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고 임신 기간 내내 태아의 동태를 살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임신 초기라 움직임이 있을 시기도 아니었는데 방에서 조용히 앉아 아기의 동태를 감지하려고 노력했다. 중기부터는 한 번씩 느껴지는 움직임이 신기했고 초음파로 아기의 모습을 보고 싶어 병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막상 병원에서 가만히 둥둥 떠있기만 한 아이를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서운했고, 이런 상황에 도가 튼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기가 자고 있네요"라고 말씀해주시며 은근한 위로를 보내주셨다. 임신 8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태동이 강했다. 살갗을 뚫고 볼록볼록 올라오는 입체감을 느끼며 손일까 무릎일까, 팔꿈치일까 상상하는 것이 하루의 행복이었다.
태명은 초복이었다. 초복(初伏)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됐는데 한자는 다르지만 초복이라는 발음이 예뻐서 처음 온 복이란 뜻을 넣어 초복(初福)이라 부르기로 했다. 열 달을 열심히 불러주었다. '초복아 뭐하니? 초복아 오늘은 병원 간다. 초복아 우리 이제 얼굴 볼 때가 됐다. 잘해보자'라고 하루에도 수없이 부르며 만날 날을 기대했다. 혼잣말 같았지만 절대 혼자는 아니었다.
성별을 알게 된 날, 미리 이름을 지어 둘까 생각도 했었지만 태어난 그날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작명을 미뤘다. 조그만 생명체는 태어나열흘 가까이 태아 때 불리던 그대로 불렸다. 잡아보기에도 미안한 가냘픈 팔과 다리에는 엄마의 이름과 초복이란 글자가 적힌 이름표가 붙었다. 더 이상 이름 짓기를 미룰 수 없자 가족들은 그동안 염두에 두었던 카드를 꺼내놓았다.
먼저 '돌림자를 쓸 것인가?'가 화두에 올랐다. 사실 돌림자가 좀 특이하거나 요즘 이름 같지 않으면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내 조건에 맞는 글자라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돌림자를 넣어 여러 이름을 만들어 보고 그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을 포털사이트에서 열심히 찾았다. 얼굴도 보고 직업도 보고, 그들이 살아온 길도 보았다. 산후조리원에 면회 오신 아버님께서는 조용히 종이 한 장을 꺼내놓으셨다. 아직도 간혹 나에게 말씀을 낮추지 않으실 정도로 과묵한 분이신데 손자사랑으로 이름 몇 개를 지으셔서는 친구분들과 투표까지 마치신 후였다. 그 작은 종이쪽지에는 사랑이 담겨있었다. 어머님은 작명소에서 길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하셨다. 혹 그곳에서 나쁜 이야기를 듣거나 원치 않는 이름이면 어쩌나 잠시 고민을 하긴 했지만 좋으려고 하는 일이고, 그것 역시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여 이름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이름' 몇 개를 후보에 올렸다.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 부부가 염두고 있던 이름, 아버님께서 지인 분들과 투표해 1등을 한 이름, 어머님이 작명소에서 받아오신 이름이 동일했다. 특이하진 않았지만 부르기 편하고 무난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좋았다. 그렇게 아기는 뱃속에서 불리던 이름을 뒤로하고 사회적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기에게 이름이 생기던 날 묘하게 슬픈 감정을 느꼈다. 초복이는 내 소유였지만 당당히 이름을 가진 아이는 이제 나에게서 분리된 독립된 인격체였다. 자식은 떠나보낼 준비를 하며 키워야 한다고 했는데 법적인 이름을 갖게 되는 그 순간, 이미 우리 부부를 떠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복이가 익숙해 이름 대신 태명을 부르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였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그 이름이었던 양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불리었다.
소크라테스는 "어린애들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아비 된 자로서 마음을 써야 할 일"이라고 했다. 몽테뉴도 발음하기 쉽고 듣기 좋은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면 왕공들과 세력가들이 더 잘 기억해 주고 쉽사리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신용과 명성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몽테뉴 수상록). 그 옛날부터 이름은 그토록 중요했다.
사회적으로 나를 함축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어는 이름이다. 우리 문화에서 남성은 성과 돌림자로 집안과 서열을 나타낸다.여성 역시 이름에 존귀가 담던 때가 있었다. 대부분의 문서 첫 줄에 적히는 것, 그래서 나를 감추고 싶을 때, 나를 다른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 이름을 버린다.이름에는 그런 무게와 의미가 있다.
아이가 이름을 갖게 된 날독립적인 그를 존중하고,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성심껏 책임지리라 다짐했다. 부모님께서는 두 분히 몇 날 며칠을 앉아 사전을 보고 또 보며 우리 자매의 이름을 지으셨다고 한다. 첫째 딸인 나의 이름을 지을땐 중성적인 이름을 지어보라는 주변의 조언 아닌 강요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둘째가 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소신껏 이름을 지어주셨고, 동생에게는 자매임을 나타내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나에게도 태명이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지금껏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여쭤보지도 않았다. 내가 이름을 갖게 됐을 때 우리 부모님께서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셨을까? 부모가 되니 부모님의 그 시절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