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공책 <맑은 샘>이 한 그루의 나무를 상세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면, 지금부터 소개하는 교실 일기는 숲 전체를 볼 수 있게 한다. 학부모님께 가장 만족도가 높은 활동이기도 하다. 우리 반의 명칭이자 애칭이 ‘평화반’이기 때문에 나는 <평화반 일기>라고 명명한다.
처음 일기를 써야겠다 마음먹었던 것은 2010년 교사 1급 정교사 연수 때 오셨던 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서였다. 선생님께서 학급 경영의 기술 몇 가지를 알려주셨는데, 하나같이 선한 마음씨와 굳건한 심지가 느껴지는 단단한 학급 경영 방식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똑같이 따라 하기에는 어렵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았다. 학급 경영이라는 것이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어쨌든 경영 당사자의 적성 및 취향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도 꼭 해 봐야지.’라고 다짐하게 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선생님께서 날마다 쓰시는 교실 일기였다. 특별한 각오가 있었다기보다는 좋은 선생님의 좋은 강의를 듣고 뭐라도 하나는 따라 하고 싶은데, 그중 내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일기 쓰기였던 것 같다. 일기는 누가 쓰지 말라고 해도 숨어서 쓰기도 했었으니까. 물론 아무에게도 안 보여주는 비밀 일기와, 누구나 다 보는 일기의 성격이 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마음은 먹었지만 실천에 옮기기까지는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한번 쓰기 시작하면 한 해가 끝날 때까지 날마다 쓰겠다는 약속을 암묵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에도 학급 홈페이지를 통해서 아이들의 사진은 종종 올리는 편이었고, 월요일마다 칠판에 편지를 한가득 써놓는 나름의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지만, 어쨌든 매일의 일기를 올린다는 것은 큰 결심이었다.
그리고 교사 경력 6년차가 된 2012년, 처음으로 교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과 연동된 프로그램이 없어서 네이버 카페를 활용했었다. 학급 홈페이지가 해년마다 리셋되는 게 좀 아까웠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냥 자료 보존에 대한 특별한 미련 없이 하이클래스라는 교육 플랫폼에 올리고 있다. 1년 동안 꼬박꼬박 쓴 글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크게 아쉽지 않은 이유는, 어떤 교실이든지 1년 살이가 특정한 지점에서 비슷한 부분에 수렴한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 아쉽지 않다고 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기는 주로 <여는 글- 하루의 주요 활동 안내와 사진-닫는 글-오늘의 감사-오늘의 영상>의 형식으로 올라간다. 사진이나 영상에 특별한 편집을 더할 여력은 없어서 아주 정직한 원본의 형태로 올리고 있다. 일기를 쓸 때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없지만, 평범한 것 같은 하루에서 발견한 특별함을 살짝 더하려고 노력한다. 교실은 반복되는 주기의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칫 일기가 단조로워질 수 있는데, 그러면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좀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일기가 교사의 하소연이나 화풀이 장소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면 해서이다. 물론 전체적인 교실 분위기가 너무 붕 떠 있을 때나 학생들이 눈에 띄게 해이해져 있을 때에는 학부모님께 아주 상세하게 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브레이크가 필요한 경우이고, 특정 학생이 특정 행동을 해서 반에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는 절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한 아이 때문에 기력이 매우 소진되고 머릿속이 새까만 고민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일기를 써야 할 때는 약간의 현타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힘든 마음이 일기를 쓰면서 치유되기도 한다.
내가 일기를 쓰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효용성은, 교실에 관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부재는 때로 불안을 키운다. 만약 어떤 학생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평소에 쌓아둔 정보나 소통의 창구가 없다면, 학부모님은 학생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교실 일기를 통해 학급의 모습을 꾸준히 접하면 반의 전반적인 분위기나 아이들의 생활 모습, 나의 교육 철학까지 자연스럽게 아시게 된다.
나는 일기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학부모님은 그것을 읽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방적인 소통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는 이 과정이 충분히 쌍방향 소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부모님께서 내가 쓴 일기를 읽으며 학급 운영에 대한 교사의 헌신과 노력을 느끼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교사에게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시기 때문이다.
사실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께서는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것을 조금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 이유는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민원 때문이다.
“왜 우리 아이는 사진을 이렇게 많이 안 찍어주시는 건가요? 다른 아이들은 단독 사진도 많던데.”
“우리 아이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죠? 교실에서 잘 생활하고 있는 거 맞나요? 관심 좀 가져주세요.”
“저번에 영상 보니까 짝꿍이 우리 애한테 이런 말을 하던데, 말투가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요? 선생님 지도를 잘하고 계신 거 맞나요?”
