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한 명의 학생만을 위한 맞춤 서비스가 필요하다. 세 번째 항목과 밀접하게 연계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셋째 항목에서 ‘행동 계약’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었다. 이것을 작성하기 위해 사전에 학생과의 개인 면담 시간이 필요하다. 학생의 어떤 행동이 문제가 되는지 알려주고, 이 중에서 고치기 위해 노력할 것 2가지(시급한 것, 쉬운 것)를 알려준다.
학생이 교사와의 약속을 잘 지켰는지 표시하여 확인할 수 있는 기록지를 마련하고, 생활 공책 등에 붙여서 쉽게 보관 및 확인이 가능하게 해 준다. 고학년이나 문제 행동의 빈도가 낮은 경우에는 하루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되고, 저학년이나 문제 행동이 빈번한 경우에는 1~3교시/쉬는 시간, 점심시간/4~5교시 등으로 좀 더 세밀하게 하루를 쪼개주는 것이 좋다. 하루동안 혹은 해당 시간 동안 교사와의 약속을 잘 지켰으면 O, 지키지 못했으면 X로 표시한다. 그리고 학생이 표시한 O 개수가 일정 기준에 도달했을 때 받고 싶은 선물을 결정한다. O개수가 20개씩 누적될 때마다 작은 봉지 과자를 받는다거나, 원하는 작은 학용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만약 학생의 문제 행동이 많이 개선되어 해당 목표를 졸업하고 새로운 목표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좀 더 큰 선물로 보상한다. 이런 행동 계약은 행동주의적 접근 방식 중의 하나로, 행동의 목표와 달성 여부를 수치화하여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적용하기 용이한 방법이다.
이렇게 학생이 하루의 목표를 잘 수행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하교 후에 짧은 면담 시간이 필수적이다. 이때 교사는 학생과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짧은 피드백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동주의적 접근 방식은 명료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여기에 교사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양념을 더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쉬는 시간에 친구와의 갈등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아까 화가 많이 났지만 선생님과의 약속대로 친구를 때리지 않았구나. 정말 잘했어.”라며 아이를 칭찬해 준 뒤, “지금은 어렵지만 친구에게 바른말로 불만을 표현하는 것도 천천히 익혀보자.”라고 덧붙여준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친구와 다툰 일로 혼이 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감정을 조절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 점을 인정받게 된다. 이때 학생은 자신의 행동을 알아봐 준 교사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형성하고, 자신의 노력이 의미 있었음을 느낀다. 또한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다시 한번 노력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다섯째, 학생의 문제 행동을 발견했을 때 머릿속으로 되뇌면 좋은, 마치 마법과 같은 문장 하나를 기억해두자.
성선설과 성악설 중에서 어떤 것을 만고의 진리로 믿고 받아들여야 할지는 여전히 오랜 논쟁이지만, 다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본 입장에서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아이들은 늘 상상 이상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성인들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의 상한선을 지키고, 현실 감각이 있으며, 내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으므로 일탈을 저지르고 싶다고 해도 보통의 경우 상상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어린이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그래서 어른들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는 일을 의외로 태연하게 벌이기도 한다. 가장 쉬운 예시로, 어릴 때 죄 없는 곤충들을 잡아서 날개를 떼어내거나, 개미굴에 물을 집어넣는 경우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른들은 그런 행동이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여기지만, 아이들의 경우 아무런 악의가 없이 단순히 호기심만으로 그런 일들을 벌인다.
꼭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니더라도, 어른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어린이들의 행동은 꽤 많다. 내가 공주라고 상상하고 실제로도 관련된 행동을 한다던가, 안경을 쓰고 싶어서 일부러 텔레비전을 눈앞에서 본다던가,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있지도 않은 일을 계속 지어낸다던가 등의 일이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은 다양한 일을 벌인다. 귀엽고 순수한 것도 있지만 때로는 잔인하고 무자비하거나, 선생님의 기준으로 봤을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도 많다. 선생님 앞에서 완벽한 모범생이었던 학생이 알고 보니 반에서 한 친구를 따돌리며 욕이 잔뜩 적힌 쪽지를 건넸다거나, 숙제를 일주일째 안 해와서 눈물 쏙 뺄 정도로 훈육을 했는데 다음날 또 숙제를 안 해오거나, 학교에서 주운 귀중품을 실컷 가족 놀다가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버리거나 하는 등의 일이다. 이런 사실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이 문장일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사실 교사의 이런 심리는 당연하다. 이런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어떤 사안에 대해서 교사가 화가 났을 때 그 화를 아이들에게 적절하게 잘 전달하는 것도 훈육을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우리 선생님은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진짜로 화가 많이 나시는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각을 했을 때나, 복도를 뛰었을 때나, 친구를 때렸을 때나, 물건을 훔쳤을 때나 선생님이 똑같은 크기로 화를 낸다면 학생의 입장에서는 지도가 되기는커녕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어떤 잘못들은 다른 잘못들보다 더 무섭게 제재받아야 할 필요가 있고, 교사의 마음을 뒤흔드는 사건들은 후자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을 바꾸라고 하는 이유는, 교사의 마음이 불구덩이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때에는 침착한 훈육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작 교사가 지도하고 싶었던 부분을 충분히 지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교사의 마음이 지나치게 괴로워진다. 학생들을 믿었던 만큼 배신감이 클 것이고, 이런 감정은 상황의 처리 여부와 관계없이 교사의 마음에 독이 된다.
그래서 상상하지 못한 종류의 문제 행동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인지하고 교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대신,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몇 단어 바꾸지 않은 이 문장은 마음속을 다스리는 데는 최고의 명약이 된다.
사실 이 문장에 대한 힌트는 우리 남편에게서 얻었다. 학교에서 학생과 문제 행동에 관한 다양한 이벤트들이 있을 때, 같은 직종에 있는 남편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많이 했었다. 그때마다 남편이 웃으며 한결같이 하던 말이 있다.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지.” “아이들은 예측 불가니까 그럴 수도 있지.”
처음에는 그 말을 들을 때 화를 냈었다.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옆에서 지켜보니, 남편이 학급 경영을 할 때 생기는 자잘한 일들에 대해서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급에서 나와 비슷한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나와는 달리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때 이 문장의 마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럴 수가?’가 떠오르려고 할 때 얼른 머릿속에서 이 말을 지워버리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문장을 바꿨다. 그랬더니 그 순간 거짓말처럼 화와 분노가 저만치 밀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신감으로 뜨겁게 타오르던 머리가 차분하게 식으며 이성이 돌아왔다.
물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만 하고 당면한 문제를 그냥 넘기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장은 학생들의 문제 행동을 축소화시켜주지는 않는다. 대신 교사에게 마음의 여유를 줄 수 있다.
교사의 마음 가짐을 바꾸는 이유는 현재의 문제 상황과 앞으로의 지도 방향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감정을 가라앉힌 상태에서 냉정한 머리로 판단하고 학생들을 대할 때, 같은 상황이라도 해결의 과정은 한결 편안해질 수 있다.
교사의 심리를 다스리기 위해 내가 추천하고 싶은 또 하나의 마음가짐이 있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가 바꿀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고,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물론 성인에 비해 초등학생은, 또 고학년에 비해 저학년은 교사의 지도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지만 ‘반드시 이 학생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라는 강한 의지로 시작했을 때, 지도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 교사가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필요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교사가 무능한 것도, 아이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눈에 띄는 변화가 없을지라도 분명히 아이는 성장하고 있으며, 그 성장이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것뿐일 수도 있다. 사랑과 관심을 받은 아이는 콩나물이 물을 맞으며 자라듯 조용히 자라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