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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GARDEN Jan 19. 2024

[소설] 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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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이 셋이 모이면 아무래도 목소리가 커지기 마련이다. 머리털이 남들보다 빨리 센 것도, 관절이란 관절이 죄다 삐걱거리는 것도, 남은 정력을 죄다 주둥이에 몰아넣은 탓인 게 분명했다. 영배는 커피집 한참 전에서부터 요란하게 들려오는 친구들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애당초 신앙심이 있는 녀석들도 아니었건만 주일만 되면 신이 나서 교회를 나왔다. 짐짓 점잖은 척 앉아 있는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기어이 아픈 관절을 끌고 근처 한적한 카페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모였다 하면 세 시간씩 떠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두어 달쯤 지나자 카페라떼니 아포가토니, 시키는 메뉴도 다양해졌다. 주고받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자식 자랑 아니면 교회 추문이 전부였건만 벌써 반 년째 질리지도 않고 이 짓거리를 하고 있다. 애당초 교회를 소개해 주는 게 아니었다. 나이 육십이 다 되어서 우울증이니 뭐니 하는 소리에 잠깐 마음이 약해진 게 화근이었다.

   딸랑, 문에 걸어놓은 풍경이 울리자 시정잡배 세 놈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일제히 영배를 향했다. 오늘도 카페 ‘보까’에는 손님이 없었다. 근처 카페는 모두 만석에 젊은이들이 바글거리는데 이상하게 이곳만 이 모양으로 파리가 날렸다. 아무래도 늙은이들이 모인다는 게 소문이 난 모양이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걸어왔지?

   에라이 이 삼복더위에 걸어왔단 말이냐!

 

   참새마냥 한 마디씩 짹짹거리는 친구들을 보며 영배는 몸통 하나에 대가리가 셋 달린 괴물을 떠올렸다. 그 왜 개새끼 같이 생긴 게 있었는데…

 

   아니라. 집에 똘이 밥 주고 왔제.

 

   영배는 친구들이 떠드는 박자에 끼고 싶지 않아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작은 소리로 답했다. 그러나 괜히 눈으로 바닥이나 훑고 희미하게 웃는 영배의 모습은 친구들 눈에 평생 챙겨줘야 할 수줍은 늙은이로 비칠 뿐이었다. 보까에서는 모든 메뉴를 자리로 가져다줬지만 영배는 구태여 계산대 앞에 서서 음료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때 딸랑, 풍경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검은 나시 원피스에 기다란 은색 귀걸이를 한 젊은 처자 하나가 어깨 가득 짐을 지고 카페로 들어왔다. 좀처럼 없는 일에 늙은이 넷이 자못 당황했다. 그중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영배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부끄러워할 대상은 카페 사장 한 명이었는데, 대관절 젊은이 하나가 늘어버리다니. 벌써 커피 맛이 썼다. 고개를 푹 떨구고 자리로 가는 영배 눈에 여자의 검은 장우산이 보였다. 영배는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 날씨를 확인했다. 16시부터 19시까지 비. 지금은 14시 30분. 친구 중 누구도 우산을 챙겨온 놈은 없었다.

 

   이, 시부럴.

 

   걸쭉한 욕지거리에 여자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여자의 시선 끝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의 탁한 눈동자가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 작년 여름 글모임에서 썼던 글. 제한 시간은 1시간 30분, 글제는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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