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밤새 흔들리던 배가 무사히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일찍 객실로 들어가 잠을 청하던 동료들이 어젯밤 배가 너무 흔들려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하소연한다. 문득 '세월호' 사건이 생각났다는 동료도 있다. 조금은 과민한 반응이긴 해도, 그도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늦게까지 갑판에 있었던 우리 몇은 술기운에 아름답기만 했던 밤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섭게 흔들리는 밤이기도 했다.
하선을 하고, 부산땅을 다시 밟은 동료들이 언젠가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다. 짧았지만 굵었던 기억들이 아쉬움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아름다운 인연
4박 5일 동안 함께한 스무 명의 인연은 아름다웠다. 서울 6명, 대구. 경주 각 5명, 양산 3명, 부산 1명 등 스무 명이 함께 했다. 그중 반은 퇴직을 하고 또 다른 삶을 즐기고 있고, 반은 아직도 조직의 일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50대 젊은 친구들이다 스무 명 모두의 나이는 정확히 모르지만, 경주와 양산 멤버를 제외하고는 모두 환갑은 족히 넘겨 보인다. 추측컨대, 칠순을 훌쩍 넘긴 우리 열혈청춘만세 멤버의 맏형이 가장 나이가 많을 것이고, 내 나이도 서너 손가락 안에는 들 것이다.
이번 라이딩 멤버 중에는 대구에서 온 부부 라이더도 있었다. 여성은 나와 동갑내기라 했다. 육십 중반을 훌쩍 넘긴 그들 부부는 건강한 체력과 서로를 챙겨주는 금슬이 우리들을 부럽게 했다. 또 여성 라이더가 두 명 더 있었다. 양산에서 온 두 여성은 암벽등반 동호회 친구라 했다. 평소 등반으로 다져진 체력으로 라이딩에서 절대 남성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들을 '이쁜이와 꽃분이'라고 불렀다. 그녀들은 늘 밝은 웃음으로 힘든 라이딩의 해피 바이러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비교적 젊은 멤버로 구성된 경주팀은 라이딩을 할 때면 부러울 만큼 거침이 없다. 가파른 오르막도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치고 올라가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경주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는 대구팀도 경상도 사나이 우정을 과시하며 노익장을 보여줬다. 대구의 자전거 동호회에서 수시로 만나 우정을 다지고 있다는 그들은 늘 넉넉한 웃음으로 자리를 빛냈다.
우리 서울팀 '열혈청춘만세'도 평균나이 65세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춘이다. 오랜 세월 직장에서 함께했던 우정을 토대로, 퇴직 후 국토종주 대장정을 마치고, 몽골에 이어 두 번째 해외 라이딩을 하고 있다. 긴 세월 다져온 끈끈한 정이 늘 서로의 가슴에 흐르고 있어 좋다.
부산갈매기
우리 일행 중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혼자 참여했다. 그는 커다란 덩치만큼 유머가 풍부했다. 누구와도 친화력이 있고, 모든 일에 솔선하며 적극적일 뿐 아니라, 라이딩도 선수급이다. 혼자인 그와 우리 서울팀이 배짱이 맞아 함께 한 시간이 많았다. 유멘온천의 첫날밤부터 가라오케에서도, 시모노세키 가라또 시장에도 함께 했다. 가라또 시장에서는 그가 초밥과 스시를 잔뜩 사서 우리를 배불리 먹게 했다. 그는 넉넉한 익살과 재치, 부산 특유의 사투리로 "행님~~!!"을 연발하며 모두를 행복하게 했다. 우리는 그런 그를 '부산갈매기'라 불렀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마지막 날, 우리 서울팀은 부산항에 내려서 자전거로 광안리를 돌아 그가 소개해 준 곰장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도 그는 우리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우리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굳이 부산역까지 따라와 기차를 타고 떠나는 우리를 배웅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이 많고 붙임성 있는 그는 우리에게 더 많은 기억으로 남았다.
찾아서 만난 인연
어쩌면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두 바퀴 위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 해외로 라이딩을 즐길 만큼 두 바퀴에 진심인 사람들이기에 한 번은 만나야 할 '찾아서 만난 인연'일지도 모른다.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이얀 가루가 될 즈음 그때서야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비록 잠시 스쳐간 인연이지만, 억겁의 시간을 거치며 오늘의 만남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 온 날들이 인연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억측일까?
오늘, 시모노세키 라이딩 스케치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함께했던 날들을 기록으로 남긴 '여행스케치 밴드'에 들어가 봤다. 어느새 추억으로 남은 동영상과 사진들이 반갑다. 많은 댓글들이 환한 웃음으로 달려 있다. 그중 양산의 여성 라이더가 올린 댓글이 함께 한 날들을 함축해서 말해주고 있다.
서울의 해학, 대구의 농담, 경주의 유머, 양산의 익살, 부산의 재치가 어우러져 배에 펌핑이 올 정도로 웃었다.....
그랬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한 인연이었다. 고맙고 고마운 인연들과 언젠가 두 바퀴의 인연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시모노세키 자전거 라이딩을 지원하며, 간식과 먹거리, 좋은 잠자리를 챙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을 위해 애쓰신 여행스케치 대표님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일본 '시모노세키 라이딩 스케치'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함께해 주신 작가님들과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다음으로 연재할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라이딩 스케치도 함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