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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Oct 22. 2023

경단맘 5년 차에서 워킹맘이 되기까지

비법은 1도 없습니다.

5년 차 경단맘에서 워킹맘이 되기까지 수많은 서류 지원과 면접, 그리고 탈락을 반복하며 자존감은 이미 바닥을 수백 번 정도 치고도 남았을 때였다.  그렇게 자존감이 바닥이었으나, 신기하게도 어떤 날은 꼭 잘 될 것만 같은 희망이 나를 감싸 안기도 했으며, 또 어떤 날은 이제 다 끝나버린 것 같은 한 없이 깊은 절망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기도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이후, 더욱 필사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던 어느 날, 평소 그토록 공부하고 싶었던 훈련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장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지금이 아니면, 평생 다시는 이 과정을 이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박한 마음에 약 1년 동안 진행되는 수업을 과감히 등록했다. 주 1회 수업이었으나, 과제 및 수업을 위해 일주일 동안 준비할 것들이 참 많았다.  이 수업을 끝까지 잘 이수하고 싶었던 나는 1년 동안은 구직활동을 잠시 멈추기로 결단 하였다.  어쩌면 가장 많이 지쳐있었던 시기에 평소 꼭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지 않았나싶다.(심지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수업도 아니었음.)



경단맘으로 구직을 해야 한다는 의무와 부담감 없이 오롯이 1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공부에만 열중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1년은 참으로 행복했고, 내 인생을 더욱 단단하게 쌓아갈 수 있도록 나를 내적으로 성장시켜 주었던 시간이 분명했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즈음의 어느 날, 오랜만에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내 눈길을 사로잡는 채용 공고가 하나 보였다. 그 회사는 평소 가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으나, 나와있는 자리는 육아휴직 대체 자리로 8개월간의 계약직이었다.  연장 가능 여부가 불확실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어디든 다시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했다.  더구나, 이 직장은 꽤 괜찮은 외국계 기업으로 8개월만이라도 여기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은 나에게 해가 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니 사실은 발견한 날이 지원 마지막 날이라서 일단 넣어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급히 지원서를 냈는데, 곧 면접 연락을 받았다.  


지원서에 나이를 적는 란이 아예 없었고, 면접에서도 내 나이와 경력단절에 대한 질문은 커녕 개인적인 질문 조차 없었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외워두었던 5명의 면접관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고, Last Name이 조금 헷갈렸던 2명은 구글 검색을 통해 어렵지 않게 이름을 찾아 Thank you 이메일을 인사과로 보냈다.  5명 중 인사과 직원이 한분이었고 나머지는 함께 근무를 할 팀원들이었다.  그 이메일이 면접관들에게 직접 전달이 될 수 있을지는 사실 확신 할 수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면접다운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으나 며칠 후 그들은 내게 합격 소식을 전해주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듣는 합격 통보였다.



8개월 계약직이었으나, 매일 아침 출근 할 곳이 생겨 기뻤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길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테이크 아웃하여 사무실로 향하던 그 가벼운 발걸음과 설렘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마침 오래전부터 그렇게 듣고 싶었던 1년 과정의 수업을 마치자마자, 딱 맞춰 출근을 하게 된 상황이 벅차고 감사하기만 했다.


5년 동안 애 키우다 나온 아줌마의 업무 공백을 누구라도 느낄 까 싶어, 8개월 동안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했다.  주어진 업무 이외에도 일을 찾아서 배우고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할 땐  흔쾌히 나의 시간과 능력을 나누기도 했다.  내가 속한 팀 이외에도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친절하게 대하며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열심을 다했다.  경력직 직원을 수시로 채용하던 회사라, 혹시나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 또 다른 채용 공고가 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역시나 그런 행운은 없었다.  그렇게 8개월 동안의 워킹맘 생활은 끝이 나고 다시 집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워킹맘 생활을 마치고 3-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8개월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던 이전 회사 동료분들이 연락을 주셨다.  갑자기 팀에 예정에 없던 자리가 하나 생기게 되어, 채용 공고가 급히 나갔으니, 관심 있으면 지원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 자리는 심지어 이전 보다 더 높은 직급의 정규직 자리였다.  하늘이 내게 준 기회인 것만 같아 서류와 면접 준비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간절한 마음이 통했을까?

그렇게 다시 워킹맘이 되었다.


Photo: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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