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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Sep 29. 2024

스타트업, 스케일업(급성장)에 숨겨진 거대한 리스크

해변의 모래성 쌓기 원리에 관하여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해변가,
7살 김남주와 김여주가 각자 두꺼비집을 만들고 있다.
모래에 손을 넣어 집 모양을 만들고 빼내는 순간, 집은 폭삭 무너진다.
그제야 아이들은 모래를 그냥 쌓는 것만으로는
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나 한 번쯤 해변에서 모래성이나 두꺼비집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서 친구와 함께 앉아 상상 속의 모래성을 만들고 완성했을 때의 기쁨. 이런 경험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의 파노라마처럼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다.


여기서 잠시, 이 아름다운 추억을 냉정한 비즈니스 현장으로 옮겨와 보고자 한다. 단순한 추억으로 지나칠 법한 이 장면이 알고 보니 엄청난 인사이트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꺼비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그 원리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꺼비집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혹시 두꺼비집이 뭔지 모르는 독자라면 모래성을 떠올려도 좋다. 어떻게 해야 모래가 무너지지 않고 완성할 수 있을까? 그렇다. 모래 알갱이가 서로 달라붙을 수 있는 점성이 필요하다. 해변에서는 당연히 바닷물이 섞인 모래일 것이다. 하지만 바닷물을 너무 많이 섞으면 모래가 쓸려나가 버려 모래성을 쌓지 못한다. 모래만 있어도, 바닷물이 너무 많아도 모래성은 흘러내린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황금비율, 즉 중도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여하튼, 김남주와 김여주가 모래에 물을 적절히 섞어 모래성을 쌓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단순히 모래를 쌓는 것으로 충분할까? 아마도 독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래성을 쌓을 때 손으로 탁탁 두드리지 않는가? 이는 더욱 탄탄한 구조를 만들기 위함이며, 우리 모두가 자연스레 터득한 상식이다.


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손으로 모래를 두드리는 행위는 틈새를 더욱 공고히 메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틈새를 메운 후, 그 위에 다시 모래를 얹고 두드리는 사이클을 반복한다. 이러한 사이클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 결과적으로 쓰러지지 않는 견고한 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바로 이 사이클이 우리가 지금부터 깊이 통찰해야 할 핵심 포인트라 하겠다. 이는 단순한 모래성 쌓기를 넘어, 우리의 비즈니스 성장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한 원리인 것이다.




베타 서비스를 론칭한 후, 운 좋게 방문자가 폭증했습니다.
우리 모두 기뻐하며 환호했죠. 그러나 기쁨도 잠시, 서버가 다운되었고
개발과 운영팀은 우왕좌왕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규모의 고객을 맞이할 그릇이 안 됐다는 사실을요.



앞서 언급한 모래성 이야기를 스타트업의 세계에 접목해 보자. 서버가 다운되어 개발자와 운영팀이 우왕좌왕했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이들은 큰 틀에서 그릇이 작다고 말하지만, 그 본질을 파고들면 결국 모래성 다지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마른 모래로 거대한 모래성을 쌓으려 한 셈이다. 로또에 당첨되어 순식간에 졸부가 된 이들의 말로가 좋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모래성 쌓기의 원리와 비교해 보면, 이 또한 당연한 순리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모래성을 꿈꾼다. 그 규모의 대소를 막론하고. 만약 큰 성(대규모 회사 혹은 성공적인 EXIT)을 꿈꾸며 달려가고자 한다면, 지금부터 주의 깊게 설명을 들어보기 바란다.


