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여야 집중할 수 있다.(1)

by 곽예지나

오늘날의 경력에 이르기까지 지난날의 나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임용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젊었던 때의 나는, 시간이 많고 열정도 가득했지만 감정 조절은 좀 미숙했고 강약 조절을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완벽한 건 아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늘어나고 경험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20대 시절과 비교하면 직업적으로는 좀 더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듯한 느낌이다.


이번 글은 좀 부끄럽지만 과거에 내가 철저히 실패했었던 사례를 이야기하며 시작해야겠다. 초등학교 2학년을 가르칠 때의 일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한 반의 학생 수가 좀 더 많았는데, 그 해에는 유독 더 많아서 무려 33명을 가르쳐야 했다. 얌전한 아이들 33명을 한 공간에 몰아놓아도 뭔가 일이 터질 수밖에 없는 숫자인데, 심지어 그 해에 우리 반에 요주의 인물들이 꽤 모여 있었다. 내가 학년 연구실에 잠시 준비물을 가지러 가거나, 화장실에 갔다 오는 짧은 사이에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빵빵 터졌다. 2명, 3명 모여서 싸우는 것은 일상이요, 가위를 휘둘러서 다른 친구 손등을 긁는 일에서부터, 슬그머니 한 명이 교실을 빠져나가 사라지기도 했고, 수업 끝나고 단체로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쳤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1년을 버티면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은 물론이요 교사로서의 효능감도 느끼기 어려웠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쉬는 시간이었다. 어찌어찌 수업을 끝내고 쉬는 시간에 한숨 돌릴라치면, 아이들끼리 논지 5분도 안 되어서 꼭 일이 터졌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다치고, 누구는 악다구니를 지르는 현장. 반복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2학기 말이 가까워졌을 때 나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된다. 수업 중이나 쉬는 시간에 일련의 사건이 발생해서 누군가 선생님께 경고를 받았을 때, 그다음 쉬는 시간의 자유를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보통 수업 중에는 착석을 하고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되어 있는데, 쉬는 시간에도 반드시 모든 학생들이 착석하여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화장실을 가고 싶은 친구만 선생님께 허락받고 남자 1명, 여자 1명씩 다녀올 수 있었다. 앞에서 말한 전제대로 이런 규칙이 적용되는 것은 앞선 시간에 학생들이 교실의 규칙을 크게 어기는 때에 한했지만, 문제는 아이들 중 누군가는 늘 규칙을 어기고 말썽을 피웠다는 것이다. 어떤 날에는 5교시 수업 중 3번의 쉬는 시간을 그냥 앉아서 보내기도 했다.


당시에 이런 제도를 도입했을 때의 의도는 이러했다. 첫째,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놀 수 없는 불편함을 몇 번 느끼게 되면, 다음에는 교실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둘째, 쉬는 시간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게 하면 아이들끼리 부딪치는 상황이 생기지 않으므로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이렇게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전보다 안정된 교실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계획은 성공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실패였다. 쉬는 시간 관련 조항을 만든 지 2주 만에 나는 해당 규칙을 폐지했다. 벌칙을 도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용보다, 잃는 것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잡히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 이어 쉬는 시간까지 아이들 전체를 지켜봐야 하는 나의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교직 생활을 하며 100%의 성공을 이뤄내기는 쉽지 않지만, 그 해의 기억은 좀 더 가혹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정해진 규칙을 어겼고, 싸움은 끊이지 않았으며, 나는 학생들 곁을 떠날 수가 없어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통에 방광염만 2번 걸렸고, 학부모님들하고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해에 나는 여느 때와 똑같이 열정을 활활 불태우던 교사였다는 것이다. 아이들 사진을 열심히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렸고, 생활 공책을 쓰면서 가정과 연계 지도를 하려고 노력했고, 교재 연구를 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불과 1년 전, 3학년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에는 내 인생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자부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학교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럼 그 해의 내가 유독 어려움을 느낀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물론 지나치게 과밀한 학급 인원, 아이들의 전반적인 생활 태도나 가정에서 부모님의 지도가 더 안 좋은 상황이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그것보다는 덜 망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는 것은, 나의 학급 경영 방법에도 뭔가 고쳐야 할 점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교직 경력이 좀 더 쌓임과 동시에, 운동과 담을 쌓고 저질 체력으로 지내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됨으로써 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학년 아이들에 대한 이해도의 부족, 더 자세하게는 저학년 아이들의 ‘움직임 욕구’에 대한 이해도의 부족이었던 것이다.


당시에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과잉 행동을 하고, 친구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만들었던 이유는 그렇게 추가적인 움직임이나 에너지 표출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즉, 충분한 움직임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체육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고(내가 학생일 때에도, 교사일 때에도) 그렇다 보니 체력이 떨어져서, 나 하나 움직이는 것도 버겁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 와중에 평상시에는 안 하던 활동을 용기 내어 시도할 때마다 뭔가 문제가 생기니, 아이들을 데리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점점 더 안 하게 되었다.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만약 당시에 내가 아이들의 움직임 욕구를 건강하게 채워주었다면, 아이들이 남아도는 에너지는 주체하지 못해서 일으키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과거의 if에 '해결'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너무 성급할 수 있으니 판단을 조금 양보하자면, 그때의 문제가 100가지가 있었더라면 한 70가지 정도로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몸을 최대한 많이 움직여야 집중도 할 수 있다.”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잊지 않고 늘 되새기는 문장이 되었다. 특히 고학년보다 저학년에서 효용성이 높다. 고학년이 되면 40분 동안 착석하여 공부에 집중하거나, 집중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만한 말이나 행동들을 하지 않게 된다. 반면 고학년과 발달 단계는 천지 차이면서도 똑같은 40분의 수업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저학년의 경우에는 그냥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괴롭다. 그런 아이들에게 교사가 지속적으로 “자리에 앉으세요.” “지금은 말하는 시간이 아니에요.”라고 언어적 지시를 주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아이들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학년을 착석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땀을 뻘뻘 흘리도록 움직이고 기운을 빼서 저절로 차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데 성공한 것이 사나운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햇빛이었던 것처럼?


다음 글에서는 지금의 내가 학교에서 어떻게 아이들의 움직임 욕구를 존중하고 있는지, 그 하루동안의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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