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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눕 Jun 16. 2023

가사도우미 이모님을 모실 수 없는 이유

에너지 레벨이 낮은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한 가지 일을 하면 그로 인해 소비된 에너지를 충분한 쉼으로 몇 배 이상 충전해야 하는 것을 말이다. 최근 재미로 본 심리 테스트에

“침대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눕고 싶다.” 가 나란 사람에 대한 대표 키워드로 나와서 혼자 피식 웃다가, 한편으론 이 테스트의 신빙성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업맘으로 지내다 처음 워킹맘이 되었을 무렵, 그땐 뭐든 슈퍼우먼처럼 다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도 육아도 살림도 모두 다 완벽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들로 가득 찼을 때다.  퇴근 후 집으로 다시 출근하여 아이를 살뜰히 돌보고, 새벽까지 반찬을 만들고, 집안 살림을 힘든 줄 모르고 해대던 시절이 있었다.  나같이 에너지가 없는 사람에게 어찌 가능한 일이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의아한 일이다.  하지만  온몸의 에너지를 그렇게 탈탈 쥐어 짜쓰고 모든 걸 소진해 버리기 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평일에는 간신히 버텨내던 체력이, 주말에는 흐느적거리는 종이 인형마냥 자연스레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주말이 되면 밀린 살림에 청소에 아이 챙기기까지, 할 일이 산더미였으나 도무지 그걸 모두 해낼 기운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을 제 때 끝내지 못하고 적당히 급한 불만 끄며 그렇게 계속 정리되지 않은 날들은 점차 쌓여갔다.  함께 집안일을 거들 던 남편도 더 이상 힘에 부쳤는지, 어느 날 가사도우미 이모님을 모시자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모르는 분이 집에 와서 살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게 영 내키지 않았던 나는 호기롭게 우리 둘이서 조금만 더 버텨보자며 남편을 설득했다.  그러길 몇 개월이 지났을까? 남편과 별일 아닌 집안 청소 문제로 다툼이 잦아졌었다.  경력단절된 와이프가 다시 취업하였을 땐 물심양면으로 뭐든 다 지원할 것 같은 남편이었는데, 막상 현실에 부딪혀보니 남편도 여느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살림을 와이프에게 온전히 다 맡기다가 갑자기 돕게 된 가사가 어느 정도 부담이 됐을 만도 했다.  하지만 맞벌이가 된 이상 어느 한 사람이 돕는 게 아닌 서로 할 수 있는 만큼 비슷하게 가사를 분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가 훨씬 많은 부분의 가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내심 남편이 조금만 더 맡아주면, 누구 도움 없이도 모두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그는 집에 오면 쉼이 필요하다 했다.  


똑같이 일하고 와서 왜 누구는 쉬고, 누구는 또다시 집으로 출근해야 하는지에 관해 며칠 밤을 혼자 씩씩 거리며 생각해 보았다.  쌓여있는 설거지는 왜 내 눈에만 불편해 보여야 하는 것이며, 아이를 예전처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은 왜 나만 가져야 하는지, 울화통이 치밀던 어느 날 밤 남편의 제안에  "예스"를 외쳤다.  남편은 어플을 통해 바로 오실 수 있는 분을 구했고 그렇게 처음으로 살림을 도와주실 가사도우미 이모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모님이 오시기 하루 전, 이 모습 그대로 낯선 이를  맞이하는 것이 어쩐지 불편했던 나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신념하에 어느 정도 청소를 해 두었다.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처음이니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도어락 비번을 공유하기 불편하여 집에 있는 토요일 오전 시간에 오시도록 했다. 다행히 싹싹하고 깔끔하신 분이 오셨다.  처음 오신 날, 민낯을 들켜버린 것 같은 부끄러움도 잠시, 이모님이 다녀가신 날에는 말 그대로, 신세계를 경험하였다.


우리 가족이 외출해 있는 동안, 유리창 청소부터 집안 구석구석, 온갖 가구들을 들어내고 대청소를 해 주셨다.  뒤엉킨 살림살이들로 어지러웠던 서랍장 내부도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어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던 날들이 후회스러울 만큼, 이모님은 마치 질서 없이 어질러진 내 삶에 들어오신 구세주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이모님과 조금은 친밀한 관계가 이어지던 어느 날, 이모님은 본인이 일을 다니시는 집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특별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건 아니셨으나,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자니, 우리 집도 어느 곳에선 술술 나오는 이야기보따리가 되겠구나 싶었다.


나의 구세주 이모님에게 너무 많은 걸 편히 오픈했나? 혹시나 흉 잡힐 만한 것은 없었는지, 때늦은 후회를 곱씹었다.  그렇게 이모님이 체면을 차려야 하는 손님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자마자, 이모님을 맞이하기 위한 사전 청소가 다시 시작되었다.  마치 이모님이 우리 집에 처음 오시기 전날처럼 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사전 청소란, 흉 잡히지 않을 정도의 지저분함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기준도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무렵 코로나가 시작되어, 주말 외출이 어려워진 우리 가족은 이모님이 계시는 동안 집에 함께 있어야 했다.  끼니때 우리끼리만 점심을 먹는 게 영 불편하였던 우리는 어느새 매주 이모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모님을 모시면서 따로 청소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아이러니했다.  그렇게 이모님과의 약 4개월 정도의 인연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어가지 않기로 남편에게 선언했다. 그리고 당시 코로나는 그 상황을 정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핑계거리 였다.


사실 한 번씩 구세주 이모님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는 특히나 더 그렇다.  하지만,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라는 사람은 누구를 모시던지 간에, 마음의 불편함을 떨쳐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오랜 대화 끝에 남편과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서로 내려놓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가사 분담도 나름 어느 정도 이루었다. 그 덕에 현재까지는 외부 도움 없이 둘이서 가사와 육아를 버텨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내가 훨씬 더 많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고 있다.)


남편은 요즘 정리전문 컨설턴트를 모셔서 십 년 묵은 집안살림을 정리하자고 자꾸 설득한다.


여보. 미안. 그분들을 모시려면 내 마음의 준비 시간이 아주 더 길게, 길게, 몹시 길게, 필요할 거 같아.


Photo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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