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같은 며느리를 원한다면?
맘카페, 마미톡과 같은 기혼여성 커뮤니티에는 시어머니에 대한 욕이 가득하다. 온라인뿐이랴? 친구 모임에서도, 부부 모임에서도 남편이 옆에 있으나 없으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에 대한 독설을 가감 없이 내뿜는다. 특히 명절 직후에는 더더욱. 참고로 이 경우, 대게 남편들은 미안함에 찍소리도 못하고 못 들은 척하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시어머니 험담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존경받을 분이라 생각한다. 정말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결혼 6년 차이고, 시어머니댁과 운전해서 10분 거리이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따르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내 주변 친구들과 지인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되바라진 애가 어째서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은 거지? 궁금한 분들을 위해 우리 시어머니 자랑을 좀 해보겠다.
사람과 사람 간의 존중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며느리로 대하시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한다. 시어머니와 있으면, (한국의 며느리 역할로서가 아닌)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 역할로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첫 만남
남편과 CC였던 나는 대학 졸업식날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존댓말을 쓰시던 나의 예비 시어머니... 편히 말씀하시라 해도 저는 이게 편해요.라고 하시더니, 결혼 후 말 놔도 될까? 물어보신 후 편히 말씀하셨다. (아마 공직 사회에 오래 계시다 보니 존대가 익숙하신 것 같다.)
#명절의 모습
시어머니 댁에서 나는 (시어머니 딸과 함께) 편히 누워있고, 앉아있다. 함께 티비를 보며 냠냠 간식을 먹는다. 식사 및 후식 준비와 치우는 것도 전혀 부담이 없다.
시어머니 룰에 따르면 나는 손님이니 앉아 있어야 한다. 살림을 건드는 건 금지다. 신혼 초에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제는 매우 적응되어 어머님의 온돌 쇼파에 편안히 누워 함께 티비를 보다 낮잠도 잔다.
#남녀차별에 대한 인식
지난 명절, 시이모부들께서 나더러 동갑인 남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하셨다. (지난 에피소드 참고 : 10.시댁에선 남편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선 안돼) 해당 사건에 대해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간단하게 대답하셨다. "어디서 남의 며느리를 가르치려 들려해. 그거 남녀차별이야."
세상에.. 너무 멋지지 않은가?
#강요 X
정말 당연하게도 안부 연락 강요도 없다. 직접 연락하시는 경우도 손에 꼽힐 정도. 월 몇 회 이상 만나야 한다는 강요도 당연히 없다.
#모든 것은 셀프
특정 문제가 생겨도 대부분의 일은 혼자서 해결하신다. 불가피할 경우, 도움을 요청하시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꼭 수고비를 넉넉히 주신다. (한사코 거절해도 꼭 쥐어주신다.)
#배려
명절에 시댁을 먼저 방문해야 한다거나, 명절 당일에 꼭 봐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없다. 며느리인 내 본가가 지방이다 보니, 항상 나의 본가 일정에 맞춰주신다. 참고로 지난 설에는 명절 당일 나와 남편은 내 본가에 있었다.
등등 위와 같은 내용 말고도, 아주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너무 자랑 같으니 생략하겠다. 내가 이 스토리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시어머니께서는 나를 항상 존중을 바탕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송송 진심으로 샘솟는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에도, 좋은 물건을 쓸 때에도 우리 엄마 생각과 함께 시어머니 생각이 자연스레 같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내 눈으로 봤을 때는, 다른 집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부갈등의 원인은 시부모님이 며느리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인 대 성인의 관계가 아닌, 나의 아랫사람, 내 아들의 안사람, 이 집안의 마지막 서열, 내가 가르칠 사람.이라고 며느리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시어머니들이 자기 마음속 독립되지 않은 내 아들의 아내를 쥐락펴락하려 하다 보니 파국이 벌어지는 것이다.
며느리 집에 연락 없이 찾아가서 살림을 뒤지며 간섭한다던가, 원치 않는 반찬을 지속 공급한다던가, 김장 참여/제사 준비/종교/생일상 차리기/집밥/용돈주기 등등을 강요한다던가, 아들은 누워있고 며느리만 설거지/음식준비를 시키는 행동, 노후를 당연스레 부탁하는 것 등등.. 타인이 싫다고 하는 일체의 행동과 말을 반복하는 것. 그것은 괴롭힘이다. 학폭을 넘어선 집안 내 괴롭힘.
아들의 동성 룸메이트에게도 이러한 폭군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이런 행동을 했다가는 아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서 심한 왕따를 당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어머니가 고소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인데, 며느리인데, 내 아들의 안사람인데 이 정도도 못해? 내 집안 며느리이니 우리 집안 방식을 가르쳐야지. 어른이 말씀하시면 네네 해야지! 요즘 세대들이란! 쯧!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은 하지 말자. 그러는 당신도 옛 조상의 눈에는 서양복식과 단발령을 따르는 막돼먹은 신세대다.
며느리는 엄연한 성인이고, 타인이다. 20살이 넘어 만난 사이라면 성인 대 성인의 관계로 대해야 한다. 가르칠 대상이거나 나의 아랫사람이 아니다. 이래라저래라 해도 되는 노예가 아니라는 말이다.
평소에 며느리와 기싸움이 알게 모르게 있었다면, 어른이 된 이상 교양 있게 나의 모습을 먼저 뒤돌아보자. 내가 며느리에게 한 행동들이, 아들 동성 룸메이트에게도 할 수 있는 행동들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고 행동하자. 며느리가 아들의 동성 룸메이트라면 어떻게 대했을지 한번 더 고민해 보자.
그럼 집안에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