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 기간이 길어지며 발생하는 문제는 대략 두 가지다. 한 가지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스무 살부터 자취를 시작해서 알바든 뭐든 돈을 안 번 기간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렇다 할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그 순간에 필요한 돈 정도만 벌어서 사용했기 때문에 모아둔 돈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두 달 이상 길어진 백수 상태에 잔고는 완전히 비어버렸다. 나머지 한 가지는 생각이 많아지고 의지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력서를 쓰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많이 든다. '내가 부족한 걸까,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이 길이 맞는 걸까' 끝도 없이 늘어지는 생각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주변에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며 털썩 주저 않게 된다. 그 상태를 조금만 유지해도 금세 귀찮다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변명을 하며 작은 스마트폰 세상만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집을 나가야 한다. 집에 있으면 변명으로 시작한 귀찮음이 자아를 가지고 진심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집을 나서는 순간 돈이 든다. 어딘가 멀리 가려면 차비가 들고 카페를 가도 돈이 든다. 그러니 이동은 되도록 걸어서 할 수 있는 반경 안으로 제한되며 주로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사람의 욕구는 이상하리 만치 주제를 알지 못해서 예쁜 카페, 재밌어 보이는 놀거리에 눈이 간다. 그것을 제한하고 통제하면 짜증이 몰려오며 빨리 지금을 벗어나고자 다짐한다.
다짐을 하며 가장 먼저 한 것은 동네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나가는 것이다. 같이 사는 마음 맞는 룸메이트와 동네 친구들은 나의 자랑이다. 집에 누워있다가 먹고 싶은 배달 음식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서 같이 먹고 갑자기 산책이 가고 싶을 때 모여 몇 시간이고 동네를 산책하며 깔깔거리고 놀 수 있는 친구들은 나의 20대의 증표 같은 것이다. 하지만 내 생활이 없고 하염없이 우울해지는 지금, 이 모임은 나에게 최고의 사치가 된다. 만나서 웃고 떠드는 만큼 죄책감이 생기고 같이 먹고 마시는 만큼 근심이 늘어간다. 사랑의 회초리를 드는 부모님의 심정으로 나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선물한다. 조용히 톡방을 나오고 몇 시간 만에 나의 부재를 확인한 친구들은 나의 안부를 묻는다. 솔직히 답하고 나의 할 일을 한다. 마음이 한결 편하고 단순해진다. 지금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나의 마음을 갉아먹고 힘들게 만들었는지 느끼며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해서 쳐내다 보면 비교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말도 안 되게 높아 보이는 취업의 장벽은 내가 쓰러뜨릴 수 없지만 미세하게 보이는 균열을 두드려 보고 주변을 배회하며 혹시라도 만들어 둔 문을 찾는 행위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그 결과가 어떻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단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