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의 맛을 본 후 다른 나라 땅을 밟기 위해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켰다. 찾는 이에게만 보이는 마법이 통했는지 모 기업에서 주관하는 단체여행 공고를 발견했고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백두산 천지였다. 이동 방법은 비행기가 아니라 배와 관광버스였다. 첫째 날 기관에서 가까운 곳에서 모여 관광버스를 타고 ‘속초항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객 터미널에는 이미 많은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대부분 손으로 들 수 있는 최대한의 짐을 옆에 두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검은색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관리자와 함께 터미널 이곳저곳을 다니며 코를 바삐 움직였다. 반짝거리는 짙은 검은 털이 풍기는 위압감 때문인지 레트리버가 가까이와 킁킁거릴 태세를 보이면 여객들은 한발 물러서서 개가 다가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승선이 일의 연속인 보따리상들과 러시아 혹은 러시아를 통해 중국에 들어서기 위해 배를 선택한 승객들 그리고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배에 올랐다. 17시간 동안'동춘호'에서 잠을 자고 두 끼의 식사를 한 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자루비노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입국 수속을 하고 잠깐이나마 보드카 쇼핑을 한 후 준비된 관광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이곳은 좀 전에 보았던 그곳인 것 같은 비슷한 풍경을 한 시간 넘게 본 후 드디어 중국 국경을 통과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인 우리는 또다시 입국 수속을 하고 학습된 듯 차에 올랐다. 그리고 차를 타고 달리고 달려 길림성(吉林省)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있는 훈춘에 도착했다. 그리고 길고 긴 시간 끝에 우리의 여행을 책임질 가이드를 만났다.
가이드는 씩씩했고, 싹싹했고, 솔직했다. 가이드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과 자신의 꿈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어르신들은 아들이라기보단 손자에 가까운 그 청년의 용기와 성실함에 환호했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이야기보따리 때문이었다. 여행 출발일에 관광버스에 오르며 잠시 “내가 이 차에 타도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대부분이 노년층의 어르신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고, 그토록 기다리던 여행이니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단체여행인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나’라며 마음을 다독였다. 이틀에 걸쳐 순탄하게 국경을 넘으며 쓸데없이 괜한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가이드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음담패설’이었다. 그 많고 많은 이야기의 끝이 어찌 그렇게 모두 일관되게 19금으로 끝이 나는지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저렴한 여행 상품이어서 그런 건지, 일정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우리의 차는 달리고 달리기를 반복했는데 차 안에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몇몇뿐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어찌나 귀엽게 여기시는지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60세 이상의 분들이 39금도 아닌 19금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귀엽고 가소로웠을 것인가! 나도 처음에는 이야기가 궁금해 눈은 차창에 두고 슬쩍슬쩍 들으며 억지로 웃음을 참았는데 떳떳하게 듣지 못할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몇 시간 반복되니 괴롭고 난감했다. 가이드가 생각하기에 너무 수위가 높다 싶을 때는 나를 콕 집어 “거기 중간자리는 귀를 잠깐 막으시고~”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또 나를 한번 스윽 보시고 아이들처럼 까르르 웃곤 하셨는데 나로서는 참으로 민망했다. 어른들 놀이에 낀 여덟 살 꼬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알아듣지 못하는 세 살 이었다면 천진난만하기라도 했을 텐데. 나는 모르는 것 같지만, 알건 다 아는 눈치 있는 여덟 살 이었다.
“애들은 집에 가라”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몸소 체험했다. 야한 이야기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물론 이야기가 야하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야기꾼의 능력이 탁월했다. 모든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었으며, 남녀 구별 없이 다수의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했고, 임팩트와 결말을 위한 목소리 강약 조절도 탁월했다. 청중이 떠나가지 못하도록 이야기판을 사로잡은 카리스마가 그에게는 분명 존재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도 있긴 했지만 분명 해학과 풍자도 존재했다. 울렁거리는 차 안에서 세련된 단어가 오갔다면 과연 그 긴 시간을 집중할 수 있었을까? 가이드의 쉬지 않는 입담 덕에 어르신들은 박장대소하셨고 이겨내기 힘들 법한 도로 위의 시간도 후딱 흘려보냈다.
며칠을 어른들의 찐한 이야기로 가득 채웠는데,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다만 그때의 분위기와 기분은 잊히지 않는다.
백두산 여행 이후 패키지여행을 결정할 때는 여행사 측에 문의해 연령대를 꼭 확인한다. 대략적인 여행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일행에게 환영받지 못한 팀원이 되고 싶지는 않기 위해서다.
재간 있고 눈치 빠른 가이드의 꿈은 내 집 마련이었다. 건물을 지어 부모님과 형제에게 집을 나눠주고 가족들과 가까이 오래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간 그를 본 어르신들께서는 여행을 마치고 그와 헤어질 때, 청년의 어깨를 토닥이시며 말씀하셨다.
“자네는 꼭 집을 살 수 있을 거야.”
그때는 말하지 못했는데, 나는 이야기꾼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나는 아직 집을 사지 못했다.
그는 집을 샀을 것이다.
그때 분명, 그는 내 나이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여행자였고, 그는 가정 경제와 본인의 꿈을 위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직업인이었다.
숨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일행들을 돕던 가이드 청년.
내가 지금껏 보아 온 열심히 사는 이들 중 한 명인 그가, 삶에서 이리저리 치일 때면 문득문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