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혜선 Aug 12. 2019

나에게도 태명이 있었을까?

아이를 갖고 임신 기간 내내 태아의 동태를 살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임신 초기라 움직임이 있을 시기도 아니었는데 방에서 조용히 앉아 아기의 동태를 감지하려고 노력했다. 중기부터는 한 번씩 느껴지는 움직임이 신기했고 초음파로 아기의 모습을 보고 싶어 병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막상 병원에서 가만히 둥둥 떠있기만 한 아이를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서운했고, 이런 상황에 도가 튼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가 자고 있네요"라고 말씀해주시며 은근한 위로를 보내주셨다. 임신 8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태동이 강했다. 살갗을 뚫고 볼록볼록 올라오는 입체감을 느끼며 손일까 무릎일까, 팔꿈치일까 상상하는 것이 하루의 행복이었다.


태명은 초복이었다. 초복(初伏)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됐는데 한자는 다르지만 초복이라는 발음이 예뻐서 처음 온 복이란 뜻을 넣어 초복(初福)이라 부르기로 했다. 열 달을 열심히 불러주었다. '초복아 뭐하니? 초복아 오늘은 병원 간다. 초복아 우리 이제 얼굴 볼 때가 됐다. 잘해보자'라고 하루에도 수없이 부르며 만날 날을 기대했다. 혼잣말 같았지만 절대 혼자는 아니었다.  


성별을 알게 된 날, 미리 이름을 지어 둘까 생각도 했었지만 태어난 그날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작명을 미뤘다. 조그만 생명체는 태어나 열흘 가까이  태아 때 불리던 그대로  불렸다. 잡아보기에도 미안한 가냘픈 팔과 다리에는 엄마의 이름과 초복이란 글자가 적힌 이름표가 붙었다. 더 이상 이름 짓기를 미룰 수 없자 가족들은 그동안 염두에 두었카드를 꺼내놓았다.






먼저 '돌림자를 쓸 것인가?'가 화두에 올랐다.  사실 돌림자가 좀 특이하거나 요즘 이름 같지 않으면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내 조건에 맞는 글자라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돌림자를 넣어 여러 이름을 만들어 보고 그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을 포털사이트에서 열심히 찾았다. 얼굴도 보고 직업도 보고, 그들이 살아온 길도 보았다. 산후조리원에 면회 오신 아버님께서는 조용히 종이 한 장을 꺼내놓으셨다. 아직도 간혹 나에게 말씀을 낮추지 않으실 정도로 과묵한 분이신데 손자사랑으로 이름 몇 개를 지으셔서는 친구분들과 투표까지 마치신 후였다. 그 작은 종이쪽지에는 사랑이 담겨있었다. 어머님은 작명소에서 길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하셨다. 혹 그곳에서 나쁜 이야기를 듣거나 원치 않는 이름이면 어쩌나 잠시 고민을 하긴 했지만 좋으려고 하는 일이고, 그것 역시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여 이름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이름' 몇 개를 후보에 올렸다.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 부부가 염두고 있던 이름,  아버님께서 지인 분들과 투표해 1등을 한 이름, 어머님이 작명소에서 받아오신 이름이 동일했다. 특이하진 않았지만 부르기 편하고 무난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좋았다. 그렇게 아기는 뱃속에서 불리던 이름을 뒤로하고 사회적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기에게 이름이 생기던 날 묘하게 슬픈 감정을 느꼈다. 초복이는 내 소유였지만 당당히 이름을 가진 아이는 이제 나에게서 분리된 독립된 인격체였다. 자식은 떠나보낼 준비를 하며 키워야 한다고 했는데 법적인 이름을 갖게 되는 그 순간, 이미 우리 부부를 떠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복이가 익숙해 이름 대신 태명을 부르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그 이름이었던 양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불리었다.  


소크라테스"어린애들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아비 된 자로서 마음을 써야 할 일"이라고 했다. 몽테뉴발음하기 쉽고 듣기 좋은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면 왕공들과 세력가들이 더 잘 기억해 주고 쉽사리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신용과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몽테뉴 수상록).  옛날부터 이름은 그토록 중요했다.


사회적으로 나를 함축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어는 이름이다. 우리 문화에서 남성은 성과 돌림자로 집안과 서열을 나타낸다. 여성 역시 이름에 존귀가 담던 때가 있었다. 대부분의 문서 첫 줄에 적히는 것, 그래서 나를 감추고 싶을 때, 나를 다른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 이름을 버린다. 이름에는 그런 무게와 의미가 있다.






아이가 이름을 갖게 된 날 독립적인 그를 존중하고,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성심껏 책임지리라 다짐했다. 부모님께서는 두 분히 몇 날 며칠을 앉아 사전을 보고 또 보며 우리 자매의 이름을 지으셨다고 한다. 첫째 딸인 나의 이름을 지을 땐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보라는 주변의 조언 아닌 강요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둘째가 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소신껏 이름을 지어주셨고, 동생에게는 자매임을 나타내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나에게도 태명이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지금껏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여쭤보지도 않았다. 내가 이름을 갖게 됐을 때 우리 부모님께서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셨을까? 부모가 되니 부모님의 그 시절이 궁금해진다.




부모님께 여쭈어 보기 전에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는 태명이 있었을 까요?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태어나던 해에 부모님의 나이는 어떠했나요?
지금의 나와 몇 살 차이인가요?

그 누구의 생각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전 06화 십 년 뒤, 준고수는 될 수 있지 않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