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혜선 Jul 11. 2021

친구는 필요한가?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정환, 택, 선우, 동룡’은 모두 한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이다. 말타기를 할 수 있기 전부터 배우자를 찾기까지 그들은 서로 돕고 위로하며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부럽지만, 드라마다.


원래도 사교적이고 살뜰한 성격이 못 되는데, 다른 나라에 살게 되면서부터는 친구들과 연락이 더 뜸해졌다. 다들 회사 다니 거나 아이 키우느라 바쁘다 보니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서 나중에 보자, 밥 한번 먹자 하다가, 계속되는 인사치레가 민망해서 연락하지 못했다.   


아주 모호한 말 중 하나가 친구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친구라고 한다는데 보통은 매년 학년이 오를 때마다 친구가 생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 수가 50명이나 됐으니, 매년 우리 반 친구를 30명씩만 계산에 넣어도 초, 중, 고 12년이면 친구가 360명이다. 방학을 빼도 10개월을 매일 보다시피 했으니 보통 관계가 아니다. 어른이 돼서도 친구는 제휴사 포인트처럼 쌓이긴 한다. 그런데 지금 내 전화를 받아 줄 친구는 몇 명이란 말인가? 이제 친구가 아닌 지인이 된 건가. 


학창 시절에는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낼까 봐 마음 졸였고, 스무 살 전후로는 동네를 벗어나는 사회생활로 차츰 멀어지는 친구와의 소원함을 고민했다. 개끼로 술을 마셔대며 진중한 목소리로 “너 변했다”만 연신 외쳐대며 애송이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십 대 중반에는 몇 년간 자주 보지 못한 친구의 다른 면모에 놀라 또 다른 친구에게 뒷말을 늘어놓고 공감받으며 ‘역시 내가 맞아’라고 확신했다. 삼십 대를 앞두고는 낯설었던 그 장면이 친구의 본모습이었음을 확인하고는 불편해했다. 서른 초반에는 돈벌이를 잘하거나 한자리 톡톡히 해내는 친구를 보며 기가 죽었고, 결혼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생계, 독립,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일련의 생존 전투를 치르느라 친구 관계에 무뎌졌다. 아무렇지 않다기보다는 마음 한편을 내주었다 상처 받고, 자존심 상했던 일들이 복잡하게 떠올라서 애써 혼자서도 잘 사는 어른인 척하며 친구들을 멀리했다. 살기 바쁘고 짜증 나는 일이 천지라 친구가 사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한 번씩 궁금하다. ‘잘 사나. 나 빼고 자기들끼리만 연락하나. 한 번씩 내 생각도 해 주려나.’   


어릴 땐 동네에서 놀았다. 거의 모든 일이 울타리 안에서 벌어졌고, 보호자와 선생님 그늘에 있어서 비슷했다. 사실 그렇지 않았겠지만 멀리서 보면 똑같은 교복에 머리 모양까지 비슷해서 사이좋아 보였다. 그런데 다른 동네 사람들이 사는 학교로, 회사로, 군대로 가면서 각자 본인에게 맞는 옷을 골라 입게 됐다. 그렇게 ‘사람’이 됐다.


신념과 고집과 아집이 뭉뚱그려져 머릿속에 자리 잡아 좋은 것, 싫은 것이 생겼다. 배운 것도 많아졌다. 해줘 봤자 돌려받지 못한다는 거, 이렇게 하면 없어 보인 다는 거, 굳이 이런 말은 안 해도 된다는 거, 저 사이에 끼어봤자 머리만 아프다는 것 등등. 그걸 어쩌다 한번 만난 친구에게 내색하진 않는데 공격받는 것 같을 땐 방어기제로 사용한다. 배운 건 써먹어야 하니까. 


비슷해야 친구가 된다. 친구가 될 때는 분명 그랬다. 앞뒤 자리에 앉는다고 매일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고 싶어지지는 않는다. 좋아서, 같이 웃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지금 어색하고 불편한 건 자랐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란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정확한 날짜는 가물가물한데 어느 달이 되면 그 친구 생일인데 싶다.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친구 생각이 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만나면 반갑다. 옛날이야기가 재밌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으니 말 꺼내기도 쉽다. 가깝고 여러모로 비슷하다 보니 질투도 하고 비교도 하게 되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우리 집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아는 친구들이 종종 안부 전화를 해준다. 아이 옷과 장난감도 보내 준다. 사람은 못 보고 물건만 보지만 물건에는 친구의 성격이 묻어난다. 알게 모르게 친구가 좋아하는 색이 많은 아이의 옷, 꼼꼼한 친구의 성격이 드러나는 택배 상자 속 가지런한 짐들로 말이다.  


나와 내 가족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고맙다. 여전히 한번 보자 하는 데 코로나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안 보는 게 아니라 못 본다고 생각하니 그리워진다.      


친구는 필요할까? 문득문득 생각나는 추억과 그리움을 부인할 수 없다.  코로나가 끝나면 여유가 생길까? 항상 핑계는 많다. 다만 그리운 마음을 담아 친구들과 친구의 가족들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용히 기도한다.     


응답하라 5인방은 오래오래, 자주자주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였을까? 드라마처럼 따뜻하게, 그랬으면 좋겠다.            




커피 취향을 묻지 않고 미리 커피를 주문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몇명 있나요.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는 내가 카페에서 어떤 음료를 마시는지 알고 있을까요?

사소하지만, 일상에는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줄 질문과 대답이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