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맛본 토마토 스파게티는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1990년대 초 어린이 스키캠프에서 제공된 점심이었다. 크리스피도넛은 2000년대 중반에 매장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덩달아 줄을 서서 받은 '오리지널 글레이즈드'가 첫 한입이었다. 스파게티는 쿰쿰하고 시큼한 맛이 비위에 맞지 않아 절반도 먹지 못했고, 도넛은 충격적일 정도의 단맛과 느끼함에 세입을 먹지 못했다. 지금은 당연히 옆에 시원한 콜라나 맥주가 있다면 하루 정도, 어쩌면 사흘 동안은 스파게티와 크리스피도넛으로 끼니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낯설어도, 먹어볼수록 익숙해지는 맛이 있는가 하면 영 그렇지 못한 음식도 많다. 쌀국수는 20년째 부적응이고 고수는 중국에서 몇 년간 매일 맡은 향임에도 불구하고 그 향이 너무 강해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 몇 안 되니 까다롭다기보다는 스스로 국제적이지 못한 입맛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항아리에 넣어 만드는 '테스티케밥'
터키 여행이 확정되고 일정을 확인하며 ‘양고기는 못 먹으니 호텔 빵이랑 밥이나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워낙 시중에 반찬이 상품으로 잘 나와서 캐리어에 넣어 갈 수 있지만 몇 번의 여행 경험상 막상 가지고 가면 짐만 되는 경우가 더 많아서 따로 챙기지 않았다. 패키지 호텔 조식은 먹을 만하기도 하고, 호텔 식당에 우리나라 반찬을 가지고 가는 것이 내키지 않기도 해서 반찬의 포장을 뜯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일정 이동 중에는 소지품 가방 속에 반찬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일이라 호텔이나 차에 두고 오다 보면 결국 고스란히 나와 함께 귀국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컵라면 2개와 죽 3개 만을 비상식량으로 챙겨 넣었다.
터키에서 처음으로 식사하던 날 향신료의 맛을 보고 ‘설마’를 외쳤고, 세 번째 식당에서는 ‘아차’를 외쳤다. 나는 터키와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많은 곳에서 먹는 볶음밥인 필래프(pilaf)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필래프는 우리의 밥과 다르게 쌀을 버터나 기름으로 먼저 볶고, 고기, 채소, 해산물 등을 더해 소스와 볶은 후 육수를 넣어 끓인 음식이다. 이때 당연히 향신료는 빠지지 않는다. 조리법에 따라 순서와 방식이 다를 수는 있지만 재료에 향신료를 넣어 기름으로 볶고 소스를 넣는다는 특징이 있는 요리다. 고기와 함께 부식으로 나온 필래프를 한 입 먹은 후, 여행 전부터 기대했었지만 결국 입맛에는 맞지 않아 맛만 보았던 스페인의 파에야를 떠올렸다. 받아들이지 못할 뿐 맛은 잘 기억하는 편인지 나중에 알고 보니 파에야는 이베리아 반도에 전해진 필래프가 변형된, 그 뿌리가 같은 음식이었다.
꼬치에 끼워 굽는 '쉬쉬케밥'
‘그냥 맨밥이라도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터키에서는 나에게 결코 흰 밥을 내어주지 않았다. 양꼬치를 옆 사람에게 주고 나면 밥이 남는데, 밥은 이미 향신료와 함께 볶아진 상태였다. ‘밥일 뿐이니 익숙해질 것이다’ , ‘이곳의 문화다.’, ‘터키는 미식의 나라다. 나는 먹을 수 있다’라고 생존을 위해 주문처럼 중얼거렸지만, 결국 몇 숟갈 먹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빵에 손을 뻗었는데 빵에서도 이국적인 향이 났다. 분명 빵의 모양은 내가 알던 그 녀석인데 맛은 왜 다른 건지. 당시 향신료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여서 그런 건지, 터키 빵에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재료가 들어가는 것인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 빵을 선물 받았는데 한입 베어 무는 순간 터키의 맛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제과점에 가서 이 빵에 무엇을 넣었는지 묻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안타깝게 빵 역시 다 먹지 못했다. 나의 입맛은 예전 그대로 세계화되지 못한 상태였다.
