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 일역을 꽤 오랫동안 운영했었다. 선생님들마다 운영 방식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나의 경우에는 교실 청소와 그 외 교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합쳐서 아이들 한 명 각자에게 하나의 역할을 주었다. 이 방법의 장점은 모든 학생들이 하나의 역할을 맡게 된다는 점이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반을 위하여 내가 하나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공헌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꽤 있었다. 학급 인원수만큼 일인 일역을 만들어야 하기에 때로는 수를 맞추기 위하여 억지로 역할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생겼다. 역할마다 일의 난이도나 흥미가 달라서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일인 일역을 억지로 가져가야 하는 일도 꽤 많았다.
예를 들어, 학급 칠판을 관리하는 일은 시간도 많이 들여야 하고 힘도 들지만, 은근히 마니아 층이 많은 역할이라서 언제나 다수의 지원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1 분단 책상 쓸기’ 같은 역할은 맨 마지막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가 차곤 했다. 그것도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어쨌든 한 사람은 하나의 역할을 맡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일인 일역을 고안한 최초의 목적이 희석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성실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시간만 때우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청소는 보통 점심시간에 하게 되는데, 그 시간에는 교사가 급식 지도를 하느라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아주 열심히 청소를 하는 장면을 어린이 드라마에서는 많이 봤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교실에 선생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유니콘과 같은 어린이들이 간혹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얼른 놀기 위해서 대충 휘리릭찹찹 하는 시늉만 내고 만다. 시늉이라도 내면 다행이게? 아예 청소는 시작도 안 하고 있다가 선생님이 오실 시간이 되면 그때서야 주섬주섬 빗자루를 집어드는 학생들도 많았다.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기에는 날마다 일어나는 이 과정들은 나에게 꽤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일인 일역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것도 은근히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일인 일역을 검사하는 역할을 만들었는데, 그랬더니 검사하는 친구랑 역할을 한 친구랑 실랑이를 벌이는 일들이 생겼다. 후술 할 학급 경영 방법 기술 중에 하나로 나오겠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교사의 지위에 준하는 역할은 절대 부여하지 않는다. 교사만이 그 잘잘못이나 기준을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일들 말이다. 만약 학생에게 그 역할을 맡겼을 때에 둘 사이에 싸움이 나거나 감정이 상할 확률이 100%에 가까워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몇 년 동안 꾸준히 사용해 왔던 일인 일역 제도를 전격 개편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한 교사 커뮤니티에서 ‘관리자’ 제도를 도입하신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누군가는 분명히 무임승차를 하거나 불성실하게 참여하는 학생이 생기는 일인 일역 제도를 반드시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논지였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선생님께서는 관리자 제도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학급 경영 상황에 따라 꼭 필요한 관리자 역할을 몇 개만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우리 반 상황에 맞게 신설한 것이 바로 <평화 수호단>이다.
<평화 수호단>이란 <평화 수호자>들의 집합을 일컫는다. 평화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봉사하는 친구들의 직함이다. <평화 수호자>들은 각각의 역할을 한 달 동안 수행하며, 일주일이 믿음 열매 5개의 주급을 받는다. 역할을 맡은 첫 일주일 동안 전임자와 후임자 간에 인수인계가 이루어지는 기간이다. 후임자가 실수를 하거나 할 일을 까먹어도 교사가 한 번 더 일러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페널티가 없지만, 2주일 째부터 자신의 일을 소홀하게 할 경우 주급으로 받는 믿음 열매가 1개씩 깎이게 된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일주일 동안 3번의 경고가 누적될 때는 수호자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현재 평화반의 <평화 수호단>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침 요정 수호자
- 아침에 교실 앞문과 뒷문 열기
- 창문 열고 환기하기
- 시간표 바꿔놓기
- 칠판에 날짜, 요일 쓰기
- 선생님 노트북, 책상 아래 멀티탭 전원 켜기
- 이동할 때 교실 문단속
배달의 민족 수호자
- 우유통 갖고 와서 친구들 나눠주기(아침)
- 우유통 갖다 놓기(중간놀이)
- 공책, 맑은 샘 나눠주기
- 학습 준비물 챙겨 오기(도움이 필요할 땐 반장과)
반짝반짝 수호자
- 교실 칠판 닦기
- 교실 칠판 서랍 정리
- 칠판 걸레 빨기(아침 1, 오후 1, 필요에 따라 )
- 책상 서랍 검사(선생님 지시 있을 때)
시간 수호자
- 교실 타이머 관리
- 태블릿 관리
믿음열매 수호자
- 믿음 장터 운영
- 믿음 열매 관리하기
반장(일주일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역할)
- 줄 설 때 길잡이 역할
- 선생님 안 계실 때 전화받기
- 배민 수호자 협조
- 알림장 검사
지구환경 수호자
- 종량제 봉투 관리 및 교체
- 분리수거통 관리 및 교체
<평화 수호단>을 운영하면서 느낀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 조성이 가능하다.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일을 하는데도, 그 일을 하는 자체가 뭔가 특별한 감투를 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물론 주급으로 받는 믿음 열매 5개의 달콤한 꿀이라는 보상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은 확실하긴 하다. 가끔 수호자 역할을 하면서 반장을 맡는 차례가 겹치는 경우, 일주일 동안 많이 바쁘기는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뒤 10개라는 믿음 열매를 받을 수 있어서 학생들이 매우 행복해한다.
