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복웅이 집 Aug 07. 2022

잔소리 보단 깨달음을


01.

 최근 친한 지인의 이사를 도왔다. 작년 이사 경험으로 도움 없는 이사는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지인에게 선뜻 도와준다고 나섰다. 일반 자동차에 싣기 어려운 가구를 위해 트럭을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이사당일, 예상대로 테이블의 높은 다리 길이는 SUV 트렁크 문 구녕에서부터 꽉 끼었다. 같이 도와주러 간 짝꿍은 테이블 다리를 해체하면 되지,라고 외쳤다. 처음부터 트럭에 옮겨서 쉽게 가져갈 생각이었기에 공구함은 챙기지 않았다. 짝꿍은 다이소에 드라이버를 사러 갔다.

한차례 다녀온 후, 드라이버 사이즈가 맞지 않아 두 번째 다이소행을 나섰다. 짝꿍이 최소 2번은 다이소를 다녀올 거라 예상했다. 테이블의 조립 구간 사이즈를 확인하고 가라는 외침을 가뿐히 외면했기 때문이다. 해체하면 되지, 드라이버 사면되지, 안 맞으면 또 다녀오면 되지, 하면 되지! 를 가벼이 외치며, 15분이면 끝날 이삿짐 싣기는 한 시간으로 늘어났다. 드디어 테이블 다리 해체를 마치고 트렁크 문 구녕을 무사히 통과했다. 이삿짐을 모두 옮긴 뒤, 해체한 다리는 다시 조립하면 되지! 를 외치며 이사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옆에서 모든 과정을 함께한 이사 의뢰인(친친 지인)은 내게 착하다고 했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낼 텐데, 지켜보며 잘 도와준다는 말과 함께.

 


02.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한창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짝꿍의 핸드폰을 주운 사람이라며 지금 만나서 돌려준다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은 뒤, 핸드폰은 내일 다시 연락해 받기로 했다. 나 또한 친구들과 놀고 있고, 돌려받기로 한 약속이 되었고, 핸드폰을 잃어버린 짝꿍의 경각심을 위해서 곧바로 받으러 가진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짝꿍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고 울상이었다. 취기에 버스 타는 정류장에 놓고 온 게 기억이 났는데, 다시 가보니 없었다며 슬픈 표정을 늘어놓는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모른 척했다. 몇 시간 전 내게 걸려온, 핸드폰을 돌려받기로 한 약속도 전하지 않았다. 취기에 물건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은 전적이 있는 짝꿍을 위해, 불안이 경각심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핸드폰은 곧 찾게 된다는 얘기와 물건을 잃어버리면 어쩌냐는 잔소리, 이 두 가지는 전하지 않는 밤이었다.  



03.

 같이 일하는 팀원 중에 MBTI 극한의 P형들이 있다. 내가 요청한 일이 바로바로 처리되지 않은 경우가 반복되면서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팀원들의 극한 P성향이 이유였고,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봤다. 내가 이들에게 요청 기한과 기한에 대한 설명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늦게 처리되냐고 얘기하면 분풀이와 잔소리로 끝날뿐이다. 나는 이들을 혼내는 입장이 아니고,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상대방의 성향이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한 내에 같이 끝낼지 생각해야 한다.


이들에게 잔소리하며 요청하거나,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화내는 것보다는(안한다는 건 아님) 해결책을 찾는 게 에너지 소모가 적고 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해결할 수 없는 일에는 불만을 품지 않고, 해결할 의지와 노력을 하고 있다면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편이다.)


무튼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여러 방법을 시도했는데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땐 더 노력하지 않는다. 크리티컬 한 일이 아니라면, 기한 내에 처리하지 못해 생기는 불편한 업무를 몸으로 체감하고, 나 또한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 불편함을 함께한다. 이 과정에서 극한의 P형 본인이 일을 두번씩 하며 귀찮음을 느끼고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불편함을 전했다는 긴장감과 미안함 등의 감정을 느꼈다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



-

 잔소리 보단 스스로 깨달음의 효과를 더 믿는 편이다. 이삿짐 옮길 때도 짝꿍의 하묜되지! 의 모습에 순간 짜증내고 뭐라 할 수도 있지만 그리 이야기하는 시간에 스스로 힘들어하는 걸 지켜본다. 짝꿍의 은근 고집 성격을 알고 있는지라 이사 시간이 딜레이 되면서 오는 과정과 다이소까지 땀 흘리며 걸어간 힘듬을 온전히 겪으며 본인이 깨닫길 바랬다. 핸드폰 잃어버린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어쩌냐고 얘기하는 건 입만 아프다. 잃어버렸으면 다시 사야 할 텐데 본인 용돈으로 알아서 구매해야 하는 점, 당분간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할 점, 비밀번호 잠금도 하지 않아 개인정보도 털릴 수 있는 점 등을 떠올리며 경각심을 가지는 게 더 효과가 있다고 본다. 극한의 P형들과 일할 때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개선이 어렵다면,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일이 돌아오는지 몇 번 같이 경험해보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 방법이 때로는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본인이 깨닫는 것만큼 쇼킹하고 즉각적인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찌보면 인내심에 내포된 무서움이 동반된 방법이기도 하지만, 잔소리로 해결될 부분이었으면 깨달음의 방법까지 가진 않았을 거다. 그래서 뭔가를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릴 때도 많다.

하지만 나도 이 방법으로 여러 일들에 교훈을 가지며 살아왔기에 계속 신뢰해본다.

재잘거림 보단 묵직한 기다림의 힘을 믿어보며.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의 충만함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