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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로마로

니하오 이딸리아

by 집사 김과장



두브로브니크 항구를 벗어난 페리는 서서히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쇠로 된 침대는 잘게 떨리며 잡음을 냈다.


페리는 밤새 아드리아해를 건너 이탈리아 바리에 도착한다.

그래서인지 배는 여행객 일색이었다.

식당칸과 로비칸에는 배낭을 던져놓고 그걸 베개 삼아 늘어져있는 청년들이 많았다.

피곤한 행색이지만 남루하지 않았다.

젊음이 모든 고난을 밟아 누른 모양새였다.

'한때는 나도 그랬는데' 하는 생각이 들며 피식 웃음이 났다.


칠흑 같은 바다 위에서, 시간에 한 번 꼴로 잠을 깨며 밤을 보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아드리아해의 일출을 봤다.
비구름이 수평선과 닿아 오메가는 없었지만, 구름과 구름 사이로 슬쩍 비집고 나온 하늘은 오렌지빛 띠를 둘렀다.
한 차례 덜컹이는 움직임이 있은 후 하선 준비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배가 정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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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항에 내렸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구글맵이 가라고 가리킨 방향은 차도다.
하늘은 잿빛이고 항만에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대합실 출구에는 택시가 길게 늘어섰고, 기사들은 하나같이 '15유로'를 외치며 손님을 모으고 있었다.
버스는 어차피 놓쳤고 비를 피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간신히 잡아탄 택시 기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로마로 갈 거면 비행기를 타지, 뭐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배를 타고 왔나?"


택시에서 본 바리 올드 타운은 회색빛이다.
다니는 사람은 드물고 을씨년스럽다.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다들 바쁘다.
하늘도 찌푸렸고, 사람들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어딘가 여유가 없고 숨 막히는 광경이다.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쌀쌀맞다.
바리 기차역 1번 플랫폼 입구에서 남자 둘이 서로를 밀쳐대며 싸우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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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전원은 상쾌했다.
낮은 구릉을 넘나드는 풀빛 카펫은 부드러웠다.

깨끗한 하늘과 대기에 햇빛을 받은 풍경은 쨍하게 빛났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림이 나왔다.

축복받은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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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마는 달랐다.

바리를 떠난 이딸로는 두 시간 만에 로마 테르미니 역에 닿았다.
테르미니 역은 듣던 대로 말도 안 되게 크고 복잡했다.
인파에 휩쓸려 흘러가다 보니 난민이 따로 없었다.


첫인상은 슬럼가였다.
테르미니역 남쪽, 에마뉴엘레 광장 아래쪽 블록은 중국인, 인도인을 비롯한 이민자들이 점령했다.
부킹닷컴에서 가격과 후기를 보고 예약한 숙소는 왠지 불안해 보이는 동네에 있었다.

낡은 건물벽은 낙서로 가득했다.

길가에 앉아있는 사람들 눈매는 날카로웠다.
거리엔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났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어두워진 다음에는 절대로 다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동네였다.

숙소 주인은 체크인 사전 연락 때부터 굳이 이탈리아어로만 메일을 보냈다.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도착해서 만나보니 영어를 전혀 못한다.
어떻게 영어로 숙박업소를 등록했을지 궁금했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주인은 꿋꿋하게 이탈리아어로만 말을 걸면서 못 알아듣는 나를 답답해했다.
구글번역 앱을 열어서 내밀었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거의 다 알아듣는 번역기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중에는 번역기가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마저 답답해서 아예 핸드폰을 뺏어가 자기 할 말만 쏟아냈다.
성격은 그렇게 급하면서 일처리는 만만디다.
욕실 세면대 물이 나오지 않아 아침에 얘기했더니, 낮동안 고쳐놓겠다며 나갔다.
그러더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배관공이 일이 있어 못 고쳤다. 네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연락이 안 되더라. 내일 오전 9:30에 배관공 데리고 갈게"


그래놓고는 다음날 정오가 가깝도록 나타나지 않았고, 내 오전 스케줄을 다 잡아먹었다.
결국 수도는 체크아웃 전날 밤에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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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는 어딜 가나 '니하오' 소리를 먼저 들었다
처음엔 인종차별인 줄 알고 기분이 나빴는데 착각이었다.

한때 우리가 벽안에 금발이면 싸잡아서 '양놈'이라 칭했듯, 동양인은 그게 그걸로 보이나 보다.

로마에는 중국인이 넘쳐났다.
그러니 일단 '니하오'부터 박고 보는 듯했다.


화교의 유럽 러시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차이나타운은 이미 로마의 일부였다.
테르미니역 뒷골목은 아예 중국어 간판만 내건 상점이 즐비했다.
옷가게, 세탁소, 식당 등 골목 상권은 화교와 인도인이 나눠가진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중식당 간판을 내걸고 초밥을 파는 가게도 꽤나 많았다.

쌀국수 처음 먹을 때 베트남 쌀국수와 태국식 쌀국수를 구분 못 하듯, 대충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먹는 음식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고객을 노린 듯했다.

1인당 2만 5000원을 내고 2시간 동안 초밥 메뉴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길래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음식 맛은 딱히 평가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먹고 싶은 거 있을 때마다 웨이터 불러서 메뉴 찍으면 갖다 줬다.
물론 남기면 안 되는 건 매너.
나올 때 웨이터에게 1유로 팁도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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