열정을 가지고 시작을 했어도 돌아오는 것이 이런 반응이라면,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교직에 대한 회의감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민원을 방지하고 학부모님들의 염려를 줄이기 위하여, 일기를 쓰는 첫날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장 먼저 게시한다.
오늘부터 평화반 친구들의 얼굴이 담긴 일기를 올리기 시작할 텐데요, 그에 앞서서 먼저 일기를 읽어주시는 분들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1. 일기에 올라가 있는 사진과 동영상은 자녀의 학교 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참고하는 용도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가끔 사진이나 영상 속 모습을 보시고 '왜 쉬는 시간에 계속 혼자 있지?'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지?' '왜 활동할 때 내 자녀의 모습이 잘 안 보이지?' 등의 걱정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이들에 따라서 환하게 웃다가도 카메라를 보면 급 어색해지는 경우나, 포착의 순간 표정이 어두웠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쉬는 시간에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즐겨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 시간으로 그 시간을 활용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가 생활하면서 상담이 필요할 만큼 어렵고 힘든 상황이 생기면, 제가 먼저 학부모님께 상담 요청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이 오지 않는 이상은 학교에서 자신의 속도에 맞게 차분하게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과정이므로,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걱정을 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2. 자녀의 사진은 그날 일기에 담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활동을 하며 개개인의 독사진을 찍을 때는 23명 모두의 모습이 담깁니다. 그렇지만 수업 활동 중 전체의 모습을 찍을 때는 한 명씩 모두 골고루 돌아가면서 찍기 어렵습니다. 일부러 특정 아이의 사진만 많이 찍거나 적게 찍지 않습니다. 다만, 카메라를 어려워하지 않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좀 더 자주 찍힐 가능성은 있습니다. 독사진을 찍더라도 아이가 너무 눈을 질끈 감거나, 표정이 오묘하게 나온 경우에는 그 아이를 배려하여 업로드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는 찍고, 누구는 찍지 않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사진 찍는 것이 부담이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촬영하기가 힘들어지게 되니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3. 사진과 영상은 개인 소장 용으로만 다운로드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가 단독으로 나온 사진을 개인SNS나 카톡 프로필에 활용하시는 것까지는 괜찮으나, 혹시라도 다른 친구들의 얼굴이 같이 나온 사진의 경우 꼭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당부드린 말씀을 잘 지켜주실 거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올 한 해 동안 열심히 일기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정보를 보시고, 가정에서 아이를 바른 방향으로 지도하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아이와 학교 생활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시길 권합니다 ^^
날마다 일기를 쓰는 것은 이제 오랜 습관이 되어서 크게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지만, 다른 선생님들께 쉽게 권유하기에는 무거운 작업인 것은 확실하다. 가끔은 학부모님께서도 학기 초 상담기간에 교실 일기를 언급하시며 “선생님,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하시거나 “선생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하는 말씀을 하실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써 보면 의외로 쓸 말이 많고, 팔불출 소리 들을까 봐 다른 선생님들께는 차마 못하는 교실 자랑도 실컷 할 수 있으며, 하루의 수업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영상 작업에 재능을 가진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니, 꼭 글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교실 살이를 안내하는 일기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혹시나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한마디. 나는 교사이지만 동시에 엄마이기 때문에, 가끔 엄마들끼리의 모임에서 담임 선생님의 뒷담화 아닌 뒷담화를 듣게 된다. 작년 선생님은 사진을 자주 올려주셨는데, 올해 선생님은 아무것도 올려주시지 않아서 답답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사의 업무에 학급의 사진을 주기적으로 게시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나 또한 학급을 잘 경영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교실 일기를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동안 소화할 수 있는 교사의 노동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쪽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다른 쪽에는 아무래도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는 학부모님께 직접적으로 보이는 교실 일기를 쓰는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니 다른 방법으로 교실을 돌보는 작업에는 손이 덜 가게 될 것이다.
혹시나 학부모님께서 보시기에 선생님께서 교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려주시지 않더라도, 그 시간만큼 그 선생님께서는 다른 부분에서 자신의 역량을 힘껏 발휘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사진이나 영상 등을 많이 업로드해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교실에 관심이 없거나 교육에 소홀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내가 날마다 직접 뵙고 있는 현장의 선생님들은 다들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헌신하시는 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기는 대략 이런 흐름과 분량으로 쓰여집니다. (사진, 영상은 제외하고 캡쳐)
과거 브런치북에서 썼던 평화반 일기에 대한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