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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사 김과장 Jan 21. 2024

Highway To Hell

알리-쟈다



5시에 일어나 히치하이크하러 길을 나섰다.

새벽 어스름은 검푸른 색이었다.

8월 말이었지만 고산지대의 공기는 서늘했다.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아났다. 

알리에서 자다쪽으로 나가는 도로 길목에 배낭을 깔고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보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차는 7시 반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해는 8시에 떴다. 

트럭은 1시간에 한 대 꼴로 지나다녔는데, 물어보는 차마다 "거길 왜 가?"라는 답을 들었다. 


9시가 되자 벽안금발의 커플 하나가 도로를 따라 걸어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곤 흠칫했다.

그리곤 뭐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조금 거리를 두고 자리를 깔았다. 

경쟁자가 생겼다. 

10시에는 중국 아낙 한 사람이 짐 보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길로 나왔다. 

점입가경이다. 

자다에 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다니는 차는 없다. 






정오까지 추위와 더위를 차례로 이겨내며 기다려봤지만 모조리 허탕이다.

히치하이크하러 나온 사람들은 경쟁도 포기한 채 한 데 모여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놀고 있었다.

커플은 폴란드 친구들로 이름은 야쿱과 다리아였다.

야쿱은 신경질적인 눈매와는 달리 서글서글한 호남이었고, 다리아는 키가 작은 야쿱을 업고 여행을 다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튼튼한 아가씨였다.  


"카일라스 산 다녀와서 구게왕국까지 보고 가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네"


야쿱은 키득거렸고 그를 바라보는 다리아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한담이 오가는 와중에 웬 남자가 다가왔다.


"카일라스 산 가오?"


남자는 랜드크루져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운전사였다.

중국판 나라시, 헤이처(黑车)는 그 오지에도 있었다.

아니지, 거긴 그렇게 밖에 움직일 수 없는 곳이었다. 


카일라스 산은 구게왕국 다음 목적지였다.

알리에서 발이 묶인 지 어느새 1주일째였다. 

'차라리 그냥 카일라스로 갈까'하고 고민하던 와중에 떡밥이 날아들었다. 

미끼를 덥석 물기 직전, 중국 아낙이 한 마디 했다. 


"어차피 빈 차면, 자다가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데 그냥 자다로 갑시다!" 


중국인의 협상은 은근하고 지루했다. 

두 사람은 무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결국 기사는 우리 다섯 사람을 태우고 자다로 가기로 했고, 오후 1시경 우리가 탈 차를 끌고 왔다. 

안에서는 차 문도 안 열리는 다 낡아빠진 고물 랜드크루져였다.

5인승 차에 7명이 비좁게 끼어 타지만, 비록 트럭보다 100元이나 비싸지만, 7~8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기사의 말에 기분 좋게 올랐다. 

그러나, 이 차가 나에게 지옥을 보여 줄 줄은 몰랐다.  



알리를 떠난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알리에서 자다까지는 250km였다. 

기사는 7~8시간을 얘기했는데, 오후 1시에 출발한 차는 다음날 아침 7시에 쟈다에 도착했다. 

그 사이 15번의 고장을 통해 차의 어느 부위가 고장 날 수 있는지를 모조리 보여줬다.

새벽에는 가로등은커녕 달빛도, 별빛도 없는 칠흑 속에서 기사가 길을 잃는 바람에 무려 6시간이나 황량한 사막을 헤매야 했다. 

차는 길도 아닌 길을 달리느라 밤새 덜컹거리고 기우뚱거렸다.

몸이 수시로 튀어올라 천장에 머리를 박는 바람에 졸지도 못했다. 

5,600m의 아일라 패스를 넘을 때는 외길 낭떠러지를 달렸는데, 절벽 쪽으로 차체가 10도 이상 기울어 모든 승객들이 공포에 떨며 반대쪽으로 몸을 밀착시켜야 했다.
    

문제의 랜드크루져. 출발하자마자 퍼졌다.


이건 고생담, 추억거리로 삼을 여지가 없었다. 

지다에 간다고 덥석 잡아탄 우리도 문제지만, 이 기사는 자다에 가 본 적도 없으면서 우리를 태운 거였다. 

자다에 도착한 순간 모두의 분노가 폭발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사의 멱살을 틀어쥐고 따졌다. 


"분명히 네 입으로 7~8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했지? 지금 몇 시냐??!!"

"不知道(몰라)"
 


갑자기 뻔뻔해진 얼굴로 기사가 내뱉은 말이다.

교주였는지, 해랑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가 폭발한 누군가가 주먹을 말아쥐고 팔을 뒤로 당겼다.

그걸 본 기사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때려라. 그리고 같이 공안국 가자"
 

이제는 모두의 뚜껑이 열렸다. 

사자후와 함께 주먹이 날아드는 순간 야쿱이 막아섰다. 


"우린 비자기간 때문에 이 차라도 다시 타고 내일 중으로 알리로 돌아가야 한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끝내자."


다리아는 공포에 질려있었고, 야쿱의 눈은 간절했다. 

갈아먹을 듯이 기사를 노려보며 차비를 던져줬다.
  

"돈 많이 벌어라, XX야"
 

돈을 받아 든 남자의 표정이 돌변했다. 

세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그는 굽실거리며 말했다. 

 

"나도 정말 미안하다. 내 탓이 아니다. 차가 고장 난 걸 어떻게 하냐"
 


순간 구역질이 났다.

돈 앞에 한 없이 비굴한 인간을 마주한 순간 혐오스러운 감정이 끓어올랐다. 
중국에서 1년 6개월을 지내는 동안 돈 앞에 비굴한 중국인을 참 많이도 만났다. 


"내가 중국어를 배워서 이런 사람들과 상대하며 살아야 한다고?"


이 길이 맞는 길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좌우간, 1주일 만에 알리를 탈출했다. 



                    

개새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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