터키 여행 내내 나와 같이 음식을 못 드시던 분이 계셨다. 자녀들이 효도여행으로 어머님을 터키여행에 보내주셔서 친구분과 함께 오신 분이었는데, 두 분 중 한 분이 현지식을 전혀 드시지 못했다. 식사를 제대로 하시지 못해 여행 끝 무렵에는 호텔이나 차에 홀로 계시기도 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는 승무원들이 비행 내내 교대로 할머님을 간호했고, 인천공항에서 인사를 드릴 때는 휠체어에 앉아 계셔서 마음이 아팠다.
개인적으로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비용에 비해 좋은 호텔에 머물 수 있는 것을 꼽는다. 단점은 ‘음식’이다. 패키지 식사는 호텔식, 특식이나 전통식으로 불리는 현지식, 한식으로 구성된다. 이른 시간에 출발하는 일정이기 때문에 아침을 보통 호텔에서 먹고, 이동 중간마다 여행지에서 맛볼 수 있는 현지식을 먹는다. 그리고 고객들이 “아 진짜 한식 먹고 싶다”라고 볼멘소리를 할 때쯤 인솔자는 “오늘이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날입니다”를 공표하며 한식을 하사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 식당에서 중식과 한식 그 중간 어디쯤인 음식을 먹을 때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교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국에서보다 더 맛있게 한식을 먹었던 적이 많다. 현지식은 여행 일정표에 공지되고, 특식이라 불리는 현지식이 한두 가지 추가될 경우 여행 상품 단가도 높아진다. 즉 현지식은 터키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꼭 다녀왔어야 하는 파묵칼레나 파카도피아와 같은 관광 상품 중 하나다. 단지 입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다른데 ‘모양’에 비해 ‘맛’이란 것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에 여행사는 ‘맛’보다는 식당의 외관이 훌륭하거나 쾌적한 곳을 선택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건 도저히 먹을 수 없다”라는 곳은 아니지만, 맛으로 소문난 곳을 가 본 적은 없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도 현지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단체 관람객을 받아줄 이유도 없다. 그렇게 여행객들은 ‘비용’과 ‘시간’이라는 조건을 합리적으로 합의하고, 체험도 할 겸 적당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곳에서 현지식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패키지여행에서 맛본 음식 중 너무 맛있어서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의 음식은 이탈리아의 ‘젤라토’ 뿐이었다.
패키지여행을 다니며 덕분에 많은 음식을 맛보았다. 음식도 여행 상품으로 여겼기 때문에 경험에 의미를 두며 만족했다. 그런데 요즘 채널을 돌리기만 하면 나오는 각국의 음식과 그것을 맛보는 영상 속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부럽고, 진짜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내가 먹었던 그 음식, 그 본연의 맛이 궁금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함을 준다는 카이막, 식감이 부드럽고 잡내가 없다는 다양한 종류의 케밥, 진한 터키 커피, 매혹적인 마호가니 색의 터키식 홍차 차이의 맛이 궁금하다. 이제는 보는 것이 아닌 맛으로 문화를 느끼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부터 어느 나라든 상위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식재료와 요리가 있었다. 지금은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문화를 먼저, 널리 경험했다는 것에 적지 않은 플러스 점수를 부여한다. 타 문화에 손을 뻗기 위해서는 경제적 능력과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잘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진짜 맛’을 안다는 것은 여러 번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식의 ‘경험’을 위해,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인이 되기를 바라며 부모님께서는 피땀 흘려 버신 돈으로 스키캠프에 보내주셨고, 스파게티를 먹여주셨다. 그러나 난 식판의 거의 모든 음식을 쓰레기통에 넣는 불효를 저질렀다.
나의 아이는,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또래 아이들이 대부분 먹는 피자와 치킨 그리고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지 않는다. 본인 말로는 피자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먹는 건 피자가 아니라 토핑과 소스가 전혀 묻지 않은 피자 가장자리의 빵뿐이다. 아이가 왜 그것만을 먹는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아이는 나를 닮았다.
터키식 홍차 '차이'
언젠가는 먹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가끔 조바심이 난다. 더 잘 먹기를, 어느 나라의 음식이든 거부감 없이 먹어서 많은 문화를 이해하는 멋스러운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낸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겠지.
질긴 빵을 뜯어먹는 아이를 보며 딸에게 기대하며 멋진 꿈을 꾸었을 부모님을 생각한다. 그리고 가까운 날에 부모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색다른 풍경과 음식을 맛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