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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선 Dec 03. 2019

‘나쁜 놈이 아니니까 착한 놈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 그리고 실망 / 인간관계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매력이 흘러넘쳐 완벽할 것만 같은, 본받고 싶은 대단한 면이 있어 우러러보게 되는 사람들이 그렇다. 부드러운 인상, 말투에 묻어나는 높은 자존감, 겸손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은 행동, 또래에 비해 높고 확고한 지위, 미래가 촉망되는 업적, 훌륭한 재산이 그들을 남다르게 한다. 그래서 요모조모 따져볼 필요도 없이 보이는 면과 느껴지는 감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다. 그 믿음이 깨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어느 순간 종종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곤 한다.    



공정한 사람인 줄 알았다. 따지고 보면 근거 없는 생각이었다. 그를 사적으로 겪어본 적도 없고 그가 그렇게 생각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다. 나 혼자 ‘나쁜 놈이 아니니까 착한 놈이다’라는 식의 판단을 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은 새벽이야”라고 말하던 꿈결 같은 목소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심장을 쏴라>> _ 정유정 / 은행나무


영화  <<내 심장을 쏴라>의 한 장면 _ 문제용 감독



혼자 끄적이던 글 속에서 ‘말이 통하는 남편’이라는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발견했다. 언제 이런 표현을 썼었나 살펴보니 내 요구를 들어줬을 때다. 하고 싶은 대로 해주니 말이 통하는 배우자가 된 것이다. 학창 시절에도 착한 친구라는 표현을 썼었다. 착하다는 것, 내 뜻과 크게 엇나간 적 없이 따라주었다는 거다.


사람 몇이 모이면 ‘그 사람 이상하다’라고 뒷담화를 하곤 한다. 무리가 하는 일에 반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언젠가는 또 내가 ‘그 이상한 사람’이 된다.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상, 지향하는 바가 달라 입장이 바뀐다.  나 역시, 만인에게 좋은 사람일 수만은 없다.






사람에 대해 실망했던 경험은 셀 수 없이 많다. ‘배신’이라 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 자주 있지 않을 뿐이지 가족, 친구, 지인, 이웃, 아는 사람 그리고 언론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은 매번 소소하게 기대와 실망감을 번갈아 안긴다. 그리고 그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은 ‘관계는 피곤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끔 한다.


기대하지 않아야 할까? 판단하지 않아야 할까? 사람을 보이는 그 자체로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도인이나 로봇만이 가능하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생생히 보고, 듣고, 느끼는 한 생각이나 판단을 멈출 수는 없다. 또 예측하기 힘든 그 인간관계의 재미와 감동을 굳이 포기할 이유도 없다.


뻔하게도 나를 지치게 하는 건 사람이지만, 웃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다. 더욱이 요즘은 스스로를 표현하는 공간이 많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격려와 위로를 받는다. 괜찮은 사람일 거라며 무작정 자신의 것을 내주는 것은 위험하지만, 유쾌한 사람일 거라는 기대는 져버리고 싶지 않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 보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고, 그가 해낸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게끔 하는 이들이 그렇다. 나쁜 놈이 아니라면, 좋은 놈 까지는 아니더라도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놈은 될 것 같다. 뭐,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A4 용지에 꽉 차는 표를 만듭니다.
나쁜 놈의  별칭 / 인상이나 외모 특징 / 만난 곳 / 죄목 / 죄질 / 그와의 현재 관계 등과 같은 항목을 만들어 표를 채웁니다.  

표에서 공통 단어나 항목을 찾아 표시한다.
각 항목에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싫어하는 나쁜 놈의 단서가 될 테니 가급적 주의를 기울이고, 가능한 멀리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나쁜 놈이었을까' 역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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