둘째,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책임감 있게 참여한다. 일인 일역을 선택할 때 대부분의 학생들은 좀 더 쉽고 최대한 빨리 끝나는 역할을 선호했다. 결국 원하는 역할을 고른 친구는 자신의 계획대로 역할을 빨리 끝냈고, 원하는 역할을 고르지 못한 친구는 하기 싫은 역할을 억지로 맡게 되어 대충대충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평화 수호단> 제도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역할을 경합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사가 하루에 할 일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주도적으로 맡은 일을 해 낸다. 특히 <믿음 열매 수호자>와 같은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믿음 열매를 지급하고 반납하느라 신경 쓸 것도 많고 업무량도 많지만, 수호자를 고를 때마다 가장 지원율이 높은 직책이기도 하다.
셋째, 교사의 관리 부담이 크게 경감된다. 일단 학기 초에 학생들 수에 맞추어 억지로 일인 일역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 학생이 전학을 오거나 가게 될 때 굳이 역할의 개수를 조정할 필요도 없다. 보통 한 달에 한 번 수호단을 새로 뽑게 되는데, 몇 명의 친구들만 결정하면 되므로 역할을 정하는 시간이 짧게 걸려서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점도 좋다. 그리고 수호자에게 일을 시킬 때에도 부담이 없다. 학생에게 수고로이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주급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호자 활동을 잘하고 있는지 검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본인이 직접 선택한 일이므로 책임감 있게 일을 맡아주기 때문이다. 사실 몇 명 안 되는 수호자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안 하는지는 곧바로 눈에 보이는 데다가. 쓰리 아웃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기 때문에 일을 대충 할 수가 없기도 하다. 고학년의 경우 새 학기 첫 달 역할을 맡은 수호자에게만 세세하게 안내를 해 두면 인수인계도 아주 훌륭하다. 전임자가 후임자를 케어하는 일주일의 시간 동안 후임자가 빠트린 일이 있으면 전임자가 챙겨주고, 후임자가 일을 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곧바로 전임자에게 질문하면 되니 교사가 관여할 부분이 없어서 매우 편리했다.
일인 일역 제도를 없애면서 ‘그럼 교실 청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길 것이다. 현재 우리 학교는 고학년에게 특별 구역 청소가 할당되지 않아서 교실과 복도만 청소하면 되어 부담이 없긴 하다. 그리고 교실 청소는 하교하기 직전에 3분 타이머를 맞춰 두고 반 아이들이 동시에 미니빗자루로 교실 이곳저곳의 자잘한 쓰레기와 먼지를 쓸어 담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일단 23명이 청소하기 때문에 손이 닿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3분이 끝나면 교사가 쓰레기통 앞에 서서 학생들의 쓰레받기를 검사하며 통과와 불통을 결정한다. 불통의 경우에는 돌아가서 그것보다 좀 더 많은 양의 먼지를 모아야 통과할 수 있다. 그날 모은 먼지량이 많은 친구들에게는 교사가 엄지손가락을 들며 ‘따봉’을 주는데, 이것은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하교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이 따봉을 받기 위해 아이들은 더 의욕적으로 청소에 참여한다. 사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 특권을 놓고 벌이는 미묘한 신경전을 싫어하는 터라 웬만하면 이런 선별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지만, 올해 맡은 아이들은 따봉을 받으면 기뻐하는 반면에 따봉을 못 받았다고 눈에 띄게 실망하거나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없어서 일단은 이런 이벤트를 지속하고 있다.
사실상 청소 구역을 나누기 위해 의미 없이 실행되었던 일인 일역의 단점을 커버하고, 교실에 필요한 요직을 선별하여 학생들에게 교실을 위해 공헌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평화 수호단> 제도를 다른 선생님들께도 적극 추천하고 싶다. 특히 고학년 교실에서 운영할 경우 선생님의 교실 관리 부담까지 확 덜어낼 수 있다는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