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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Jan 11. 2023

친정으로 가는 길

익숙하게 자주 오고 가는 길에도 누군가의 세월과 사연이 담겨있다.  친정집으로 오고 가는 길이 내겐 그렇다. 그 길을 지날 때면, 여러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친정집은 서울에서 차로 막히지 않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학교를 마치고 첫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친정집에 내려가 지냈다.  계속 구직 활동을 하다 면접일정이 있을 때면, 서울에 올라오곤 했다. 올라가는 버스에서는 면접을 잘 치룰 수 있기를 기도하고,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왜 이거밖에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으로, 오는 내내 스스로를 자책했다.  긴장과 아쉬움으로 오고 갔던 길이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하고 서울에서 지내다 한 번씩 본가에 내려가는 그 길은 마냥 신났다.  

오랜만에 엄마밥을 먹을 생각에, 사회초년생의 고달픔을 부모님께 실컷 토로할 기대에, 우리 집으로 가는 그 길은 마냥 설레고 좋았다.  결혼 후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친정집을 오가던 그 길도, 아이와 함께 셋이 되어 다니던 그 길도 참 벅차고 설렜다.  오랜만에 손주를 보시며 함박웃음 지으실 부모님 생각에 가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육아와 전업주부로서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친정을 오가는 그 길은 더이상 마냥 기쁘고 설레는 길이 아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들판도, 하늘도, 나무도 모두 쓸데없이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어느새 머리와 가슴속에 빈틈없이 들어찼다.

 

친정집에 가서 며칠 지낼때면 나이 드신 부모님의 새벽 출근을 지켜봐야했다.  아이를 보는 것이 할 일없이 노는 것도 아니였으나 추운 겨울,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출근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참으로 마음이 시렸다.


부모님께는 구직 활동 중이라고 차마 알리진 못했다.  그저 좋은 소식이 오면, 그때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다.  왜 궁금하지 않으셨겠나. 누구보다 궁금하셨을 테지만,  매번 그저 건강 잘 챙기라는 당부만 하셨다. 둘째를 낳을 건지, 다시 일을 할 계획인지, 아님 집에 계속 있을 건지, 많이 궁금하셨을 텐데, 단 한 번도 묻지 않으셨다.  둘째를 바라시면서도 딸이 힘들까 싶어 낳으라고도 못하시고, 아직 아이가 어린데 애 키우면서 힘들게 직장 다니는 딸의 모습도 마냥 원치 않으셨던 거 같다.  




엄마는 억척같이 365일 중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다.  내가 어릴 적 자그마한 생선 가게로 시작하셨다가 점점 제법 큰 규모의 수산물 사업체를 운영하시게 되었고 그 덕에 공무원 월급으로 빠듯했던 살림살이가 점차 나아지게 되었다.  아빠는 새벽 5시 반에 엄마 가게를 먼저 오픈해 주시고 다시 집에 오셔서 씻고 회사로 출근하셨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힘들게 일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집은 경제적으로 점점 자리를 잡아갔고 부모님은 평생 비린내 맡아가며 번 돈으로 딸내미를 유학까지 보내주셨다.  




그렇게 평생 힘들게 고생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늘 내 모습이 최선인지 스스로 돌아보며 살았다.  더 멋지고 성공한 딸이 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전업 주부로 계속 집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을 할 때마다 생각보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구처럼, 집을 반짝반짝 빛나게 가꾸는 재능도 부지런함도 없었을 뿐더러,

엄마표로 아이를 번듯하게 키워낼 자신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사회에서 해보고 싶은 다른 일들이 많았다.  (추후 남편으로 부터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하루종일 집안을 정리했다며 자랑스럽게 보내온 와이프의 사진을 보고 그저 웃음이 났다고 한다.  도대체 뭘 정리한 건지 모르겠어서.)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고 싶었으나, 그걸 이루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친정을 오가는 마음은 계속 어려웠다.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을 한편에 붙들고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매번 간절히 기도했다.  그 간절한 기도가 닿았는지, 어딘가로 출근을 시작하고부턴, 그 길을 오가는 내 마음은 더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한 번도 딸의 계획에 대해 묻지 않으셨던 부모님도 그제야, 마음이 놓이셨는지 나 몰래 어디 가서 딸 자랑을 하신다고 들었다.


언제나 변함없는 같은 길 이었지만, 그 길을 오고 가는 내 마음은 때에 따라 분명히 달랐다.  이제는 친정집으로 향하는 그 길도,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모두 편안하다.  그간 그 길을 지나오며 마음 고생했던 게 떠올라 한 번씩 울컥하기도 하지만 지금 내가 누리고,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감사하다.  전업맘 5년 차에서 현재는 워킹맘 5년 차, 이제는 그 길을 오가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새 힘을 얻기도 하고, 주어진 내 삶에 대해 더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당분간은 친정 오가는 길이 계속 평화로울 것 같다.


오고 가는 그 길을 잘 버텨주어 고마워.  


한 여름. 집으로 가는 그 길은 이토록 맑고 싱그러웠다.


Photo by 하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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