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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 Jun 21. 2024

너에게 보내는 세 번째 편지

As always



누군가 그러더라. 좋은 기억은 추억이 되고 그렇지 못한 기억은 경험이 된다고






To.


이륙 전까지만 잔다는 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지금 난 태평양 위에서 편지를 쓰는 중이야. 아마 이 편지를 볼 때면 한국에서의 더위를 느끼고 다시 호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 같아. 2년이란 시간 가까이 한국과 호주의 더위를 겪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지 않을까.. 여름이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어쩌겠어.. 다시 선크림 열심히 발라야지



호주에서 지웅이를 만났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 귀국은 같이하기도 했거든. 팝콘 하나 시켜 노나 먹으며 트랜스포머를 보던 13살 꼬맹이 둘이 이제 다 커서 낯선 타지 땅에서 만나니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이곳이 호주 같지가 않고 항상 만나는 집 앞 산책로에 온 기분이랄까. 그래도 내가 호주 선배니까 시티 투어를 시켜줬어! 자연사 박물관에 가 전시된 공룡을 보면서 ‘우와~~’ 하는 모습이 우리가 처음 아이언맨을 봤을 때가 떠오르더라. 미술관에 가서 눈을 부릅뜨고 예술을 아는 척 고개를 끄덕여도 봤고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도시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나라를 눈에 담아놓곤 했어.


서로 그간의 근황들을 주고받다가 내 호주에서 삶을 들려줄 기회가 있었어. 지웅이와 자주 통화 했지만 한 번도 이곳에서의 삶을 자세히, 그리고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았거든. 어린 나이부터 정말 숱한 경험을 한 지웅이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다가 나지막이 묻더라 ‘너 어떻게 견뎠어?’.


 

하루에 14시간씩 주 6일을 일하고, 일한 시간의 값을 제대로 정산받지 못해 힘들어했고,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말에 가까운 말들을 들으며 버텼었거든. 한국에 언제 오냐는 친구의 질문에 ‘당장 가고 싶어’라고 말할까 봐 ‘모른다’고 답했어.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까. 모두가 잠든 시간에 운전대를 잡고서는 ’ 세상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 ‘를 되뇌었던 거 같아.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말이야.


미련 없이 이별을 준비했어. 팔리지 않는 차도, 비싼 비행기 값도, 처리해야 할 서류들도 다 고려대상이 아니었어. 더 이상 하다가는 이성적인 판단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을 거 같았거든. 딱 하나, 미련이 남았던 건 그저 스쳐가는 객일 수 있었던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시고 사랑해 준 사람들이었어.



심적으로 지쳐 기도가 하고 싶어 찾아간 교회에서 따듯하게 품어주셨던 목사님 사모님, 작가라는 공통된 카테고리에서 많은 이야기와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홍석준 집사님, 친구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와 줬던 개리형, 광진이 형, 형렬이 형, 성훈이 형 그리고 일일이 말 다하지 못한 좋은 추억을 남기고 떠난 수많은 인연들. 떠나는 날, 기차역까지 배웅해 주시고 벌개 진 눈을 감추려 선글라스를 낀 사모님을 바라보며 울컥한 마음을 숨기려 애써 농담을 던졌네. 누군가 그러더라. 좋은 기억은 추억이 되고 그렇지 못한 기억은 경험이 된다고. 경험이 80%를 차지한 호주에서의 생활이었지만 나머지 20%의 추억이 너무나 소중해 계속 사진첩을 들여다볼 것 같아.



이제 곧 인천공항에 도착한다고 방송이 나오네. 동요되지 않던 심장이 이제야 조금 요동친다. 기분 좋은 떨림이야!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말해야 하나 싶어. 형누나들이 공항으로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제발 이상한 거 안 하고 조용히 갔으면 좋겠다.. 어떻게 나를 쪽팔리게 연구하는 사람들이라 말이지.. 벌써 어지러워. 기내식을 아무것도 안 시켰더니 배고파ㅠ 아, 벨트 표시등이 켜졌어 또 편지할게


From.

서울 하늘 위에서

한결




p.s 감자탕이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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