큰 성을 쌓는 과정은 작은 성에 비해 잠재적 리스크가 높고 복잡하다. 모래성 쌓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상식적으로 한 번에 거대한 성을 쌓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스타트업이 장밋빛 전망이나 욕망이라는 콩깍지를 쓰고 단계를 건너뛰려 한다. J커브라는 그래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말이다. J커브 그래프는 3~5년 이내에 알파벳 J와 같은 형태로 급성장한다는 개념이다.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이 그래프를 따르기 위해 스타트업들은 자신의 상황과 팀의 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혹은 알면서도 투자금 때문에 필수적인 과정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 시점에서 스타트업은 어떤 운영 마인드로 안정적인 모래성을 쌓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아마도 독자 여러분은 이미 정답을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모래성의 크기에 따라 단계를 나누어 설정하고, 자신의 상황과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여 목표를 향해 단계별로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자. 핵융합, 고무줄, 집단 역학, 반죽, 스프링.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응집력이 높아질수록 팽창 또는 영향력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응집력이 두 배로 높아지면 그 영향력은 단순히 두 배가 아닌 그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


반죽을 떠올려보자. 점성이 높으면 더 넓게 펼칠 수 있다. 피자 반죽이 대표적인 예다. 스프링도 마찬가지다. 더 강하게 압축할수록 튕겨 나가는 힘도 그만큼 세진다. 이런 원리는 물리적 현상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에서도 볼 수 있다. 집단의 결속력이 높아질수록 그 집단의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원리는 스타트업의 상황과 성장 단계에 접목하여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의 [그림 1]을 살펴보자.



[그림 1] 응집에 따른 스케일업


[그림 1]은 스타트업이 스케일업을 통해 확장하는 과정의 전후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핵융합 후 폭발하는 모습과도 닮았고, 빅뱅의 흐름과도 유사해 보인다. 무엇이 되었든, 응집률에 따라 팽창 크기가 정해진다는 것이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창업 초기에 목적 달성을 위해 무작정 달려가는 것보다는 팀원들과 대화와 소통을 통해 비전, 철학, 핵심 가치 등을 오랫동안 논의하고 합의한 후 나아가는 것이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많은 스타트업은 현실의 중력과 목적에 대한 열망이 강하기에 단계별 성장이 아닌 급성장을 향해 달려간다. 이는 모래성을 쌓을 때 하나씩 다지면서 점차 큰 성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예로, 문해력을 길러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들여 책을 보지 않고 단시간에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문해력은 책을 보며 생각의 근육을 길러내는 일련의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유튜브(동영상)는 생각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능력과 기교는 향상될 수 있으나 역량은 길러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거나 특정 시점이 되면 스케일업을 시도한다. 그러나 적절한 스케일업의 시기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는 마치 모래성을 쌓을 때 언제 더 높이 쌓아 올릴지 결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너무 일찍 시도하면 기반이 약해 무너질 수 있고, 너무 늦으면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스케일업의 적절한 시기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충분한 검증을 받았는가?

재무적 안정성: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이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가?

운영 프로세스의 안정화: 핵심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잘 정립되어 있는가?

팀의 준비도: 현재의 팀이 스케일업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가?

시장 기회: 더 큰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인가?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스케일업의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 단순히 외부 압박이나 경쟁사의 동향에 휘둘리지 않고, 자사의 내실을 충분히 다졌을 때 스케일업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모래성을 쌓을 때 각 층을 충분히 다진 후에 그 위에 새로운 층을 쌓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림 2] 스케일업 단면


스케일업(Scale-Up)이란 말 그대로 회사 혹은 조직의 규모를 크게 성장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5명밖에 없던 임직원을 30명으로 늘리거나, CF 광고에 수십 억을 들여 공격적으로 진행하거나, 사옥을 이전해 물리적 규모를 크게 키우는 것 등을 말한다. [그림 2]를 보자. 왼쪽 이미지는 스케일업으로 규모가 커진다는 의미를 표현했다. 오른쪽 이미지는 스케일업의 3D 입체를 단면으로 자른 것이다. 뇌 MRI 단면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중심의 작은 원형을 둘러싼 작은 입자들의 모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입자(임직원)를 제외한 공간(비어있음)이 더 크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수박을 잘랐을 때 꽉차 있을거라는 예상과 달리 속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창업 초기에는 모든 것이 꽉 차 있는 듯했으나, 스케일업 이후에는 마치 우주의 혜성처럼 구성원들이 허공을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된다. 겉으로 보기에 이러한 모습은 규모도 있고 자유로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런 모습을 꿈꾸며 달려왔기에,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자만에 빠지거나 '이제 시작'이라는 구호 아래 맹목적으로 전진하려 한다.


