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2025년 5월 16일 금요일

by 곽예지나

pm 3:01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운동장에 비를 뿌린다. 혹시나 오늘 예정된 체육 수업을 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했는데, 약간의 고비가 있었지만 계획했던 활동을 다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학교 오는 유일한 낙인 체육 시간을 그냥 대충 보낼 수는 없지. 습한 날씨라 힘들만도 한데, 아이들은 드넓은 운동장을 땀 뻘뻘 흘리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어제 오후부터 자꾸 앉고 싶고, 허리하고 다리가 아프고, 몸이 으슬으슬하며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그 와중에 남편에게 온 연락, "유림이 또 열난다." 3일 내내 열이 펄펄 끓고 이번주 내내 비실비실하던 유림이가 또 열이 난다니. 해치운 게 아니었나요?

집에 가서 일단 내 체온부터 재봤다. 삐빅, 38도. 결국 유림이에게 옮았구나. 갑자기 가족 구성원의 50%가 환자가 되어버렸다. 린아는 "으악, 바이러스!" 하면서 도망가고, 아픈 사람은 나하고 유림인데 왜 남편이 제일 의기소침해 보이는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역시, 어디 가서 입방정 떨면 안 돼. 브런치에다 유림이 다 낫고 나도 안 옮았다고 글 써놨더니 이게 뭐야. (이런 식으로 미신은 강화되고)

근데 왜 계속 괜찮다가 이제서야 아프지? 단식한다고 몸 고생시켜서 바이러스가 기세등등해졌나?

(챗 gpt에게 묻는다)

"괜히 단식해서 유림이한테 옮은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한 거 아닐까?"

"단식은 면역력 억제가 아니라 면역 리셋을 유도해. 낡은 면역 세포들을 오토파지로 정리하면서 새로운 방어체계가 재생성되는 과정이야. 단식이 바이러스를 불러낸 게 아니라, 네 몸 안에 조용히 숨어 있던 바이러스나 면역 반응이 우연히 이 시점에 드러난 거야."

...근데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니니?


아픈 몸도 걱정이지만 그다음으로 걱정되는 건 다음날 출근할 일이다. 내 수업 시간을 대신해서 보결로 들어와 주시는 선생님들께도 죄송하고, 담임 선생님 없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도 걱정이니까.

다른 선생님들이 아프실 때는 "아유~ 아플 때 쉬셔야죠. 몸이 안 좋은 건 불가항력인데 어떻게 해요." 라고 하지만, 막상 스스로에게는 그런 따뜻한 위로와 이해의 말을 건네지 못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만에 나아야 해. 내일 꼭 출근해야 해! 의지를 강하게 다지며 8시가 좀 넘어 잠이 들었고, 쾌적한 컨디션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데 성공!

이것은 정신력으로 바이러스를 퇴치한 사례일까? 2차 입방정으로 집에 가면 또 아프기 시작하는 거 아니야?


2명의 발열 이슈로 미리 세워놓은 주말 일정 다 취소되고, 날씨도 구리구리하다. 나쁜 바이러스, 우리 집에서 사라져라!


pm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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