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양고추를 처음 접한 건 90년대 중반쯤 시청 주변 을지로 선술집이었다. 우리 어릴 적엔 청양고추는 없었다. 청양고추는 80년대 후반쯤 임상재배가 성공을 거두었다 하니 그도 그럴 것이다. 당초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재배에 성공함으로써 청송의 청(靑), 영양의 양(陽) 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여 품종등록을 하였다 한다. 그러나 청양고추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자, 청양군에서 청양고추축제를 개최하고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섬으로써 두 지역 간 원조 경쟁이 치열하였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당시 청양고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향은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본래 매운 걸 좋아하는 민족에게 훨씬 자극적이고 알싸한 그 맛이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날도 퇴근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을지로 단골 선술집에 들렀다. 주인아주머니는, 요즘 우리 집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청양고추주'라며 주전자 하나를 들이밀었다. 주전자에는 숭덩숭덩 썬 청양고추가 소주와 어울려 둥둥 뒹굴고 있었다. 한잔씩 딸아 주는 아주머니에게 의심반 기대반의 시선을 던지며 잔을 받았다.
건배와 함께 마신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우리 모두는 탄성을 질렀다.
"캬~~ 그래, 바로 이 맛이야!!!"
그날 우리는 마약과도 같은 그 맛에 취해 밤늦도록 행복을 마셨다.
그 뒤로 우리는 퇴근 후 시간만 나면 그 집을 찾아 알싸하고 매콤한 청양고추주에 취해 낄낄대곤 했다.
삼십여 년이 흐른 오늘, 청양 땅에서 고추 피해 조사를 마치고 동료 평가사들과 몇 이서 저녁을 함께했다.
소주 두어 병을 비우고 난 뒤 문득 그 옛날 기억을 더듬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청양고추 몇 개와 주전자를 달라 해서 추억의 '청양고추주'를 직접 만들었다. 동료들에게 옛날 기억을 얘기하며 청양고추주 한잔씩 돌렸다.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는 밤이 익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