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서울에서의 삶은, 나에게 열정에 불을 지펴줬지만 그것이 온전히 나의 정신을 치유해주진 못했다. 벚꽃이 활짝 피고 시들듯, 나의 정신과 육체는 나도 모르게 지쳐 있었다. 부모님 사업빚을 청산 후, 무작정 상경한 것의 누적분이 쌓인 것도 한 몫한 듯하다. 그래서 인천의 1호선의 끝자락, 제물포역 주변으로 선택해 휴양하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2013~2014년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천의 제물포역 주변은 시골에 준하는 매우 한적한 동내였다. 그때 생각했다. '귀농이 꿈이었는데, 꿩대신 닭이구나···바다도 보이니, 아쉽지만 여기에서 머리 좀 식혀야겠다···' 그러고는 휴양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고, 입가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휴양의 낭만은 알겠는데,
일단 나부터 살려놓고 낭만 찾아!
지금 와서 기억의 조각을 찾아 덧붙이자면, 서울에서의 삶은 나 혼자만의 삶은 아니었다. 어머니를 지방에서 서울로 모셔왔고, 이어서 여동생까지 올라왔다. 여동생까지 올라오면 다행일터인데, 여동생의 남편과 자녀 2명까지 줄줄이 소시지처럼 굴비 엮듯 올라왔으니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어찌 됐든, 한 가족 아니던가? 내가 서울에서 인천으로 갈 결심을 하는 순간, 2개의 가족단위는 일사불란하게 짐정리가 완벽히 끝났다. 군대 행군하듯, 각이 잡혀 있다. 제삼자가 봤을 땐, 아버지가 장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정도로 오와 열이 몸에 빼였다. 혹은 집안 잡채가 야반도주를 밥 먹듯 하는 집안이거나···
인천에 도착한 후, 여동생은 청라에 아파트를 얻었고 어머니와 나는 제물포역 근처 작은 신축 빌라를 얻었다. 서울에서의 삶과는 너무나도 판이했다. 물가도 저렴했고, 무엇보다 부동산이 압권이었다. 타지방보다 싼 곳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계다가 1호선 제물포역이 있어서, 신도림역까지 40분도 걸리지 않는다. 급행으로는 30~35분 만에 주파한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인천 하면 아주 먼 곳으로 인식이 되어있기도 하고, 이부망천의 인식이 크지 않던가? 그러나 나는 제물포역 지역일대가 매우 매우 저평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가족 정리를 끝내고 휴향을 하기 위한 행동을 하려던 찰나, 내 계획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문제가 남았던 것이다.
나를 제외한 이분들은 1인 가족의 낭만을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 입장이다. 그래서 휴양을 1~2년만 미루기로 결심하고 사업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천연비누,
이어지는 화장품 제조업
페이스푸딩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프로젝트에 가담시켰다. 물론, 다 처음 경험한 것이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건, 내가 가진 유일한 재주이기에 힘을 합쳐 안착시켰다. 그래서 3년 만에 작은 화장품 제조장을 설립하고, 여동생이 이어받아 해외 전시 및 수출까지 성사시키면서 나는 프로젝트에서 급히 빠져나왔다.(휴양이 마려워서다.)
세계최대 뷰티콘 미국전시 참여 홍보영상 (1분 26초에 여동생 잠깐 나옴)
2017년,
JST제물포스마트 타운에 들어서다.
내가 화장품 프로젝트에 몰두한 사이, 제물포역 가장 가까운 곳에 새로운 건물이 불현듯 우뚝 들어섰다.
"이런 시골에 왜 이게 올라왔지? 보기 흉하게···"
이곳은 15층으로 구성된 건물로써, 각종 센터 및 기관이 상주하고 있었다. 창업자를 위한 각종 지원제도 및 입주시설 안내문구들이 눈에 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정부 지원사업 자체를 몰랐다. 간혹 뉴스에서 돈을 풀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는 TV화면에다 이렇게 소리쳤다.
정부에서 창업지원을 위해 2조를 풀었다고? 나에게 돌아온 건 고지서뿐인데? 뭘 풀었다는 거야! 개나리 초코바야!
그 이후, 우연한 계기로 5층 사무실에 책상 1개를 임대받게 되었다. 통상 서울은 책상 1개당 월 10~20만 원은 줘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외딴곳이라 그런지 30만 원만 주면 휴게공간과 회의실 그리고 사업자등록이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13층의 센터를 알게 되면서 운명의 먹구름이 찾아온다. 그곳은 사회적 경제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여기도 사회적 기업에 뜻이 있는 창업기업을 모집하는 것이 아닌가? 이 또한 우연히, 그곳 센터장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5층에서 13층으로 얼떨결에 입주하게 된다. 여긴 입주 조건이 더 파격적이다. 월 25,000원만 달라는 게 아닌가? 그것도 프린터 월 임대료를 입주기업이 나눠서 분담하는 금액이라 그렇단다. 따지고 보면, 공짜였던 셈이다.
다시 정신 차리고 13층으로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딱히 일하지도 않았다. 그냥 집에 있기도 뭐해서 사무실에 놀러 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성싶다.
날이 좋은 어느 날, 책상 위에 발을 잠시 올려놓고 낮잠을 자고 있는데, 사람들의 소리가 나의 달팽이관을 두드리면서 측두엽을 후벼 파기 시작한다. 시상하부를 통해 변연계는 짜증을 부리면서 전두엽과 후두엽의 신호로 나의 눈꺼풀은 점차 올라가기 시작하고, 이후 주변을 스캔하기 시작한다.
"아··· 시끄러워! 누구야?"
영상과? 대학생들이 PC 1대를 가지고 6~7명이 함께 회의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도 빚잔치 끝내서 가난한데, 너희들은 더 최악인데?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는 **대학교 멀티미디어학과 영상동아리 과대표 2학년 K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