앞서 언급한 모래성 쌓기의 원리를 여기에 적용해보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시점일까? 그렇다. 바로 손으로 단단히 다져야 할 때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다수의 스타트업은 이를 간과하고 오히려 더 큰 도약을 위해 어깨에 힘을 주고 앞으로 달려 나가려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투자금이라는 자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기업을 성장시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스케일업은 또 하나의 큰 리스크를 수반한다. 바로 소통체계와 운영시스템에 관해 서로 합을 맞추는 시간과 역량을 길러야 함에도 분위기에 고무되어 더욱 올라갈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기존 1명에서 2명이 늘었으니 2배 효율이 늘 것이라는 착각 말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규모를 늘리면 인수인계 및 소통체계를 하나로 만드는 일이 기존보다 몇 배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 시간과 비용 투자는 덤이다. 때로는 "차라리 스케일업을 하지 않고 우리끼리 달려갔다면 훨씬 크게 성장했을 것"이라는 푸념을 하며, 경영진의 마음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급격한 팽창으로 인한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팽창의 규모가 응집력에 의한 자연스러운 팽창이 아닌, 인위적인 급속 팽창일 때 큰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응집을 5밖에 안 한 상태에서 팽창을 하려 할 땐 최대치가 10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비전과 목표가 커서 팽창을 30으로 조정한 것이다. 이때 최대 팽창은 10을 벗어난 30을 해버렸기에 20만큼의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가령, 소통이 심각하게 안 된다거나, 기업문화가 자리 잡히지 않아 서로 분쟁한다거나, 경영진이 기업 철학을 깊게 논한 상태가 아니기에 직원 머릿속엔 이것이 생략되어 버리는 등 그야말로 화려한 불꽃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교통 시스템을 만들고 차량을 통제해야 하지만 차량부터 이동하게 만들고 교통시스템을 하나씩 도입하려는 상황과도 같다. 그것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몇 배 이상의 차량을 받은 상태에서 말이다.


[그림 2]의 스케일업 단면을 풍선이라 상상해 보자. 이 풍선을 바늘로 찔렀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터지면서 바람이 빠질 것이다. 만약 풍선 안에 부피가 남아 있다면 그 부피만큼 풍선의 규모는 줄어들고 바람은 사라진다. 그렇다. 스케일업 이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스타트업이 위기에 빠지는 상황이 오면, 조직 전체 역량의 총합만 남고 모두 사라진다. 이때 똘똘 뭉쳐 다시 역량과 능력을 키워 성장하면 더욱 큰 발전이 이루어지겠지만, 부정이 부정을 낳는 흐름으로 간다면 조직은 와해된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은 강한 리더십을 원하게 된다.



정리해 보면, 스타트업 성장 프로세스는 앞서 이야기한 '모래성 쌓기'와 매우 닮아 있다. 내가 목표로 하는 모래성 규모에 따라 단계는 한층 더 촘촘히 길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래의 [그림 3]과 같이 말이다.



[그림 3] 스케일업 스텝


스타트업은 문제해결이란 키워드를 가슴에 품고 뜻을 이루기 위해 달려 나가는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그 열정과 비전이 결과 중심으로 바뀌면서 과정을 망각하게 한다. 응집 단계에서 바로 두 번째 확산으로 뛰어넘으려 하는 것이 잠재적 큰 리스크를 수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모래성 쌓기'의 원리를 실전에 적용하며 상황을 진단해야 한다. 조직의 능력과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 수반되면서 스케일업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안정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풍선이 바늘에 터져 바람이 빠져도 그 알맹이가 커서 풍선이 크게 쪼그라드는 일이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결국, 스타트업의 성공은 빠른 성장과 내실 있는 기반 구축 사이의 균형을 찾는 데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전략을 넘어, 지속 가능한 기업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러한 균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장기적 안목으로 회사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스케일업, 그리고 그 너머의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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