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불러봤을 노래. 한과 정이 절절해서 들을수록 끌렸던 노래.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칠갑산. 그 산에 오르고 있다.
오전에 일을 마치니 비가 또 추적거렸다. 오후에 찾기로 했던 계약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내일로 일정을 조정하고 나니,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한 번쯤 꼭 와보고 싶었던 칠갑산이 지척에 있으니 그냥 숙소에만 있을 수 없었다. 동료들에게 함께 가자하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들어 누워 버린다.
홀로 차를 몰고 칠갑산을 향했다. 카페가 있는 산 중턱 산장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었다. 우산 하나 챙겨 들고 천천히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처럼 길이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한 여성의 일생을 담은 ‘어머니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을 시작으로 희, 노, 애, 락, 그리고 '그리움'의 길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길이 정상부근까지 이어진다.
자식들이 태어나던 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기뻐했을 어머니(喜).
그 자식들을 키우면서 때론 사랑의 회초리를 들어야 했던 어머니(怒).
시집간 딸을 향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안고 포기마다 눈물을 심으며 콩밭을 매던 어머니(哀).
나이가 들어가고, 그 자식들이 낳은 자식을 안고 삶의 행복과 즐거움을 잠시나마 누렸을 어머니(樂).
그리고 이제는 자식들의 ‘그리움’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일생을 담은 길.
누구의 어머니도 아닌, 우리 모두의 어머니의 길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길이 끝나면서 이제까지와는 달리 등산로가 가파르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을 숨 가쁘게 오르니 561m 산 정상에 다다랐다. 안개 자욱한 정상에서 비를 맞고 서있던 정상 표지석이 나를 반긴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사진 두어 장 남겼다.
비 오는 날의 칠갑산 정상.
안개 자욱이 덮이고, 오가는 등산객 하나 없는 정상에 나 홀로 서있다. 안개가 더욱 진하게 몰려오며 나를 안아주듯 감싼다. 진한 숲의 향내가 난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은 순간이다.