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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pr 18. 2024

2009년 서울역

20대 열정, 그리고 상경

프롤로그>



2009년 12월 어느 한겨울, 서울역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캐리어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채 밤하늘을 바라봤다. 유난히 별이 빛나 보였고, 달빛이 쇼윈도의 불빛처럼 환했다. 바지 주머니에는 동전 500원만이 소리 없이 흔들거렸지만,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닥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한 그날은, 영하의 날씨였지만 마음만은 참으로 따뜻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바닥 생활의 시작점은 나에겐 땅을 밟고 서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태양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어떤 이는 고층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하여, 하늘이 무너졌다고 통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태양 빛이 보이는 지상 아니던가? 세상을 180도 돌려보면, 지하의 세상도 존재한다. 지하 1층이 있으면, 지하 2층이 있고, 지하 2층이 있으면 지하 3층도 존재한다. 이렇게 늪처럼 끝없이 파고드는 지하의 세상에서 벗어나, 지상의 땅을 밟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어떻게 사업을 하는 것이 망하는 지름길인지, 청소년 때부터 청년의 시기까지 아버지의 사업을 지켜보면서 일찍 깨달았다. IMF 이후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압류딱지, 이사는 밥 먹듯 옮겨 다니기 일쑤였다. 수없이 많은 화려한 일들이 별처럼 찬란했고, 하늘의 구름과 별은 유달리 내 집과 가까워 보였다. 그 높은 곳에서 벗어난 2009년 12월, 서울역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잠잘 곳은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내가 가진 전 재산은 20대라는 혈기 왕성한 몸과 프로그램 개발 및 웹디자인을 해 본 경험, 그리고 두 차례 창업해 본 경험이 전부였다. 이 능력을 담보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정처 없이 걸으면서 한참 고민했었던 것 같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겨울 밤거리의 캐리어 소리는 임금이 행차하는 행렬단처럼 참으로 요란했던 밤이었다.




한동안 수없이 방황했다. 이러다 빚도 갚지 못하고 인생 끝나는 것은 아닐까? 돈은 감정이 없어서, 하루라도 이자를 상환하지 않으면 칼을 들고 찾아온다. 나는 시간을 최대한 끌어야 했으나, 현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목까지 칼을 들이민다. 이러한 현실과 미래를 준비하는 갈림길에서 양자택일이라는 선택이 나에게 주어질 때면, 미래보다 현실의 중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하기에 현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이치에 맞을 터다.


이것을 이겨내면 미래의 희망이 싹트고, 현실과 타협하면 늪의 구렁텅이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더욱더 깊숙이 빠져버리는 건, 어쩌면 순리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갈림길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세월이 흐른 2017년 어느 날, 인천


그동안 다양한 환경에서 서울살이(3~4개월마다 이사) 해 보았고 여러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다이내믹한 경험을 했다. 직장 생활 및 창업 활동을 병행하며 마케팅, 영업, 서비스기획, 사업전략 등 종횡무진 분야를 넘나들면서 운영에 대한 복합적인 구조를 빠르게 조망하고 이해했다. (그동안의 다이내믹한 히스토리는 주제 맥락상 생략) 이와 더불어, 수년간 소상공인 컨설팅을 부업으로 약 300회 이상 해오면서 점차 이들의 공통적인 패턴과 근본원리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은 나에게 커다란 인사이트를 안겨준 핵심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인사이트의 자료는 점점 방대해졌고, 정리가 필요한 상황까지 내몰리면서 삶의 휴식기가 기어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공부에는 끝이 없다. 개발 언어나 디자인 도구를 하나 마스터하면, 이후 새로운 도구가 나오고 버전은 한층 높아진다. 그러면 우리는 부랴부랴 무엇이 새롭게 나왔는지, 또한 개선되었는지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그러다 보면 두꺼운 책은 하나둘 쌓여만 가고, 관련 세미나는 하나둘씩 늘어만 간다. 장자가 꿈을 꾸고 깨었을 때,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겠다고 한 말처럼, 내가 프로그램 도구인지, 아니면 도구가 나인지 모르는 상황까지 와버린다.     


그때부터였다. 불현듯 내 머릿속에 망치를 두드렸던 생각의 파편들. “왜 시야를 밖으로 두고 나를 비교하는가?”,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이는가?”, “귀를 닫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도로 위에 나는 가만히 서 있고, 주변은 2~3배속 영상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이 세상 속에, 너는 왜 시선을 2~3배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가?”, “남들이 그렇게 걸어가면 너도 그 뒤를 걸어가는 것이 맞는가?”, “태풍은 빠르고 강력한 존재지만 그 중심은 한없이 고요하다.”, “도구는 무엇을 위해 사용되고, 누구를 위해 쓰임이 필요한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은 결국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궁극적으로, 내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도구의 사용법인가? 아닌가?” 등의 많은 생각들이 순간 나를 멈춰버리게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하고 고찰했다. 그러곤 하나의 수렴된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본질 그리고 균형



'시대가 변화하고 기술이 변화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본질적 사고를 기반한 균형적인 통찰이었다. 본질적 사고에서 기본과 원리를 깨닫고 이것을 방정식 삼아 값을 대입하는 것.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 삼고 나아가야 참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까? 나무의 수많은 뿌리처럼, 현대의 수많은 학문적 근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생명과 우주, 자연의 법칙이라는 근원에서 파생된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는 새로운 이론과 내용들은, 결국 이러한 단순성에서 기인하여 복잡성을 띤 형태로 진화되면서 강화됐다. 지금 우리는 복잡성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앞으로 더더욱 복잡해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다 바쳐도 습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성을 이해하는 것은 능히 가능하다. 즉, 물리와 자연의 법칙을 기반한 본질과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것을 비즈니스에 접목하여 방정식을 풀어보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열망은 점점 더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마음먹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시기와 시점, 상황과 사람, 운과 흐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을 때, 나의 등 뒤에서 봄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하지만 이 시점은 기다려야 하는 흐름이기에,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지난날을 고찰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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