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그냥 집에만 있었다. 온종일 아이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잠시 쉴 틈이 생기면 커피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은 기억을 꺼내고, 기억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림의 조각을 맞춰보다 내가 하는 생각의 대부분이 ‘패키지여행’에 관련된 것임을 알았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구나’하고 결론지을 때쯤 기억의 중심이 풍경이나 장소가 아닌 ‘사람’인 것 또한 알게 됐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기억 속의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과 어투로 각기 다른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는데 곱씹어 보니 의미 있는 말도 많았다. 그래서 기억을 글로 기록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일반 패키지로 다녀왔다. 이 정도면 패키지여행을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장소는 남편과 협의했지만, 여행 형태는 내 의지가 강했다. 나는 준비 없이도 대체로 편안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죽 풍문으로 들었던 바대로 결혼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결혼과 결혼식을 위해 여러 상황을 고려한 조율과 협상이 이어졌는데 더욱 힘든 것은 마음마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결혼의 과정이지만 그 단계를 거치고 나니 진짜 휴식이 필요했다. 또다시 남편과 신혼여행 준비를 두고 큰 노력을 쏟고 싶지 않았으며, 여행 중에 발생할 갈등 상황 역시 피하고 싶었다. 남편과 여행은 하고 싶지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해 패키지여행을 계약했다.
패키지여행에서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멍’ 한 상태였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 그때 나는 행복했다. 일상에서 나를 지치게 한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것을 채워 이전의 생각을 밀어내야 했는데, 새로운 곳에서 먹고, 보고, 경험하는 것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패키지여행을 하며 우르르 몰려다녔지만, 그 안에서도 각자 바빠 다른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 패키지여행에 관한 글을 보면 패키지여행의 장점을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꼽기도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연락하고 지낸 적이 없다. 두 어분 계시긴 했는데 여행 직후 잠시 SNS로 근황을 물었을 뿐 친구가 되는 일은 없었다. 만남은 있었지만 일시적이었다. 여행 일정 중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건 당연하지만, 일정 후 누군가의 숙소에서 술을 주고받은 적도 두어 번뿐이다. 아마 그때도 술을 주신 다기에 받아와서 내 방에서 나의 일행과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새로운 인맥도 만들지 못하고, 술 한 잔 함께 하지 못한 게 개인의 성향과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봐 온 바로는 여행 전 이미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 아닌 경우 대부분의 여행객이 나와 같았다. 각자도생!패키지여행의 일정은 절대 우습게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군중 속에 홀로였고, 그 시간이 좋았다. 무념무상으로 주는 밥 먹고, 보라는 걸 보고, 자라는 곳에서 자고. 그렇게 지내는 동안 머리가 비워졌다. 넓은 관광버스에서 두 자리를 몽땅 혼자 차지하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참 좋았다. 홀로이고 싶을 때 했던 패키지여행. 그때가 그리워 그 기억을 글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