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은 역삼, 역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2호선에서 목적지에 내리기 위해 게걸음으로 빈틈을 헤치며 출입문 쪽으로 이동한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문과 다소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역삼역에서 우르르 하차하는 짙은색 정장 무더기와 뒤섞여 쏟아져 나오면 되는 것이다.
또각또각또각또각
구두굽의 합창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개찰구에 도착한다. 그제야 비로소 구두 소리가 하나둘 흩어지고 옅어진다.
내가 알바를 하기로 한 ING 생명 역삼지점은 역삼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빌딩에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로 한 게 초봄이었나.. 3번 출구의 계단을 걸어 나오면 연둣빛이 싱그러운 가로수들과 유리로 뒤덮여 반짝반짝 빛이 나는 고층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분주히 지나는 멋진 자동차들과 정장을 입고 출입카드를 목에 걸어 길게 늘어뜨리며 어느 회사 소속인지를 뽐내듯 걸어가는 직장인들. 봄 햇살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강남의 고층 빌딩과 세련된 정장 차림의 사람들로 채워진 풍경은 마치 내게도 반짝임과 세련미가 금세 장착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안녕하세요~ 김00, 차00 FC님 개인 비서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입구부터 사무실 칸막이 틈틈이 남자보다 여성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십여 년의 경험상 그런 조직에서는 좋은 인상과 흠잡을 데 없는 바른 행동거지가 중요하다. 어느 곳에나 나를 평가하는 눈이 따라다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무실 안 '그들'에게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마주치는 누구에게나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한 미소를 발사했다.
그곳은 나 외에도 예닐곱 명 정도 개인 비서들이 있었다. 모든 FC가 개인 비서를 두는 것은 아니었고, 고객 수가 많아서 업무가 많은 FC가 개인 비서를 둔다고 했다. 그곳의 개인 비서들은 FC만 다를 뿐 나처럼 허드레 업무를 하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나눠보니 나이, 사는 곳, 일하는 목적이 제각각이었고, 사무실 안에서는 언니,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지만 무언가 더 다가갈 수 없는 선이 있음을 느꼈다. 짐작건대 소박한 알바비, 단순한 업무, 이곳에서 오래 근무할 개인 비서는 거의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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