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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Sep 29. 2022

파리의 '마담'과 '늙은 학생'

파리 패키지 여행, 마음속의 자유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 앞 관광버스 안에는 평균 연령 오십대의 관광객 스물네 명이 한국에서 함께 온 인솔자와 함께 현지 가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계획된 여행 지역에서 여행객들을 관광지로 안내하거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지 상황 등을 설명하는 일을 담당한다. 대개 그곳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분들이며 짧으면 하루 길면 3일 정도 일정을 함께 한다. 유럽 국가에는 일정한 자격을 획득한 로컬 가이드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곳이 많은데, 영어 혹은 자국어를 쓰는 로컬 가이드와 관광객의 의사소통이 대부분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가 로컬가이드의 역할을 대신하곤 한다. 내가 만난 로컬 가이드들은 첫인사를 끝인사로 마무리하며 빛처럼 사라지곤 했다.


잠깐의 기다림 후, 어깨 길이의 생머리에 남색 긴 롱 코트를 입은 여성이 차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과 파리 여행을 함께할 000입니다.”


일행은 박수로 낯선 이를 맞이했다. 우리가 파리에 대해 가장 먼저 알게 된 정보는 패션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계절에 맞춰 반소매와 긴팔을 입고, 겉옷의 두께를 결정하는데, 파리 사람들은 계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입는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도 월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객들인 우리보다 조금 두꺼운 옷을 미리 꺼내 입었지만, 자유와 패션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설명을 들으며 창밖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말씀대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파리지엔과 파리지앵이 걸친 옷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리고 버스 이동 중 다른 간식은 가능하지만, 오징어와 쥐포류의 간식은 이곳 사람들이 시체 썩는 냄새만큼이나 견딜 수 없어해서, 간혹 기사분이 운전을 거부하는 일도 생기니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가이드는 잠시 후 진행될 센강 유람선 투어와 내일 오전 일정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말이 끝났을 때 일행 중 한 분이 손을 들고 물으셨다.


 “저기 가이드님 내일 날씨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이드의 표정이 매섭게 돌변했다.


“저는 가이드가 아닙니다. ‘마담’이라고 불러주세요.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로 ‘마담’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가이드의 진지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십오 년 전, 우리나라 문화에서 ‘마담’은 결코 여성을 존중하는 의미가 아니었으며 입 밖으로 ‘마담’이라는 단어를 꺼내 볼 일이 없었다. 나 역시 당연히 ‘마담’의 단어와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기억으론 단 한 번도 발음해 본 적 없는 호칭이자 단어였다. 사람들의 비웃음에 가이드는 더욱 굳은 표정을 내보였다.


이국땅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팽팽하게 감정을 드러내자 당황한 인솔자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중재에 나섰다.


 “앞으로 질문 사항이 있으실 때는 ‘마담’하고 정중하게 불러주세요.”


호칭으로 본인이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해 기분이 언짢은 ‘마담’과 대화의 의도를 곡해해 고객을 면박 주었다고 생각한 ‘빈정이 상한 여행객’들은 아름다운 센강의 유람선 위에서도 화합할 수 없었다.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평균 연령이 높은 일행들은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타당하지 않은 지적을 한 행동 자체를 마뜩지 않게 여겼다. 비행과 시차로 몰려오는 피곤함과 차갑다 못해 날카롭게 불어오는 프랑스의 가을밤 강바람 그리고 부부싸움을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으로 탄 유람선은 빨리 벗어나고픈 자리일 뿐이었다.


짧은 프랑스 일정 동안 비슷한 일은 반복됐다. 거주하는 곳이 다를 뿐, 분명 양쪽 모두 우리나라 말을 하는 한국 사람들인데 왜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인지. 여행의 공기는 무겁기만 했고, 그렇게 나의 첫 프랑스는 ‘가까이할 수 없는 마담’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후, 친구들과 베르사유 궁전 앞에 도착했을 때 세상 밝게 웃으며 손 흔들어 우리를 반겨주는 파리지앵을 만났다. 본인을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늙은 학생이라고 소개한 현지 가이드는 일행을 여유롭게 궁전으로 안내했다. 여행객인 우리가 대학원생들이라고 하자 자신의 유학 경험과 학교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주셨다. 오래전 이야기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프랑스에서는 지도 교수의 역할이 막중해서 지도 교수님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고, 지도 교수님이 돌아가시거나 문제가 생기면 학생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업을 중단해야 하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가이드로서 같은 장소에 적어도 손가락으로 세기 어려울 정도의 횟수로 이곳에 왔을 텐데 내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고, 짧은 만남 후 헤어질 무렵에는 에이포 용지를 건네며 이곳에 집 주소를 적어주면 엽서를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다들 열심히 주소를 적고 가이드님도 건강하게 유학 생활하시길 바란다며 인사했다.


귀국해서 여행의 설렘이 잊힐 즈음 우편함에서 센강이 그려진 엽서를 발견했다. 짧은 순간 함께 했지만 소중한 인연이 감사한다며 아름다운 센강을 전한다는 가이드님의 엽서였다. 엽서에는 파리의 냄새가 가득 담겨 있었고 엽서를 읽는 내내 환하게 웃으시던 그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의 정성이 감사하고, 나의 말을 그리운 파리로 전하고 싶어서 적혀있던 주소로 메일을 보내 감사 인사를 했다. 그렇게 나의 파리는 밝음과 자유로움으로 다시 그려졌다. 센강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어디선가 에펠탑과 베르사유 궁전을 볼 때면 파리의 유학생이 떠올랐다. 몇 년 후 문득 이제 그분도 학위를 받고 개인 작업을 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메일을 찾아 성함을 확인한 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그분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고 계셨다. 기사에 보이는 얼굴을 뵈니 몇 년 전 얼굴이 어슴푸레 기억됐다. 정말 잠깐 뵌 분이지만 그분의 성취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마담’과 ‘늙은 학생’의 나이는 비슷했다. 추측으로는 알 수 없지만, 고국을 떠나 파리에 오게 된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들이 전해 준 파리의 기억은 전혀 달랐다. ‘마담’이라 불리기를 원하셨던 파리지엔느를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진한 커피를 앞에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을 것 같다. 개성 강한 그에게 들을 수 있는 다채로운 생각과 경험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 우리가 만난 곳은 패키지여행 팀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한 여행을 패키지로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안전’이다. 안전에는 신체적 안전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평화로움도 포함된다. 오랜 시간 정을 쌓으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는 없지만 짧은 시간 서로를 알려 일정과 계획이라는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성공적인 여행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서 삼일 정도의 시간 안에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나고 자라며 습득한 문화를 토대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에겐 ‘가이드’라는 호칭이 존재했고, ‘연장자 존중’이라는 가히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관례가 존재한다. 간혹 존중의 의미를 훼손하는 몇몇이 ‘가이드’라는 호칭을 하대하듯 사용하기도 하고, 나이를 무기 삼아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하기도 하지만 그날의 버스 안에서 여행객들에게 그런 의도는 없었다. 여행객들 또한 우리 문화가 아닌 다른 문화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했다. 어렵사리 멀리 여행 온 곳에서 관계로 유발되는 긴장감은 불필요했다. 관광버스 기사님을 제외한 우리는 4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구운 오징어가 비록 묘하게 쾌쾌한 냄새를 풍기지만 주전부리로 그만하게 없음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시적이지만 우리는 유대감을 갖고 센강의 유람선에서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두 분을 한국에서, 혹은 다른 어디에선가 만났어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 같다.

아름다움과 자유 그리고 개성은 발 딛고 있는 곳이 아닌  마음과 생각 속에서 만들어져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파리의 거리는 여전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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