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A4 용지는 어디 있나요?”
“저.. 팩스를 보내려고 하는데..”
“저.. FC님이 뭘 하라고 시켰는데..”
“저.. 문구점이 어디 있나요?”
“저.. 양면 복사는 어떻게 해요?”
사무용 책상이 50개쯤 들어앉아있는 넓은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할 줄 몰라 허둥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를 고용한 두 FC들은 영업하느라 오전에 잠깐 인사만 한 후 외근 나가서 오후 늦게 들어왔고, 중간중간 전화로 업무 지시를 할 뿐이라 처음 일주일간 나는 책상 지킴이였다. 그 시간이 당혹스러워서 나는 응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나를 당혹게 하는 상황이 또 있었는데, 그전까지 주로 현장직만 해봤던 나라서 사무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는 거다. 복사기 사용, 비품 관리, 서류 철하기, 팩스 보내고 받기, 영수증 정리하기, 우체국에서 대량 우편물 보내기 같은 업무는 언제나 도전 과제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홀로 해내기에 무리였다. 응가 마려운 강아지는 자주 길 잃은 강아지가 되어 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FC들은 어차피 잡다한 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다른 개인 비서들에게 sos를 청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새침한 반응 가운데 친절한 반응을 보이는 비서가 한 명 있었다.
작은 키, 두꺼운 뿔테 안경, 화장기 없는 맨얼굴, 곧고 검은 단발머리. 교복을 입혀놓아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그녀.
그녀는 비서직을 오래 했는지 습득력이 좋은 건지 보험사 업무 흐름을 잘 알고 있었고, 다정했으며, 엉뚱한 면이 있어서 가끔 웃기기도 했다. 우린 동갑이었고,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 옆 자리를 내어줄 정도로 금세 친밀해졌다. 마침 사는 곳이 가까워서 퇴근할 때 그녀와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지하철로 갈아탔다.
나는 그녀의 도움을 자주 받았다. 지도 어플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라 문구점 하나 찾는 것조차 헤매고 있는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여신! (심지어 문구점별 가격 비교를 해주는 영리함)
고객별 이름과 주소를 (여신의 지도 하에) 라벨지에 프린트하고, (여신과 동행한) 우체국에서 대량 우편물을 보내야 할 때 허둥대는 나를 한심한 듯 쳐다보는 우체국 직원의 시선에서 나를 구원하여 100개 넘는 우편물을 일괄 발송할 수 있게 돕는 센스만점 여신님! 그녀가 없이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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