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혜선 Nov 27. 2019

결혼한 자에게만
삶의 깊이가 존재할까?

미혼으로서 서른 중반이 가까워졌을 때,  약속 장소는 간혹 ‘집’이 되곤 했다. 친구들 대부분이 서른 전후에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외출이 쉽지 않아서였다. 몇 번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이나 카페에도 갔었지만, 울음을 달래거나 말썽을 막느라 밥 먹기 조차 쉽지 않았다. 프리랜서 강사로 평일 낮시간 조정이 비교적 용이했던 나는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러 집으로 향했다.


‘집’은 내밀한 곳이다. 가깝기에 열어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보는 이 역시 마음에 조심성을 담는다. 방문을 위해 손에 무엇을 들고 가야 할지 고민하고, 낯선 동네에 도착해 신경을 곤두세워 집을 찾고, 익숙지 않은 현관 앞에서 긴장을 한다. 그리곤 신발장이라는 좁고, 기분 상으로 쾌쾌한 공간에서 어색함을 문 틈새 바람으로 무마하며 신을 벗는다. 환대를 받지만 집안에서 입는 외출복은 불편하고, 움직임이 필요할 때에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동선을 계산해야 한다. 왠지 만들어준 밥을 먹어도 미안하고, 만들어진 밥을 먹어도 개운치가 않다. 설거지를 안 하기에는 개념이 없는 것 같고, 하기엔 뒤태가 뻘쭘하다. 가장 어려운 건 일어나기다. 도통 언제 저 현관을 나서야 하는지 감이 안 온다. 생각만큼 엉덩이가 무거워진다. 그러다 보면 어쩔 땐 그 집 부군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색함에 허둥지둥 나올 때의 그 쓸쓸함이란.  신발 신는 일은 역시나 고역이다. 이번엔 두 개의 머리가 나를 바라본다.  참으로 긴 시간이다.


가끔 생각을 했다. ‘집’을 이룬 두 사람은 나를 보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차차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황량한 마음이 싫고, 어렵게 만들어 낸 나의 시간과 노력을 당연시 여기는 몇몇의 주변인들이 미워 집 방문을 그만두었다.   


흔히들 결혼을 해야 인생을 안다고 한다. 사람이 된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 인생의 깊이는 누가 결정한단 말인가!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이 평균의 고뇌를 알지 못하듯, 다수에 속한 사람은 소수의 입장을 알지 못할 수 있다. 경험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모든 일은 작은 숨들이 만들어낸다. 그 미세한 차이는 직접 겪지 않고는 알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서로 아끼기에 이해해보려 노력할 뿐이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집 구할 돈이 부족한 여자 주인공과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계약 결혼의 방식으로 방을 내어준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다. 어느 날 여자 주인공은 친한 친구들과 여고 동창회를 다녀온다. 주인공과 달리 미혼으로, 기혼인 친구들의 대화에 섞이지 못한 친구가 각각 검은색, 빨간색 코트를 입은 마네킹을 보며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결혼은 나에게 ‘너도 남들만큼 괜찮다. 여자로서 가치가 있다’라고 얘기해주는 까만 코트야."
 


남들만큼 괜찮기 위해서는 같은 길로 가야 한다. 적어도 튀지 않고. 비슷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받기 쉽다. 그런데 그 길이 영 행복하지 않다면? 함께 줄지어  따라가고 싶지만 갈 수 없다면?






삶의 방식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길은 원해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운명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기혼인 사람, 미혼인 사람, 비혼인 사람, 자녀가 많은 사람, 자녀를 원하지 않는 사람, 입양으로 가족을 이루는 사람, 동물이 가족 구성인 사람, 부모님 혹은 형제자매를 부양해야 하는 사람… 모두에게는 어쩔 수 없이 받아 받아들여야 하는 혹은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 있다. 그곳에서부터 고뇌가 시작되고, 깊이가 만들어진다.


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한갓 환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인생의 베일>> _ 서머셋 모옴/황소연 옮김


결혼만이 인생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한 자에게만이 삶의 깊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에겐 각자의 사연과 역사가있다. 그래서 그 자체로 아름다운 깊이가 있다.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로 남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머릿속으로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 있어 결혼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결혼을 위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 무엇을 버릴 수 있을까요?

나와 나의 원가족은 상대방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상대방은 그것에 대해 만족할까요?

미혼, 이혼에 사회가 표출하는 편견에 자유로울 수 있으며, 맞설 수 있는 힘도 있나요?

미혼과 기혼 중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가요?

 




<<결혼식>> _ 앙리 루소






이전 02화 나답기 위해 '홀로' 채워야 하는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