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 서빙.. 전단지.... 속기?”
대학생이 되고 첫 여름방학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전남 순천에서 대전으로 유학을 와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방학 중에는 전 기숙사생들이 잠시 퇴사를 해야 했다. 몇 개월간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즐겁고도 무량한 대학 생활을 즐기다가 갑자기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라니! 나는 본가에 내려가지 않기 위해 알바를 핑계로 방학 중 기숙사 거주를 신청했다.
방학 시작과 함께 매일같이 지역 벼룩시장의 구인란을 정독했다. 대부분은 호프집 서빙, 식당 서빙, 전단지 돌리는 알바였는데, 그 사이에 단연 눈에 띄는 네 글자, ‘속기 알바’.
전화로 문의를 하고 찾아간 속기학원은 한 시절의 화려함이 바래버린 구시가지 오래된 건물 2층에 있었다. 허름하고 먼지 낀 ‘00 속기학원‘ 간판이 붙어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누런 크림색 컴퓨터 모니터들이 4열 종대로 침묵하고 있었고, 나와 통화했던 담당자는 컴퓨터 앞의 한 자리를 내주었다.
담당자는 유려한 말솜씨로 속기용 자판을 설명하며 속기 알바의 장점을 나열했고, 속기를 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키보드를 써보게 하며 익숙해지면 벌이가 꽤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속기용 키보드만 있으면 학기 중에도 알바가 가능하겠다는 계산으로 이미 80퍼센트는 그의 말에 넘어갔다. 나머지 20퍼센트에 걸리는 점은 속기용 키보드를 구매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당시 가격으로 30만 원이었나, 50만 원이었나.. 2000년 초반에 키보드 한 개의 가격으로는 꽤 비쌌는데 담당자는 키보드 사용법 무료 교육을 약속하며 마치 속기용 키보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도 되는 것처럼 설명했다.
나는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는 (당연히) 딸의 말을 다 믿지는 않으셨겠지만 (떨떠름하게) 곧바로 키보드 값을 송금해 주셨고 나는 새 키보드 박스를 품에 안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때 나에겐 아버지가 대학 입학 기념으로 사주신 노트북 컴퓨터가 있었는데, 그림판과 한글, 엑셀이 겨우 구동되는 노트북 초기 모델이었다. (인터넷을 하려면 랜선을 꽂고 페이지가 뜨는 것도 한참 기다려야 할 정도의 구식 노트북이었다!)
속기용 키보드는 일반 키보드와 누르는 방법이 달랐다. 일반 키보드는 한글을 입력할 때 자음, 모음을 각각 눌러 한글을 결합하는 방식인 반면에 속기용 키보드는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자음, 모음을 동시에 누르면 글자가 입력되는 방법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으로 자판을 동시에 눌러야 오타 없이 글자가 완성되는데, 처음에는 연습이 재미있었다. 며칠만 연습하면 판사 앞에 앉은 재판장의 속기사들처럼 금세 속기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어디 현실이 만만한가. 스무 살의 젊음 충만한 대학생은 알바로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단지 부모님의 간섭을 피해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알바를 결심했기에 속기 연습은 등한시하고 친구들과 매일 시간과 돈을 탕진하며 속기용 키보드는 옷장 속에 처박아두었다고 한다.
애물단지 속기용 키보드는 결국 본가로 옮겨졌는데, 짐 속에 슬쩍 끼워놓고 대전의 대학으로 돌아가버린 딸내미에게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으신 우리 엄마는 키보드를 보며 얼마나 홀로 속앓이를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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