“사실 그렇게 고마워할 일은 아니에요. 항공사에서 오버부킹이 된 걸 여행사에서 해결한 것뿐이에요.”      

    

오버부킹? 오버부킹으로 호텔과 비행기 티켓이 제공된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라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행복한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오버부킹을 검색해 봤다. 오버부킹은 항공사가 출발 직전 표를 취소하거나 당일 탑승자가 없어 좌석이 비어 손실이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좌석보다 많은 티켓을 판매하게 되는데. 출발 당일 티켓 취소자가 없어 좌석이 부족하면 티켓을 가진 일부를 비행기에 탑승시키지 않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버부킹은 피해 사례로 검색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며칠 전도 아닌 몇 달 전에 일정을 세워 출발 확정 티켓을 구매했는데 당일 공항에서 탑승 거부를 당하는 사례였다. 티켓을 확인해 보면 좌석 자리가 적혀 있지 않고 GTE, ABY라고 표시되면 탑승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거나 자진 탑승 포기하여 항공사와 대안을 논의하거나 보상받아야 한다고 한다.  심한 경우 비행기 탑승 후 하차를 통보받는 경우도 있었다.     


갑자기 오버부킹 대상자가 되어 비행기 탑승을 하지 못하게 되면 일정에 영향을 받게 된다. 호텔 예악, 환승 비행 항공편, 귀국 항공편, 현지 투어나 업무 등 일정을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귀국 일정이 바뀌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출발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다. 몇 달을 계획하고 기다려 공항에 와서 짐까지 보냈는데 비행기에 태워주지 않는다니……. 공항에 누워 항의하고 싶은 심정일 것 같다.     


오버부킹 탑승 불가 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항공사마다 다른데 보통 체크인을 늦게 했거나 할인 티켓을 구매했거나 항공사 멤버십 등급이 낮은 사람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상 역시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이 있지만 항공사마다 세부 규정이 다르다. 대부분은 탑승 비행기 좌석을 업그레이드 받거나 다음날 비행기 표와 하루 동안 머물 호텔, 식사비, 공항과 호텔을 이동하는 교통비 등을 지원 받는다. 항공사로부터 마일리지나 바우처를 제공받았는데 항공권을 사용할 수 있는 구간과 기간이 정해져 있어 적절한 보상이라 보기 어려워 추후 분쟁이 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보통 오버부킹은 말 그대로 당일날 발생하는 사건이므로 미리 예견하기 어려운데 우리가 탑승할 비행기에는 패키지 여행팀처럼 노쇼가 예상되지 않는 인원들이 많아 오버부킹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급하게 우리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생겨서 개인 보다는 일 처리가 빠르고 추후 문제 해결이 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여행사에 일을 전담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여행사 내에서 일정을 조율하며 생긴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패키지 오버부킹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종종 있었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우리 부부는 비즈니스석 비행기 티켓과 파리 부티크 호텔 숙박권을 받았는데 후에 일행분의 협상력으로 호텔 픽업 서비스도 받게 됐다. 책상에 앉아 하나하나 따져보니 '밥값까지 받았어야 했나'하는 못된 심보가 스멀스멀 춤을 춘다. 이래서 어리석은 자들은 결국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게 되는 건가 보다.     


글을 쓰려고 곱씹어 상황들을 떠올려보니 여행을 기획하고 조율한 여행사 직원분의 엄청난 역량이 돋보인다. 목적지가 달랐던 사람들을 설득해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한 곳으로 가게 했다. 출발이 확정됐는데 오버부킹으로 이탈자가 생길 위험이 발생하자 고객에게 맞춤 대안을 제시해 문제없이 패키지 팀을 만들어냈다. 아마도 노년층 고객에게 인솔자 없이 파리로 이동해 하루 더 머물 것을 제안했다면 좌석이 업그레이드된다고 해도 오케이를 받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평균연령 30대였던 우리에게는 체코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대신 국적기를 업그레이드해 주었고, 호텔은 “프랑스 시내를 도보로 여행하기 좋은”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 부티크 호텔로 예약해 주었다. 체코에 하루 더 머문 분들의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5성급 호텔에서 하루를 쉬고 여행 마무리를 하셨던 것이 나쁘시진 않았을 것 같다. 프랑스로 떠났던 우리 역시 에펠탑과 몽마르트르에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고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부티크 호텔이 새로웠고, 지하철로 이동하기가 좋아 만족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과정을 거치며 기분이 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전화기 너머 직원분의 목소리는 정중했고, 대화의 내용은 명확했고, 일의 진행은 빨랐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협상력에서 굉장한 내공을 가진 분을 만났던 것 같다. 누이 좋고 매부 좋기는 말처럼 쉽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도 남편과 프랑스 이야기를 한다. 물론 공짜 비즈니스석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그 좌석의 넓고 쾌적함은 여전히 기억된다. 즐겼어야 했는데, 너무 편해서 잠깐 눈붙이고 일어나 보니 인천이었다.      


복권에 당첨되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개인적으로는 신혼여행에서 받은 오버부킹의 혜택을 복권 당첨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너무 현실적인가? 남편은 노르웨이에서 낚시해 고등어를 먹는 꿈을 놓지 않고 있다. 한쪽이라도 꿈을 꾸고 이루면 옆 사람도 덩달아 득을 볼 수도 있을 테니 그 꿈을 응원해 본다.



파리의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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