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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Jul 11. 2021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 놀이

아이는 물놀이를 즐긴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장난이다. 컵에서 컵으로 물을 이리저리 옮긴다. 수도 없이 반복하는 데 매일 하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재밌는 모양이다. 저 단순하고 지루하리만큼 반복적인 놀이가 재밌다니, 나도 그럴 때가 있었으려나. 좋아하는 걸 계속 시켜주고 싶지만 긴 물놀이 후에는 감기가 따른다. 그리고 후텁지근하고 습한 욕실의 기운이 내 몸을 죄어 와서 참기가 힘들다. 괴로움이 극에 달하는 순간 더 놀고 싶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를 데리고 거실로 탈출한다. 시작은 평화로웠으나 끝은 눈물과 진 빠짐이다. 이 과정을 반복할 때마다 생각한다. 이거 말고 다른 거 없나. 그렇게 요즘 나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뭐 하고 노나'이다. 코로나 시국에 남들은 뭐 하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한국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신 한동일 신부님의 <<라틴어 수업>> 중 '로마인의 놀이'를 보면 잘 놀기로 유명했던 로마 사람들의 놀이가 소개된다. 동전 던지기, 주사위 던지기, 체스와 비슷한 돌 게임, 집짓기, 작은 상자에 쥐 넣고 경주하기, 굴렁쇠 놀이, 춤추기, 극장가기, 원형 경기장 경기 보기, 검투 경기 관람, 온천에서 목욕하기, 공놀이 등이다. 아이와 이 놀이 들을 한다고 가정하면 동전 던지기는 5분, 주사위 던지기는 아직 숫자 개념이 부족해서 패스, 돌 게임 역시 논리 부족으로 패스, 응용 편으로 바깥에서 돌 던지기는 아이가 좋아하므로 동그라미. 그러나 집안에서는 불가능. 쥐 경주는 돈을 준다고 해도 싫고, 굴렁쇠도 바깥 놀이다. 집이 넓고 층간소음 문제가 없다면 실내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우리 집에서는 절대 불가능이다. 춤추기는 집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고, 극장과 온천은 너무나 가고 싶은 곳이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 검투 경기 비슷한 것은 플라스틱 칼로 가끔 하는 데 아이가 힘 조절을 못 해서 결국 나는 아프다며 소리를 지르고, 놀란 아이는 운다. 


결국 아이와 내가 함께 행복하려면 밖을 활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붕이 존재하지 않는 곳을 마음껏 다니는 일이 이토록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었다니.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실 코로나가 위협을 한다 해도 노는 이들은 잘 논다. 일상이 갑갑해서 큰마음먹고 리조트에 다녀오려 했는데 예상과 달리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먹는 곳, 마시는 곳, 노는 곳, 쉬는 곳 여전히 어디에나 사람은 있다. 


그래서 노는 이들은 집에만 있는 이들을 갑갑하다 하고, 집에만 있는 이들은 노는 이들을 이기적이라고 한다. 병은 이렇게 서로를 미워하게 한다. 병이 이래서 무섭다.  


병이 무서워도 벌어야 하고, 번 돈을 쓰며 쉬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누군가가 쓰는 돈으로 또 누군가는 살 게 된다. 


오늘도 만능 육아도우미 녹색 창에 집콕 놀이를 검색한다. 놀다 지쳐 잠들게 해 준다는 앱도 설치해본다. 할 수 있는 건 많다. 엄마표 만들기, 색칠 놀이, 모래 놀이, 오리기……. 그러나 나는 만들기를 할 수 있는 재능이 없으며 아이 역시 관심이 없다. 색칠 공부는 줄 긋기 몇 번으로, 오리기 역시 가위질 몇 번으로 10분이면 놀이가 종료된다. 그러나 우리가 놀이해야 하는 시간은 최소 6시간 이상이다. 도대체 뭘 해야 한단 말인가. 오늘도 고민이 깊다. 그리고 ‘시국이 이러하니 과자 좀 더 먹이고 만화 좀 보여준 들 나쁜 엄마가 되는 건 아니겠지’라며 고뇌와 합리화를 병행한다. 


'다들 뭐 하고 노나?' 돈 버는 것도 아니고, 노는 걸 다 부러워한다. 참 쓸데없지만 잘 놀고 잘 먹는 인스타그램의 그들은 여전히 부럽다.


언제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제 제발 마스크 없이 나가 놀고 싶다.      

 



논다는 건 뭘까요?
 
자고, 먹는 건 휴식일까요, 놀이일까요?
 
'깔깔, 꺽꺽' 웃으며 놀았적이 언제였나요?

오늘은 좀 놀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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