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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Jul 11. 2021

결혼식 참석의 의미

2020년 우리 집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다름 아닌 세상에 하나뿐인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연애 기간이 길었던 터라 날을 잡은 것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상견례와 예식장 예약을 마친 후,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자매는 틈만 나면 신혼여행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상하고 기대하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나 예상치도 못한 불청객, 코로나가 등장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 무서운 녀석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꿈을 하나씩 지웠다.


동생은 오래전부터 겨울 신부를 꿈꿨다. 12월로 예식장을 잡아 둔 상태였는데 언론에서는 계속 코로나가 더 심해질 거란 이야기만 전했다. 그래도 또 어떤 달에는 상황이 주춤하기도 해서 아직 기간이 남은 ‘12월에는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마주하는 이 괴물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식일 변경을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여러 사정과 내년에도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접하며, 가족들만이라도 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결혼 준비로 희망에 부풀고 행복해야 할 예비 신랑 신부는 결혼식을 알리는 것 자체에 죄송함을 가져야 했다. 식전에 양가 가족분들께 새 식구를 소개하며 덕담도 듣고, 친구들에게 밥을 사며 축하도 받고 결혼 준비에 관한 조언도 들어야 하는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숨 쉬고 눈 마주치며 밥 먹는 것이 죄가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연락이 오는 곳이라고는 식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예식장뿐이었다. 예식장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길 바라는 은근한 압박과 시시때때로 변하는 조건들 역시 신랑 신부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결혼식 당일 넓은 식장에는 50명의 인원만 입장이 가능했다. 하객들이 신부 대기실을 찾지 않는 이상 신부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신부 역시 사방이 막힌 신부 대기실에서 외로워야 했다. 동생은 신랑과 함께 로비에 나서기로 했다.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며 하객분들께서도 반겨주셨다. 가족들조차 모두 모이지 못한 결혼식이었지만 전문가의 손길을 받은 우리 가족 모두는 멋졌다. 우리는 빛나는 모습으로 축하하고 기념으로 멋진 사진도 남겼다. 인생사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결혼식에 참여한 우리 아들은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드레스를 입은 예쁜 이모에 반해 한 달 이상을 이모 결혼식에 가자며 졸라댔고, 매일 눈만 뜨면 결혼식 놀이를 했다. 인생의 축제는 어린 눈으로 보아도 그토록 황홀한 것임에 틀림없다.


여전히 건너 건너 아는 혹은 모르는 이들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그들의 결혼식 이야기를 듣게 된 연유는 역시 코로나 19 때문이다. '결혼식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는 고민부터 '손님이 없어서 어쩌나'하는 오지랖 성 걱정, 염려를 가장한 못된 참견까지. 생각도 말도 많다.


일생일대의 하루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다. 허례허식이라고도 하고, 단 몇 시간을 위해 과시성으로 소비하는 문화를 악습이라고도 한다. 결혼'식'에 대한 논의는 끊이질 않는다. 무게를 지닌 채 무한 반복될 뿐이다.

결혼식은 잔치, 큰 잔치다. 요즘은 이런 단어를 촌스럽게 여겨 파티라고도 하는데 잔치든 파티든 우리에겐 인생 통틀어 몇 번 되지 않는 귀한 날이다. 신성한 약속을 하는 날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가족이 생기고 미혼에서 기혼으로 신분이 바뀐다는 것을 공표하는 날이기도 하다. 양가 부모님은 우리 자식이 장성했고, 이렇게 키워내느라 고생했으니 자랑 좀 해 보겠다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에서는 아쉽게도 돌잔치 이후에는 마땅히 가족을 소개할만한 날이 없다. 돌 이후 이삼십 년 후 혹은 사십 년을 넘게 기다리고 기다려 드디어 가족이 좋은 날을 맞이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러니 공을 들여 과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소중한 나의 자녀가 꽃길을 걷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으니 좋은 것들을 고르고 꾸미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마스크를 하고 결혼식에 다녀온 친구들과 지인 그리고 가족들은 말한다. 결혼 당사자와 혼주께서 그토록 고마워하셨다고 말이다.


식장의 밥값이 5만 원의 절반도 안 되고 연이 끊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때는 '식'을 하는 것이 상부상조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결혼식 축의는 현금과 함께 술, 떡, 옷감 등의 현물이었다. 풍족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의'가 먼저였다. 그런데 올 초에 매일 얼굴 보던 이가 연말에는 연락하기 뭐한 사이가 되는 냉혹하고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결혼식 참석이 '염치'가 되었다. 또한 몰염치를 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객관적인 지표인 '돈'이 수반되어야 한다. 많은 경우 참석보다는 축의금이 더 중요시되기도 한다.


밥값은 해줘야 하며 떼먹지 않는 인간이 사회적으로 기본 소양을 갖췄다고 평가를 받는다. 이 암묵적 룰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뒷말을 듣는다. 그래서 5만 원을 내면 혼자 가야 하고, 둘이 가면 돈을 더 보태야 하고, 식대가 비싼 곳에는 돈을 더 넣어야 한다. 가지 않고 봉투만 할 경우에는 밥값을 빼고 보낸다는 이들도 있고, 나는 혼자 갔었는데 너는 왜 둘이 왔느냐 따지기도 하는 등등 글로 적기에 참으로 민망한 방법과 사건들이 꽤 있다. 여하튼 계산법은 날로 창의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이 두려운 코로나 19를 겪으며 새삼 잊고 있던 결혼식의 의미를 되새긴다.


예식장에 오시기까지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시면서까지 힘든 발걸음 해주신 분들께, 상황상 오시지는 못했지만 축하한다고 전해 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와주셔서,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몇 번의 결혼식에 참석했었을까요?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나요?

그때의 신랑 신부는 하객이었던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소란하고 찬란했던 식은 끝났지만 일상속에서도 그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_ 시정종합월간지 서울사랑 http://love.seoul.go.kr/asp/articleView.asp?intSeq=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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