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말다툼, 부부싸움이 사라졌다.
기혼 여성이 많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꼭 나오는 불만이 있다. 맞벌이로 힘들어 죽겠는데 남편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것. 시켜도 안 하고, 해도 대충 한다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우리 집에선 그런 일은 없다. 남편의 가사참여율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 나의 임신으로 남편이 집안일의 약 90%를 담당한다. 정말 깔끔하고 믿음직스럽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도 결혼 초에는 다툼이 잦았다. 할 일을 시키면 탱자탱자 느려 터지게 하는 남편. 나중에 확인하면 앗! 까먹었다. 내일 해야지^.^~ 하며 혼자 해피하게 유튜브 보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결국 지저분한 걸 못 보는 내가 다 치웠고, 난 울화통이 치민채 소리 질렀다. "나는 네 와이프지 엄마가 아니야!!"
참다 참다 화를 한번 내면 깜짝 놀라서 갑자기 집안일을 후다닥 해내는 모습도 그렇게 얄궂을 수가 없었다. 이럴 바에 그냥 내가 다 해버릴까? 그러기엔 체력 약한 내가 앓아누울 것 같았다.
정말 스트레스 가득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남편도 나만큼,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본인 생각엔 다음 날 해도 될 것 같은데, 안 한다고 화를 내니 남편 나름대로는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잔소리 폭탄에 몸부림치던 남편은 가능한 모든 것들은 자동화하자고 의견을 냈다. 한 달 월급 정도로 비용은 꽤 들었으나, 다툼을 막을 수 있다면 큰 비용은 아니라는 판단에 나도 동의를 했다.
1. 음식물쓰레기 : 린클 구매
2. 고양이 화장실 : 자동화장실 구매
3. 설거지 : 식기세척기 구매
4. 로봇청소기 : 로보락 구매
- 정신건강을 위해 물걸레도 자동으로 빨리고, 전선과 같은 물건에도 걸리지 않는 고기능 제품으로 구매했다.
기계화를 하니, 집안일의 반절이 줄었다. 남은 집안일을 잘 분배해서 잘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 또한 남편이 집안일을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냈다. 남편에 비해 퇴근시간이 이른 나는, 내 몫의 집안일을 한 후 남편이 해야 할 일을 노트에 적어서 식탁 위에 뒀다. 회사에서 데드라인에 맞춰 여러 업무를 하는 S급 남편이기에 이 방법이 잘 맞으리라 판단했다.
예시는 위와 같다. 할 일이 5개나 되어 부담을 느끼는 것을 방지하고자 우측에 예상 소요시간도 함께 기입했다.
생각보다 효과는 놀라웠다. 퇴근 후, 리스트를 본 남편은 헤드셋을 찾아 쓰더니,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신나게 집안일을 했다.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엑스표를 치며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물론 성에 차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화장실 청소의 경우, 수세미로 세면대 전체, 솔로 바닥 전체를 박박 닦아 광내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물만 흩뿌리고 눈에 띄는 얼룩만 지웠다. 이 경우, 나는 어떻게 하는지 시범을 보여준 후, AS를 요청했다. 착하고 똑똑한 남편은 바로 이해했고 나의 요청에 맞춰줬다.
그전에는 여러 번 말해도 제때 하지 않는 남편을 보며 답답해했다. 할 때까지 잔소리를 했다. 예를 들어 분리수거하라고 3번 말했는데, 안 하면 할 때까지 4번, 5번 말을 했다. 나는 분기탱천한 앵무새가 되었고, 남편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첩으로 집안일 소통을 시작하고 나니, 남편에게 잔소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성실한 남편은 적어놓은 것은 자기 전까지 꼭 완수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이에 오가는 말 중 잔소리와 짜증은 사라지고, 예쁜 말과 사랑표현만 남았다. 심지어 수첩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날에도, 알아서 치우고 비우고 있다.
우리의 방식은 자동화, 투두리스트 작성, 시범과 AS 세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자동화로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한 후, 투두리스트를 사용하여 잔소리 없이 집안 업무를 한다. 눈에 차지 않는 것은 시범을 보여주고 AS를 받는다.
반년 후면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다. 육아를 하게 되면 집안일이 배로 늘어나 싸움이 늘어난다는데, 나는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내 남편은 연애 때보다 믿음직스럽고 더 듬직해졌고, 이젠 집안일 전체를 믿고 맡겨도 아쉬움이 없다.
혹시 예전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신혼, 또는 예비부부가 있다면 이런 방법도 있으니 꼭 한번 적용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