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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밤

by 윤기환

시모노세키 항구. 승선한 여행객들로 배 안이 소란하다. 선상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둠에 갇힌 까만 바다는 불빛 만이 명멸하고 있다. 긴 고동소리를 울리며 배가 서서히 움직인다. 이제 우리는 다시 부산항으로 돌아간다. 나흘 전 부산항에서 그랬듯이 선상에 올라가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시모노세키 항구의 흐릿한 실루엣을 눈에 담는다.


2층 식당에는 마지막 밤을 즐기는 여행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우리와 나흘을 함께 했던 동료들도 보인다. 각각 지역 별로 다른 테이블에 있던 라이더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마시던 술과 안주들을 모으니, 조촐하지만 어느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흥에 겨운 동료들의 웃음소리가 다른 여행객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이어졌다. 늦은 밤, 함께 하던 동료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서너 명만 남았다. 식당을 벗어나, 마지막 여흥을 위해 작은 창 너머 바다가 보이는 갑판으로 자리를 옮겼다.


밤바다가 작은 창 너머로 넘실거린다. 배는 깊은 어둠을 뚫고 밤바다를 헤쳐나가고 있다. 바다는 검은 벽처럼 우릴 둘러싸고 있다. 별빛 숨은 하늘 아래, 파도가 갑판 유리창을 두드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하얗게 부서졌다 다시 까만 바닷속으로 숨어버리는 파도가 꿈결에서 보는 듯 현실 같지 않다. 배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심연의 바다를 가로질러 파도에 몸을 맡기고 있다. 배가 흔들리고, 나도 흔들리고, 우리 모두가 흔들린다. 때론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고 기울었다가 다시 평형을 잡는다. 문득, 비틀거리다가 다시 중심을 잡는, 그 익숙한 요동이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흔들리는 밤, 흔들리는 술잔

흔들리는 조명 아래서 마주한 얼굴들이 흔들리는 잔을 부딪힌다. 파도의 물결과 함께 잔이 춤을 춘다. 우리가 앉은 갑판 모퉁이는 마치 세상 끝자락 같다. 창으로 바라보이는 바다는 더 이상 말을 잊게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까만 밤바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흔들리는 술잔을 비운다.


바다의 숨결, 배의 요동, 그리고 동료들의 웃음소리.

이 모든 것이 파도를 타고 흔들거린다.


'흔들리는 밤'이 검은 바다를 거칠게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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