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졌음 한다.
물론 중간중간 사이코패스 같은 팀장을 만나게 되어 약 증량을 한 적도 있었다. 노력하고 약을 복용함에도 불안증상이 올라와 눈물이 나왔다. 내가 또 맛이 가는 건가 무서웠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의사 선생님 처방 하에 증량했고, 안정된 이후 감량하며 내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들 또한 나를 더 강하게 도와주는 담금질이 되었다.
몇 개월 전, 과거의 어두웠던 나와 비슷한 모습의 선배를 보게 되었다. 그의 표정은 점점 침울해졌다. 그는 견디다 못해 몇 달간 휴직계를 썼다. 복귀 후에도 낯빛은 점점 흙빛이 되어갔고, 살이 특히나 엄청나게 빠졌다. 가끔 나를 잡고 숨이 막히고,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 하소연을 했다.
보다 못해 정신과를 추천했다. 그는 정신과까진 갈게 아닌 것 같다며 주저주저했다. (정신과에 대한 모든 편견들 : 중독, 부작용, 평생 다녀야 한다 등등을 언급했다.) 나는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는 드디어 고통으로 해방되었다고 말했다. 당신도 끈적이는 타르 같은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얼른 빠져나오길 바라면서.
솔깃해진 그는 얼마 후 정신과를 다녀왔다. 그 후 언제부터 낯빛이 달라졌다. 거의 뼈다귀나 다름없었던 모습은 다시 살이 붙었고, 흙색이던 피부도 다시 맑아졌다. 말수가 급격히 줄어 걱정되었는데, 다시 말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추천해 줘서 너무너무 고맙다며 이제야 살 거 같다고 했다.
정신과약 복용 중이라는 말을 어렵사리 꺼내면 항상 나오는 말들이 있다. 그런 거 먹으면 안 돼. 중독돼. 나중에 치매 걸린대. 그런 거까지 먹어야 해? 약은 먹지말구 산책하고 햇볕 쬐고 운동해. 명상하면 낫는대. 걱정으로 포장해서 전혀 근거 없는 비과학적인 뇌피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심지어 보험 상담사로부터는 요즘 젊은애들은 마음이 약해서 정신과를 다닌다는 말까지 들어봤다. 혼자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며 응원과 함께.
진짜 어이가 없다. 100m 구덩이에 빠진 사람보고 맨손으로 올라오라고 하는 격이다. 깊은 우울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장비는 정신과약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덩이는 더 깊어져간다. 나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장비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 깊은 구덩이에서 시간 보내다가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제발 쓸데없는 책임감 없는 말은 하지 말자.
한국 자살률은 OECD 1위이다. 국내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서 그렇지 매우 심각한 수치이다. 이런 나라에서 정신과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다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출처 : 한국 자살률 10만명당 25명… OECD 평균의 2배, https://biz.sbs.co.kr/amp/article/20000168463)
눈이 아프면 안과, 코와 목이 아프면 이비인후과, 정신과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로 가면 된다. 단순하다. 적어도 잘 모르면서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떠들지는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약을 평생 먹지도 않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치매에 걸리거나 살이 미친 듯이 찌지도 않았다.
정신과 문턱이 낮아지고 편견이 없어지길 바란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불안장애 극복 경험담을 쓴 이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